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Mar 31. 2022

나의 (우체국) 아저씨

린다씨~~~


앗, 우체국 아저씨가 오셨구나!


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며 후다닥 뛰어나갔다.


"아, 이상하다. 이름이 이게 아니었는데?"

"아, 그게 원래 제 이름이고 이건 일할 때 쓰는 이름이에요. 둘 다 제 이름이에요. 하하"

"그렇죠? 제가 기억하거든요. 그럼 여기 적힌 이름을 적어주세요."

"네."


내 키만큼이나 작은 키의 우리 동네 우체국 아저씨는 집집마다 다니며 누구 씨~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다. 배달원이 나의 이름을 이토록 상냥히 불러주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 동네의 정겨운 모습이 나는 참 좋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


집에서 혼자 일을 하다 보니 편한 점도 있지만 하루 종일 두 개의 컴퓨터에 레이저를 쏘며 영어로 된 이메일과 서류들을 보다 보면 쉽사리 눈이 피곤해진다. 눈이 아파 잠시 쉼이 필요할 때 즈음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준다면? 게다가 매일 혼자 있다 보니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 역할을 잠시나마 대행해주는 분이 있다면?


나는 비자업무를 하기 때문에 서류를 주고받을 일이 많아서 퀵 배달원과 우체국 아저씨를 자주 보는데 골목이 많고 진입로가 양갈래인 우리 집의 한쪽은 계단이고 한쪽은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처음 배달을 오시는 분들은 오토바이를 저 아래 도로에 세워두고 기나 긴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본인의 일터인지라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우체국 아저씨는 그런 짜증 낼 틈 한번 없이 그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연인인 듯 그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기분 좋게 우편물을 전해주신다.


어제는 퀵 서비스를 불러놓고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대문 앞에 오토바이 정차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았더니 기다렸던 퀵 아저씨가 아닌 우체국 아저씨였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대문 앞까지 나가서 아저씨를 반겨주자 아저씨도 흠칫 놀라면서 반가워하시는 듯했다.(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 우체국이네. 제 꺼 있어요?"

"네, 린다씨꺼 있어요. 여기 있네요."


언제나처럼 기분 좋게 우편물을 받고는 기계에 나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와 아저씨께 뭘 좀 드리면 좋을까, 하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사 왔던 작은 주스병들이 눈에 쏙 하니 들어왔다. 오렌지, 포도, 사과 중에서 오렌지를 골라 들고는 다시 나갔다. 2층 주인집 아주머니께 우편물을 나눠 드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고 업무가 끝나고 나가시는 아저씨께 "아저씨, 잠깐만요." 하며 불러 세우고는 주스를 드렸다.


"이런 거 받으셔도 돼요?"

"네, 고맙습니다."


하며 주머니에 주스병을 쏙 넣고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일터로 떠나신 우체국 아저씨.


우체국 아저씨는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나의 일터에 단비 같은 존재. 아저씨가 오래오래 우리 동네를 맡아서 자주 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아프지 않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