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채식주의자

나무가 되고 싶은 여인 그리고...

by 쿠바댁 린다


금세 잊히면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순간에도 덮고 나서도 그리고 지금도 자꾸만 생각난다. 어제 읽었던 책이.


몇 해 전 온갖 매스컴에서 난리가 났던 걸 기억한다. 이 책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상을 수상해서 나처럼 문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을 단숨에 기억해 버렸다. 하도 난리를 쳐서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하면서도 당시 나는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 데다가 남들이 다들 하는 거면 하기 싫어하는 나의 청개구리 같은 심보 때문에 이 책을 여러 번 읽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은 아니었다. 다른 작가의 책을 집었다가 갑자기 이 책으로 눈길이 갔고 꺼내보니 두껍지 않아서 몇 시간 내로 읽을 수 있겠다 싶어 가지고 온 거였다. 예전에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내용이 이상하다고 했고 더럽고 잔인하다고도 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잔인한 죽임에 관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따로 쓴 세 개의 중편 소설이 이어져 한 편의 장편소설로 만들진 것이다. 첫 번째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너무 흡입력이 강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물론 글자 하나씩 또박또박 읽었다. 그런데 두 번째 -몽고반점-은 더 강했다. 세 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게 아무래도 두 번째 소설인데 남녀 주인공이 되어 직접 느껴보지 않는 한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형부와 처제의 몹쓸 짓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강
<채식주의자>



꿈을 꾸고는 단번에 냉동실에 든 모든 고기에 관련된 식품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영혜. 그렇게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계란과 우유조차도 입에 대지 않는 그녀는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최고봉인 비건이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원래 없던 말이 더 없어지고 인간이 가질법한 모든 욕구를 잃어버렸다. 욕구를 잃어버렸다는 것도 순전히 대중의 관점에서 본 것일 테지만.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아니, 자신을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형부가 제안을 했다. 영혜의 몸에 그림을 그려도 되겠냐고. 그녀는 한 해 전 여름에 언니의 집에서 과도를 들어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아버지가 강제로 입을 열어 고기를 먹이려고 하자 그녀가 한 행동이었다. 우리 아버지였다면 그러시지 않으셨을 텐데. 영혜의 아버지는 달랐다. 어쩌면 영혜가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도 어릴 적 그런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맞고 자란 게 한몫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 그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을 수도. 그녀는 교감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 모든 욕구가 사라졌으니 교감의 필요성도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그녀에게 형부가 접근을 했다. 영혜의 언니이자 자신의 아내가 대화중에 영혜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있다고 한 그때부터 그는 영혜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다. 그가 하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고 그 주인공으로 영혜가 제격이겠다는 판단이 서자 슬그머니 접근을 한 것이었다. 꽃을 그린다는 말에 영혜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형부는 그녀의 몸 뒷부분과 앞부분에 커다란 꽃잎을 그려 넣었다.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는 자신의 몸에 그려진 꽃이 좋았다. 지워질까 봐 샤워도 하지 않았고 지워질까 봐 머리를 감을 때에도 조심했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베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중략)
몇 마디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 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호기심이 없었고, 그 덕분에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색도 없었으며, 당연할 법한 감정의 표현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십 년 가까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찬란한 희열이, 몸속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흘러나와 자신의 붓끝에 고이는 것을 그는 침묵 속에서 느꼈다. 가능한 한 오래 그 희열을 지속시키고 싶었다.


일반인이 영혜를 보았다면 성적인 충동을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의 그저 마른 여인의 몸일 수가 있었겠지만 형부에게는 달랐다.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이 그녀를 통해서 발산이 되었던 것이었다. 아무런 욕망이 없고 어떠한 감정도 없는 그녀의 몸이 그의 예술적인 욕망을 자극해버렸다. 그는 자신이 꿈꿔왔던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욕을 먹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자신이 영원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예술적인 본능에 휩싸여 사회적인 관념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그 영상을 아내가 보았다.


자신이 몸에 그려진 활짝 핀 꽃이 좋았던 그녀에게는 형부와 한 행위가 성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게 아니라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행위였을 테다. 이미 그녀에게는 인간이 느끼는 그런 욕망들은 사라져 버렸으니. 하지만 언니는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자신의 동생을 남편이 그저 욕정을 채우려고 한 변태적인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둘을 신고해버렸다.


내가 언니였어도 그랬을 테다. 나는 지금 독자로서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책에 푹 빠져서 읽고 있으니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데 내가 만약 현실 세상의 언니였으면 남편과 동생이 한 행위는 용서 못할 일이다. 아니 천벌을 받아 마땅할 일이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도, 영혜를 통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완성해보려는 형부도 그리고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 견뎌내었던 언니도 이해가 되었다.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반적인 잣대에 맞춰 강제로 밥을 먹이고 코에 호스를 꽂는 로봇 같은 그들이 싫었다. 그들도 자신의 임무를 다 하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싫었다. 내 임무니까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행하는 그런 게.


왜, 죽으면 안 돼?


영혜가 언니에게 물었다. 먹기를 거부한 영혜는 얼마 후 죽었을 테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먹지를 않으니. 그녀는 하늘로 올라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나무가 되었겠지. 더 이상은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호스를 꼽지 않아도 되는 나무가 되어 푸른 잎사귀를 찬란하게 빛내며 살아가겠지.






가끔 나는 나를 모르겠다. 어떤 언니는 나를 보고 뼛속까지 여자라고 했고 어떤 이는 대찬 사내대장부 같다고 했다. 어떤 때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고로 예외 없는 행동을 하다가 다른 때에는 모든 걸 다 받아줄 수 있을 만큼의 열린 생각을 했다. 나의 가치관은 있지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를 보면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영혜가 이해가 되고 형부가 이해가 되는 나를 보면서 그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게 소설이어서 그런 거겠지? 현실이라면 달라지겠지?


아직 나는 상에 대해서 논할 실력이 갖춰져있지 않아서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잘 썼다는 거다. 내용도 문체도 아주 맛깔스러웠다. 이걸 거의 15년 전에 썼다니. 한강 작가의 요즘 소설이 궁금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