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Mar 18. 2022

남편 편을 든 엄마

일 한다는 핑계로 엄마랑 통화한 지도 좀 된 듯하여 아빠 안부도 물어볼 겸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안 그래도 궁금해서 전화 할라는 참이었는데, 요새도 바쁘나?"

"응, 일만 하고 살지 모."

"조단은 우째됐노?"

"아직 안 왔다. 오면 온다고 엄마한테 말했지."

"언제 올지 모르고?"

"엄마, 조단 안 와."

"안 온다고? 왜? 전쟁 때문에?"

"아니, 할머니 때문에. 할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으시대. 눈이 잘 안 보이셔서 어제 집 태울 뻔했대."


그러면서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조단의 상황을 엄마께 설명드렸다. 사실 난 조단에 대한 엄마의 반응이 별로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에 순간 놀라고 말았다.


"평소에도 할머니한테 그래 각별한데, 아픈 할머니를 두고 발이 떨어지겠나? 지는 얼마나 오고 싶겠니? 지금 젤 속상한 사람이 조단일 텐데 니도 딴소리하지 마라."

"속상해서 이미 엄청 퍼부었는데.."

"그라지 마라, 니가 그라면 조단이 두 배로 속상하잖아."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의 반응에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흘렀고, 엄마가 눈치 못 채시게 그 눈물을 닦아가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효자랑 결혼하면 힘들다고 하지 말라던데 내가 지금 딱 그 꼴이네."

"그래 맞다. 내가 평생을 그래 살았잖아. 너거 아빠랑 결혼해가지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나? 너거 아빠가 얼마나 효자고?"


효자 남편과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고되게 한 탓에 가슴 깊숙한 곳에 지울 수 없는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엄마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런 건 엄마를 닮지 않으면 좋았을 걸, 어쩌다 보니 효자 남편과 결혼한 것까지 닮아버렸다. 정확히 따져보면 엄마의 고생에 비하면 내 고생은 명함도 못 내밀지만.


"엄마, 조단 할매 연세가 아흔인데 지금 눈 수술하시려고 알아보고 계신데. 한쪽 눈은 아예 안 보이고 한쪽 눈은 조금만 보여서 하시겠다는데 그 연세에 수술하시다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아이고, 그 연세에 무슨 수술이고. 얼마나 위험한 줄 아나? 한국처럼 병원 시설이 좋은 데서도 나이 든 사람은 수술하다가 잘 못 될 수 있는데, 시설도 잘 안 갖춰진 쿠바에서 그 연세에 하시다 큰 일 나면 어쩌시려고. 조단한테 수술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라. 큰일난데이."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이런 마음이 든 게. 동지애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나도 내 친구도 남편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엄마가 남편 편을 들며 나에게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하시다니! 고마웠다. 남편 편을 들어준 엄마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엄마가 남편 편을 들자, 그동안 불안했고 속상했던 내 맘이 눈 녹듯 사라졌고, 진심으로 남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속이 후련해졌다.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할머니 잘 돌봐드리라고 했다며 메시지를 남겼더니 밤에 전화가 왔다. 착한 남편은 엄마의 응원에 감동을 받아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한국말로,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를 연발했다. 남편의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맘이 짠해지며 이제는 온전히 남편 편이 되어 남편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만에 남편과 내가 웃었다. 엄마 덕분에 우리가 웃었다. 역시 엄마가 최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할머니가 기어코 한쪽 눈을 수술하시겠다는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자식과 손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몹시 마음에 걸리시는 지 나의 말을 듣고는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조단이 여러 번 말씀을 드렸지만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무슨 각오를 하신 듯했다.


조용한 성격에 12남매의 첫째 딸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자식처럼 키워내신 할머니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시다. 그러니 본인 마음대로 몸을 쓸 수가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지자 더 이상 남편에게 수술이 위험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수술이 잘 되길 바랄 뿐이다. 할머니도, 남편도, 나도 이 상황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서로의 삶에 후회가 없을 테니.


내 마음이 다시 돌아온 건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가 남편 편이 된 날, 나는 엄마 편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정체 모를 토시살 샐러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