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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아쉬워!

feat. 쿠바 사진

by 쿠바댁 린다

최종 퇴고 본을 약속한 날에 맞춰 출판사에 보내고는 한숨을 쉰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다음 날 일 때문에 기차를 타고 이동 중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고 사진 몇 개가 열리지 않는다며 다시 보내줄 것을 요청하셨다. 쿠바에서 사용하던 아이폰 6S핸드폰의 작동에 문제가 생겨 쿠바 통신사에서 구입해서 2개월 남짓 사용했던 알카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화질이 워낙 안 좋아서 아무리 손을 대어도 사진이 예뻐 보이지 않는 건 뒤로 하고 그 핸드폰에 들어있는 쿠바 SIM 카드의 비밀번호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핸드폰 자체를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진은 당연히 볼 수가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SNS에 올렸던 사진을 캡처해서 보정 후 보내었는데 파일에 문제가 생긴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 알카텔 핸드폰을 꺼내어 어떻게든 열어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심카드 원본 카드를 꺼내어 차분하게 번호를 입력해보았다. 또 실패였다. 그러다 극적으로 어떤 번호가 맞았고 드디어 핸드폰이 열렸다. 하늘이 도왔구나 나를! 하고 감사하며 사진을 확인 후 삭제할 건 삭제하고 노트북에 다운로드하였다. 열리지 않는 사진들을 찾아서 하나씩 확인하고 보정하였는데, 사진에 손을 대다 보니 글에 또 눈이 갔다. 퇴고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퇴고를 또 한 번 하게 되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일분일초가 아까워 저녁 먹는 시간 이외에 12시간을 꼬박 앉아 새벽까지 작업했다. 이틀을 더 한 다음인 오늘 오후에야 완전히 마무리를 하였고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며 출판사에 보내었다. 이젠 읽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면서.


에세이를 이렇게까지 퇴고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해서 고칠 게 나오고, 내 한국어의 부족함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김정선 작가님의 책이 퇴고에 계속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마지막 퇴고 때는 높임말에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그렇다고 쳐도 높임말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 맞긴 한 건지!

남편이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높임말을 물어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순간 들면서,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남편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뻔했다.


삼만 장이 넘는 정리도 안 된 사진들 속에서 책에 맞는 사진들을 골라내느라 눈이 빠질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내 눈은 빠지지 않았고, 시력이 확 떨어지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픈 두 눈이(특히 왼쪽) 일을 열심히 하긴 했구나, 라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하는데 이 정도면 책을 수십 권 내신 분들의 눈 상태는 대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유난인 걸까? 뭐 그럴 수도...


아무튼 이제 내 손에서 떠났다.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올려볼까 한다. 오래된 핸드폰 사진들이라 화질도 해상도도 낮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나의 첫 책에 자리 잡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수고했다. 이제 그동안 준비해 온 것들을 잘 정리해서 떠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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