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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04. 2022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3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제 영혼을 갈아넣은 저의 첫 작품 <어쩌다 쿠바>가 현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 나는 오후 반차를 내고 공항에 가서 남편을 모셔왔을 테다. 기다렸던 2주가 끝이 나고 15개월 만에 남편과 재회하는 날인데 남편과 다시 만날 날은 잠정적으로 미루어져 버렸다. 전쟁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괜찮다. 이제 마음을 다 내려놓았으니.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삼일절 저녁에 남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했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가슴에 오랫동안 담아두지 못하고 후딱 털어버린다. 나쁜 일이 생기면 평생 기억할 것처럼 가슴에 새겨 넣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정리해버리는 나를 보며 나는 평생 가도 와신상담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인지 나는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불면증은 없는 편이다. 잠을 너무 잘 자는 게 탓이다. 물론 나도 힘들 때는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문득, 작년 9월 2일이 떠올랐다. 작년 여름 잠시 방황을 했더랬다. 그리고 9월 1일, 찬바람을 맞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음날인 9월 2일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5시에 일어나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정신을 깨우곤 글을 썼다. 30일만 해보자,라고 했던 게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60일을 하고는 마무리를 했다. 60편의 글이 모였다. 뿌듯했다. 성취의 기쁨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나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도 해보기로 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힘들어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오뚜기가 아니던가! 쓰러져도 일어나고 힘들어도 얼른 털고 다시 시작하는 그런 오뚜기인데 이번에는 기대가 몹시 컸던 탓에 실망도 크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힘이 되는 남편이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이번 일로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남편이고 남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편안한 환경에서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것뿐이다. 현재 가장 힘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3월 2일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깨우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파란색 네임펜을 들고 노란색 노트에 또박또박 매일의 계획을 적고는 책상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곳에 떡 하니 붙였다. 빼박이다.(빼도 박도 못한다는 뜻) 노란 바탕에 파랑이라니! 어쩌다 쿠바 표지랑 같은 색이네, 하며 혼자 웃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을 홀라당 내려놓고 계획을 세우자 뭔가 하나씩 풀리는 듯했다. 러시아 항공에 전화했더니 3월 30일에 비행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고 한 게 며칠 전이었는데 말이다. 전쟁의 상황에 따라 이 항공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 일단 스케줄을 변경했다.


어제는 남편이 유럽연합과 프랑스 대사관 영사과를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프랑스 경유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일단 항공권을 가져와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항공을 예약해 놓았지만 어찌 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확인해보았더니 프랑스 항공이 가장 괜찮았다. 하지만 파리 공항에 3시간만 머물러도 쿠바인은 경유비자가 필요한데, 경유비자의 자격요건이 몹시 까다로웠다. 여러 종류의 서류를 제외하고도 출발 2개월 전에 비자 신청을 해야 하는 게 조건 중 하나인데, 만약 지금 신청을 하게 되면 남편의 한국 비자가 소멸이 되어 멕시코 영사관에서 한국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이런 공식적인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만약 프랑스 대사관에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남편을 도와준다면, 어쩌면 남편은 조만간 한국에 올 수도 있다. 재빨리 에어프랑스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다음 주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입했다. 러시아 항공보다 2배로 비쌌지만, 가장 안전하고 빨리 남편이 한국에 올 수 있는 게 중요하기에 일단 구입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마음은 편하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니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지.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회사에 일을 하게 되면서 급하게 이사를 했고, 다른 데 신경 쓸 겨를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내 인생의 첫 책인 <어쩌다 쿠바>가 세상에 나왔으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서점들을 돌아보며 기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주위에서 서점 인증숏을 찍어서 보내주셨고, 정신없는 나를 위해서 홍보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직 중쇄도 찍지 않은 그 책에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이 붙는 걸 보며 놀랍고 기쁘면서도 살짝 부끄럽기도 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에 여행 에세이로 분류된 내 책이 팔리고 있다는 자체가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 다가온 운이 아닐까? 이것이 이어져 행운의 여신이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슝하고 금방 올지,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로 오겠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그때를 위해서 오늘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겠다.


나는 오늘 '희망'을 선택했다.



P.S.

제 영혼을 갈아넣은 저의 첫 작품 <어쩌다 쿠바>가 현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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