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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28. 2022

책 사인을 하러 영종도에 갔다

친구가 영종도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공무원인 친구가 인천공항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강남에서 영종도로 이사를 가게된 것이었다.


오래전에 알았지만 살다 보니 서로 바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겨 어찌 지내는지 소식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쿠바 교민인 한 언니와 학교 선후배였던 것이다. 어느 날 SNS에 친구가 쿠바에 온다며 메시지를 남겨 너무 오랜만이라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친구의 쿠바 여행 준비를 도와주면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


수년이 지나 쿠바에서 재회를 했지만 역시나 우리는 어제 만났던 것처럼 어색함 하나 없었다. 함께 온 친구의 회사 동료와 12월 31일을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고, 쿠바에서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며 잊지 못할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간 친구와는 꾸준히 연락을 하며 예전처럼 다시 잘 지내게 되었다.


쿠바가 다시 이어준 친구여서일까? <어쩌다 쿠바>가 출간되고 얼마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린다야, 니 책 10권 사서 선물할 거니까 우리 집에 사인하러 온나."

"당연하지! 책 사기만 하면 당장 가서 사인해줘야지. 고맙데이."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거기서 거기겠지만 친구는 경남, 나는 경북(대구) 출신이라 사투리의 억양이 확실히 다르지만, 같은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지 함께 있으면 사투리가 정겹고 편해서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지만 고향 친구만큼 정이 가는 그런 친구이다.


책을 미리 사고 싶었지만 이사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며, 이제 책이 준비되었으니 오면 된다는 친구의 명을 받고 오랜만에 타게 된 공항철도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갈 것만 같은 미묘한 설렘을 안겨다 주었다.


이사 간 친구 집은 운서역에서 차로 10여분을 가야 해서 친구랑 운서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천공항 근처도 이제는 신도시가 되어 전철역 주변이 생각보다 휘황찬란했다.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중심지가 정겨운 느낌이 들 정도로 처음 와 본 운서역은 도시의 화려함을 갖추고 있었다.


"영종도에 왔으니 해물탕 어떠노?"

"해물탕? 너무 좋지!"


커다란 냄비에 끊여서 함께 먹는 해물탕이 아니라 깔끔하게 일인분씩 나오는 해물뚝배기였는데 영종도여서 인지 이 식당의 인심이 후해서인지, 뚝배기 안에 들어있는 재료를 보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만천 원이라고?


오징어가 통으로 한 마리에, 전복에 조개, 홍합, 새우가 풍성하게 들어있는 데다 해산물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도 숨겨져 있었다. 맑은 국물이지만 얼큰해서 맛도 일품인데 가격이 착해서 완전 대만족이었다. 단숨에 운서역 맛집으로 임명해버렸다.

운서역 맛집 해물뚝배기

이제 이사 온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친구의 새 집에  내가 첫 번째 방문객이 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책 10권을 가져왔다. 친구 책에 가장 먼저 글을 적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의 요청대로 수첩에 책을 선물할 친구들 이름을 다 적은 다음, 그들에 대해서 간단히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 버렸다.


내 책을 읽어볼 친구의 지인들은 대부분이 나의 또래인 여성들이었는데 결혼한 분들보다 싱글이 더 많았다. 모두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신 분들이라 내 책이 어쩌면 위안을 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글을 적었는데 글을 적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 친구의 중학교 2학년 된 조카였다.


대체 이 어린 친구에게는 어떤 글을 적어주어야 할까?


글이 써지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였다. 연습하는 종이에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생각을 하다가 중학교 여학생이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적으며 마무리를 했다. 친구 조카가 내 책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게 뭐라고 책 열 권에 정성 들여 글을 적고 나니 배가 고파서 친구가 차려준 밥을 먹고 집으로 오니 밤 12시에서 10분을 남겨두었다. 마을버스가 늦은 시간까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쿠바가 물씬, 남편이 한가득 생각나는 밤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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