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고 싶은 여인 그리고...
한강
<채식주의자>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베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중략)
몇 마디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 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호기심이 없었고, 그 덕분에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색도 없었으며, 당연할 법한 감정의 표현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십 년 가까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찬란한 희열이, 몸속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흘러나와 자신의 붓끝에 고이는 것을 그는 침묵 속에서 느꼈다. 가능한 한 오래 그 희열을 지속시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