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부터 10시간 후면 이 프로젝트가 마감이 된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만들기로 한 브런치북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브런치북들이 하나둘씩 올라와 읽어보니 감히 브런치북에 도전을 하겠다는 마음이 싸악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아니, 이 작가님들은 하루 종일 일 하시면서 자신의 생업에도 최선을 다 하시고 바쁜 와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글까지 쓰시는데 그냥 쓰시는 게 아니라 잘 쓰신다. 만약 내가 쿠바에 살지 않고 계속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글을 쓴다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그런 작가님들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이 마구 일었다.
작년에 쿠바에서 브런치북을 처음 만들었던 게 떠올랐다. 코로나로 노트북을 그나마 편히 사용할 수 있는 호텔들이 죄다 문을 닫아 노트북을 사용하려면 인터넷 카드가 사용 가능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집 근처 공터에 wifi신호가 있었고 그곳에 노트북을 가져가 인터넷 카드에 있는 번호를 입력하고는 인터넷에 연결했다. 노트북 배터리는 한 시간 남짓으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데다가 해가 위치를 바꾸면서 가림막이 없던 공터에서 그늘을 찾느라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시월의 쿠바 날씨는 습도가 높고 햇볕이 아주 쨍쨍해서 태양 아래에 가만히 있으면 머릿 가죽도 내 몸도 새까맣게 타버리기 때문이다.
브런치북 만드는 법을 숙지하고 시키는 대로 하나씩 해 보았다. 인터넷 신호가 불안해서 인터넷이 중간에 계속 끊겼다. 그러면 다시 인터넷 카드에 있는 번호를 입력하고 연결해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몇 번을 새로 만들면서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내 맘은 점점 조급해졌다. 그 사이에 해가 완전히 그 공터를 장악해 버렸고 나는 모서리 구석에 약간의 그늘을 찾아 쓰레기 냄새가 나는 그곳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브런치북을 완성할 수 있었다. 브런치북 커버를 장식할 사진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노트북에 있던 몇 개의 사진 중 하나를 사용했다.
나의 첫 브런치북을 만든 쿠바 아바나의 한 공터-너무 다른 나의 모습에 아득한 옛날같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책상에 앉아서 너무 편하게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 브런치북을 만들지도 않은 채. 역시 힘든 상황 속에서 간절함이 더 커지나 보다. 작년에 만든 브런치북은 더 이상 나의 브런치에서 찾을 수가 없다. 나의 첫 종이책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든 브런치북을 만들었을 때의 희열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든 책이어서 더 잊히지 않는 거겠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오늘도 한번 해보아야겠다. 마감일에 아슬아슬하게 도전하는 것도 스릴 있고 좋으니. 게다가 나는 지금 해를 피하려고 노트북을 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 연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작년보다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테다. 나의 게으른 유혹에만 벗어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