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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Dec 09. 2021

쿠바행 티켓을 취소했다

리셋된 내 인생

오늘은 남편의 생일, 계획대로였으면 나는 지금 푸른 파도가 철썩이는 말레꼰 뷰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며 모히또를 한잔 하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현실은 한국. 지난주에 탔어야 할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 탓이다.


그날 새벽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 이후로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에 한번 더 통화를 한 다음 모든 계획을 수정하고는 남편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그날 하루는 정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비행기를 타기로 한 날 서울에 가서 미팅을 했다. 미팅은 순조롭게 잘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잡 오퍼 레터를 받았다.


퇴사한 지 4년, 업계를 떠나면서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쿠바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국에서의 모든 걸 아낌없이 정리하고 떠났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 버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뀌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업계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준다는 것이었다. 걱정 말라고, 아주 잘할 거라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격려도 해 주었다. 고마웠다.


엄마와 남편은 기뻐했다. 아직 정확한 건 시간이 좀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 한국에서,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세웠던 계획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게 리셋이 되어버렸다. 세상을 움직이는 자들만 그레이트 리셋을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덩달아 하게 된 셈이다.


오후에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했다. 타로 마스터의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 나에게 좋은 운이 다가올 거라며 최면을 걸었다. 며칠 전만 해도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하루 종일 말없이 울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 눈물이 환희에 가득한 웃음을 가져다줄 거라고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에 충실한 것이다. 쿠바에 두고 온 많은 것들, 쿠바에 가져가려고 준비한 또 많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현재 나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미련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남편도 보고 싶고, 쿠바도 보고 싶고, 이번에 쿠바에 가면 가려고 했던 모든 곳들이 그립다. 몹시나 그리워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그리움에 사진 정리를 시작했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지!


추억은 아름답고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만 그 자리에 남아서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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