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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02. 2022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1

자기, 나 비행기 못 탔어.

제 영혼을 갈아넣은 저의 첫 작품 <어쩌다 쿠바>가 현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설마설마했던 일인데... 지금이 무슨 냉전시대도 아니고 최첨단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고 있는데 전쟁이 웬 말이냐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 전쟁의 간접적인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꿈에서조차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 계획대로라면 남편은 2월 18일에 한국에 도착해서 7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지금쯤 편하게 남산에 산책을 하러 다녔을 것이다. 둘이 손잡고 하하호호 웃으며 14개월 이상 만나지 못했던 재회를 맘껏 했을 테고, 남편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고기를 매일 먹고 있을 테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지인들을 차례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꿈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2022년 2월 16일 오전, 커다란 트렁크 2개를 챙기고 할머니와 어머니께 아쉬운 작별의 뽀뽀를 하고 남편이 택시에 몸을 실었다. 쿠바인이 비자 없이 유일하게 탈 수 있는 러시아 항공은 코로나로 인해 수도인 아바나에서는 운항을 하지 않고 휴양도시인 바라데로에서만 운항을 하고 있어서 거금을 들여 장거리 택시를 탄 것이었다. (아바나와 바라데로는 2시간~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이다) 남편은 공항에 가는 도중에 병원에 들러 전날 했던 PCR 테스트 결과지를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항공기 탑승 48시간 전에 받아야 하는 영문 PCR 테스트 결과지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탈 뻔도 하였으나 무사히 받을 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모든 걸 챙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항에 들어선 남편에게서 연락이 온 건 비행기 탑승시간 40분이 채 못남은 때였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핸드폰과 유심을 바꾼 탓인지 인터넷이 자유롭지 않았고, 한국은 새벽이었던 라 혹시라도 공항에서 연락을 줄까 봐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치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시간을 보니 대략 보딩패스를 받아 면세점에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제는 비행기에 탑승을 했겠구나 하며 편히 새벽잠을 자려던 순간 남편에게서 문자가 한통 왔다.


자기,


나 비행기 못 탔어.


그 순간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 앉게 되었고, 전화기만 보며 남편의 전화가 인터넷에 연결되기만을 기다기게 되었다.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남편의 전화가 계속 끊기자 내가 국제전화를 했다.


자기, 무슨 일이야? 왜 비행기를 못 탔어?


여권 때문에...


여권? 자기 여권 아직 유효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여권이 왜?


현재 주재원 비자 전문가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 타기 전에 여권기간 확인은 나에게 필수사항이었다. 남편의 여권은 2024년까지인데 여권이 웬 말이냐!


쿠바 여권은 여권 기간 만료와 상관없이 2년에 한 번씩 이민국에 가서 여권 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수수료 챙김이 큰 이유인 듯하다) 해외에 있는 쿠바인들이 2년에 한 번씩 쿠바에 가서 여권 확인을 해야 한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쿠바 국내에 있던 쿠바인이 여권 신고를 해야 하는 건 편도 나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건 남편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리라. 이게 60년 동안이나 이어온 일이라면 왜 쿠바 이민국에서는 여권을 발급해줄 때 한마디도 안 해준단 말인가?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커다란 트렁크 2개를 들고 힘들게 받은 PCR 테스트지를 챙겨서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 탑승 수속을 하려는데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남편은 얼마나 놀랐을까?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일단 비행기 탑승은 못 하게 되었으니 항공권 변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내가 항공권 변경을 확인해볼 테니 전화를 끊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보니 새벽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러시아 항공 인터넷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거의 한 달여 동안 갖가지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결제에 실패를 하여(러시아에 있는 서비스 센터와 전화 통화도 여러 번 했으나) 결국은 서울에 있는 러시아 항공 사무실에 가서 인당 35유로의 수수료를 내고 항공권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새벽이라 러시아 항공 서울 사무소에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다시 전화했다.


자기, 여기 새벽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금 항공사에 직원 있지? 그 직원에게 가서 항공권 날짜를 변경해 달라고 해. 비행기 탑승 시간 전에 마무리해야 하니까 빨리 해. 알았지?


알겠다고 하며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 전화가 왔다.


자기, 연장했어. 3월 2일에 탑승이야.


변경된 항공권 사진을 찍어 보냈고 러시아 항공 서울 사무실에 나중에 연락해서 확인해보니 같은 조건으로 날짜 변경이 잘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수하물이 2개에 날짜 변경 수수료가 무료인 항공권을 구입했던지라 변경 수수료 없이 날짜 변경이 가능했고, 차액 56불만 지불하면 되었다.


비행기를 못 탔다는 말에 힘이 쭉 빠져버렸지만, 남편이 나보다 훨씬 더 놀랐을지라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조심히 집에 가서 푹 쉬라고 말을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쩌다 쿠바> 책에 쿠바 화폐개혁과 물가에 대해서 적어놓긴 했지만, 현재 쿠바 물가가 미친 듯이 올라 예전에 바라데로에 택시로 80불 비싸면 100불로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갈 때 200불(5,000 Peso), 아바나 집으로 돌아갈 때는 320불(8,000 Peso)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공항 왕복 택시비로 동남아 항공권 값을 지불한 것이었다. 엄청난 물가 상승에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또한 남편의 잘못이 아니니 남편에게 묻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4개월도 기다렸는데 2주만 더 기다리자, 라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그 2주는 지난 14개월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남편이 도착하기로 한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내놓았고 사장님에게도 남편의 도착말해 두었는데, 도착이 연기되자 2주 후에 써야지 하면서 반차를 고이 넣어 두었다.


금요일부터 일 하는 게 너무 힘들기 시작했다. 일 하기도 싫고 자꾸 눈물만 나올 것 같았다. 2주가 2년만큼이나 길게 여겨졌다.


아... 2주를 어떻게 견디지!!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P.S.

제 영혼을 갈아넣은 저의 첫 작품 <어쩌다 쿠바>가 현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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