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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19. 2022

마실 때는 좋은 데 버릴 때는 힘든 캡슐커피

캡슐커피 분리수거 방법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방 하나를 사무실로 꾸몄다. 커다란 책상 2개에 복합기를 올려놓은 작은 선반을 한 줄로 놓으니 벽 한 면에 완벽하게 들어갔다. 지금은 혼자 일하지만 남편이 오면 한국어 공부도 하고 나중에 일도 할 수 있을 걸 대비해서 책상을 두 개 산 것이었다.


일하다 보면 커피 생각이 날 텐데 일하다 말고 카페에 가는 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는 건 나랑 맞지 않고. 왜냐하면 나는 따뜻한 카푸치노만 마시기 때문이다. 카푸치노의 거품 우유를 참 좋아하기에 재택근무의 핑계를 대며 커피 머쉰을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꼼꼼히 조사를 해보았다. 디자인이 예쁘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데다 동작도 쉬워 보이는 자그마하고 가격이 적당한 캡슐커피 머쉰을 발견했다. 마침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길래 할인을 받아 커피 머쉰을 주문하고는 거기에 맞는 캡슐커피도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로.


쿠바에서는 남편이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여서 주었는데 모든 게 편리한 한국에 와서 커피도 손쉽게 마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신여성이 된 느낌이었다.(물론 나는 남편이 끓여주는 모카포트 커피가 더 좋지만)


기본적으로 기계에 일종의 두려움이 있는 나는 커피 머쉰이 도착한 날 친한 언니가 놀러 왔기에 언니에게 작동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한참 집 정리로 바쁠 때였고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언니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설명서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언니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따끈따끈한 카푸치노 한잔을 든 언니가 나타났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린다야, 했어!"

"우와 언니 대단하네! 완전 제대로 된 카푸치노인데?"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성공한 언니는 자랑스럽게 언니가 만든 카푸치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언니의 얘기를 들으니 정말 간단했다. 내가 했으면 언니가 한 실수를 나도 똑같이 했을 텐데 언니 덕분에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다. 언니가 헛깔렸던 게 아메리카노와 달리 카푸치노는 우유 캡슐이 따로 있어서 두 개의 캡슐을 사용해야 하는데 순서가 중요했다. 우유를 먼저 내린 다음 커피를 내려야 하는데 언니는 커피를 먼저 내려서 실패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카푸치노를 마셨다.


매일 한잔 혹은 두 잔을 마시다 보니 사용한 캡슐이 점점 쌓이게 되었다. 쌓이는 캡슐을 보다가 저 캡슐들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캡슐이 플라스틱이므로 분명 분리수거를 해야 할 텐데. 초록창을 열고 '돌체구스토 캡슐커피 분리수거'를 적었더니 정보가 쭉 나열되었다.


먼저 커피 캡슐 분리수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캡슐 위에 있는 비닐을 열고, 안쪽에 커피를 감싸고 있는 또 하나의 비닐을 제거한 후 커피 찌꺼기를 덜어낸다. 플라스틱 캡슐과 비닐을 깨끗이 씻은 후 말린 다음 캡슐과 비닐은 따로 분리수거를 하고 커피는 말린 후 재활용하면 되었다.


캡슐커피를 마실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안 그래도 쓰레기가 많은 나라에서 또 다른 쓰레기를 창출하는 거였다니! 게다가 분리수거를 위해서 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니. 순간의 행복을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쿠바였으면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한국에 오니 이렇게나 달라졌다. 환경에 적응은 어찌나 빨리 하는지! 훗.


처음에는 캡슐이 많지 않아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분리수거를 한 후로 귀찮아서 여기저기 캡슐들을 쌓아놓았더니 더 이상 쌓아둘 데가 없어서 오늘 아침에 집 청소를 하고는 큰 마음을 먹고 캡슐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하얀색 우유 캡슐부터 시작했다. 캡슐 비닐 제거부터가 쉽지 않았다. 부엌칼로 해 보았더니 잘 안 되었다. 게다가 손 다칠 위험도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포장 떡볶이를 사면서 받았던 플라스틱 커터기로 열어보았다. 잘 열렸다.


그때부터 커터기로 캡슐 뚜껑을 열고는 우유의 흔적을 제거한 후 깨끗이 씻어서 캡슐을 하나씩 쌓아갔다. 뚜껑으로 사용된 비닐은 비닐봉지에 모아두었다. 시간이 요하는 일이라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얀색 우유 캡슐을 다 분리하고 나니 총 58개였다. 엄청났다. 이제 저 숫자만큼 커피 캡슐도 분리해야 하는데 커피 캡슐은 비닐도 2번 제거해야 하고 커피 찌꺼기도 따로 모아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릴 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캡슐 제거작업을 했으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많이 쌓아둔 내 잘못이었다. 네스프레소는 사용한 캡슐을 모아두면 수거해가는 시스템이 있다는데 내가 사용하는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는 수거 시스템이 없어 직접 분리를 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 앗, 지금 돌체구스토 웹사이트에 확인해보니 캡슐 재활용 백 수거요청이 있긴 하다. 그런데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주문 시 캡슐 재활용 백 수거요청을 선택하라는데 나는 쿠팡에서 좀 더 저렴하게 캡슐을 사는지라 수거요청만 되는지는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커피 찌꺼기를 잘 말리고 나면 탈취제로도 사용하고 방향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다. 지금 냉장고 안에 있는 탈취제가 처음에 캡슐을 분리수거하면서 나온 커피 찌꺼기를 말렸다가 넣어둔 건데 효과는 꽤나 좋은 듯하다.


마실 때는 우아하고 편하지만 버릴 때는 쉽지 않은 캡슐커피.


귀찮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만 아픈 지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 남은 커피 캡슐을 분리수거해야지. 귀차니즘이 몰려오지만 라디오를 들으며 즐겁게 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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