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Mar 03. 2022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2

항공이 캔슬되었다고요?

서울에 와서 혼자 생활한지도 2개월이 되어가고 일도 처음보다는 익숙해지고 있었다. 재택근무라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엔 그럴만한 여유는 없다고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있었다. 남편이 오면 다 해야지 그 생각만이 맴돌았다. 모든 건 남편이 오면 함께 한다는 게 계획 아닌 계획이었다.


몇 년을 쉬다가 갑자기 일하게 되면서 받은 충격인지 그저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세상이 뱅글뱅글 초고속으로 돌고 있었다. 토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갑자기 무서웠다. 몸을 움직여 앉으려고 했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다시 눕고 말았다. 그랬더니 또 돌았다. 무지막지하게. 이게 뭘까? 내가 왜 이러지?


어느 회사나 문제는 많지만 이 회사 역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와서 하나씩 처리하느라 매일 진땀을 빼고 있던 차였다. 전임자가 떠나버린 상태에서 홀로 남은 나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내 몸이 나에게 헬프미! 를 외쳐대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외근을 간 김에 병원에 가 보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아서 바쁘고 귀찮았지만 겁이 나서 간 거였다. 여의사가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이석증일 가능성이 80%라고 했다. 비싼 영양제 링거를 한 대 맞고 안정을 취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링거가 도움이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약간의 마음의 안정은 되는 듯했다.


남편이 있었더라면...


늘 생각나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내 남편.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사진을 남편에게 보내자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옆에 있었더라면, 함께 병원을 갔을 테고 남편이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나를 위로해줬을 테고, 그러면 나는 또 힘을 얻어서 그래, 괜찮을 거야라고 하며 금세 일어났을 텐데. 남편은 저 멀리 핸드폰 화면에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이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었다. 남편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함께 할 수 있고, 그러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매일 앉아서 일만 하다 보니 이석증이 왔을 수도 있어, 역시 운동을 해야 해 하면서 어느 날부터 일 하기 전 새벽에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편도 남산을 좋아하는데, 얼른 남편이 와서 함께 남산에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운동기구가 있는 장소를 발견할 때마다 남편이 떠올랐다. 디데이를 확인하면서 조금만 있으면 남편이 온다, 조금만 더 힘내면 된다 하면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비행기를 못 탔다. 그리고 2주 후로 탑승이  연기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주 후에 온다고 하니. 그런데 남편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날부터 나는 마치 삼손이 삭발당한 느낌처럼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아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도 그저 눈물이 흐르고 일을 하지 않을 때면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괴로운 마음으로 겨우겨우 하는데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을 하다 보면 괴로움을 잊기도 했다. 이럴 때는 일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만한 엄청난 일이.



전쟁이 일어났다.



설마 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나왔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뉴스를 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역사를 찾아보며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쟁은 남의 일이었다. 늘 그렇듯, 전쟁의 피해자는 힘없는 국민들이고 그들을 보며 나도 함께 울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쟁 발발이 며칠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 있는 러시아 항공 어플에서 알람이 울렸다. 뭐지? 하고 봤는데 내가 뭘 잘 못 누른 건지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 두 번이나 봤는데도 그랬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러시아에서 전쟁을 시작했고, 내 남편이 타고 올 비행기가 러시아 항공인데 갑작스레 알람이 울리다니.


다음 날 오전에 러시아 항공 서울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신호만 가고 아무도 내 전화에 여보세요 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한 시간 후에 또 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뭐 좀 여쭤볼게요. 러시아 항공 앱에서 알람이 뜨는데 혹시 항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요." 


"예약 코드 알려주세요."


"네. xxxx."


"아... 3월 2일 바라데로에서 출발하는 항공인데, 캔슬되었네요."


"네? 캔슬요?" 


"네...."


"바라데로에서 출발하는 것만 취소된 거예요? 그럼 모스크바 서울은요?"


"그 구간은 아직 남아있는데 일단 바라데로에서 출발하는 게 취소가 되었으니 모스크바 서울도 취소를 하는 게 낫겠네요."


"네. 그럼 언제 다시 운항할지는 모르시는 건가요?"


"네, 저희도 그건 몰라요. 환불하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비행기로 나중에 변경하시겠어요?" 


"아.. 일단 하루만 생각 좀 해볼게요. 환불이 나을지 기다렸다가 다른 항공편으로 변경하는 게 나을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3월 2일 건은 취소 처리해 드렸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컴퓨터 뒤에 숨겨져 있던 클리넥스가 책상 위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엉엉 울며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가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언니 러시아 항공 캔슬이래.." 하면서 그저 울기만 했다. 늘 밝던 내가 너무나도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 모습에 언니도 어쩔 줄 몰라했고, 그걸 알지만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언니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일하다 말고 러시아 항공에 전화했는데, 남편이 또 못 온다는 말에 망연자실하며 울다 보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인터넷에 연결이 안 되어 있었다. 국제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뚝 하고 끊겨버렸다. 결국 시댁에 전화를 해서 시어머니께 상황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남편이 들어오면 연락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내가 엉엉 우는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은 게.


그렇게 삼십 분간 울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돌볼 고객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그저 울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그리고 내가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얼마 후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소식에 남편도 망연자실한 듯 보였다. 남편도 하루빨리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데 일이 자꾸 꼬여버리니 속에서 천불이 났을 테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다. 지금 전쟁으로 죽는 사람들도 있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는 그나마 낫지 않냐고 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그래, 살아있는 게 다행이네.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만나겠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가 부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닌 이상 늘 긍정적으로만, 좋게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좋고 내 맘도 편해지는데 원망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힘들고 가장 힘든 건 내 마음이었다.


나는 어쩌다 쿠바에 가서 쿠바 남자와 결혼했고 이런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을까?



P.S.

제 영혼을 갈아넣은 저의 첫 작품 <어쩌다 쿠바>가 현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