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로주점의 추억
어제 저녁을 먹다가 남편이, “자기, 와인?”이라고 해서 “응, 좋지” 했더니 며칠 전에 사 온 (귀한) 와인을 꺼내왔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다진 고기와 각종 야채들을 다져서 만든 동그랑 땡과 파김치였다. 거기에 렌틸 콩밥과 바나나를 함께 먹고 있었는데 나도 먹으면서 ‘이건 레드와인이랑 먹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기, 김치랑 레드와인 정말 좋은데!” 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내가 그래서 와인 얘길 한 거야!”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자기 정말이야?” 했더니 남편이 어깨를 들썩이며 빙그레 웃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남편이 김치가 맛있다며 조금씩 먹기 시작하더니 엊그제는 내가 처음으로 담가서 먹고 있는 빨간 무 래디쉬 김치가 맛있다며 먹길래 좀 놀랬었다.(익으면 꼭 열무김치 같다) 그런데 어제는 파김치를 내 옆에 두고 동그랑땡이랑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파김치를 하나씩 집어 먹더니 맛있다며 계속 먹었다. 그리고는 와인을 가져온 것이었다.
파김치는 액젓으로 절여서 그런지 맛이 좀 강하길래 남편은 못 먹겠지 싶어서 조금만 덜어서 혼자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합류하는 바람에 파김치가 갑자기 확 줄어들었다. 줄어든 파김치를 보며 남편이, “자기, 미안합니다.” 하면서 이제 그만 먹겠다고 했다. 김치는 나에게 없으면 안 되는 보물 같은 음식인데 자기 때문에 양이 확 줄어들어서 미안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자기 괜찮아. 다 같이 먹는 거야. 많이 먹어요.”라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자기” 하면서 또 씨익 웃었다.
남편은 참 고맙다는 말도 잘하고 미안하다는 얘기도 잘한다.(다른 쿠바인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별거 아닌 거에 매번 고마워하고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이 너무 고와서 난 매번 (속으로) 감탄을 한다.
남편에게 감동해서 잠시 사색을 하는 사이 남편은 가져온 와인을 오프너로 열고는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가 와인을 따르는 걸 흉내 내면서 잔에 와인을 따랐다. (요런 재치 아주 좋아!)
‘짠’ 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아, 마이뽀(와인 이름) 너무 맛있어!’ 하면서 감탄을 했다. 그리고는 동그랑 땡이랑 파김치와 함께 또 와인을 마셨다. 우리 남편 이제 와인 맛을 제대로 알아버렸다. 게다가 궁합이 좋은 음식까지도. 그리고 와인을 마실 때면 남편이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혀를 꼬면서) “프랑스 사람입니다!” ㅎㅎㅎㅎㅎ
예전에 서교동에 있는 박찬일 쉐프의 ‘몽로주점’이라는 곳을 종종 갔었는데 그곳 메뉴 중에 백김치가 있었더랬다.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당시 팀원과 갔었는데 그 친구가 메뉴를 보더니, “팀장님, 백김치에 레드 와인 짱이예요!”라고 해서 백김치를 시켜서 레드 와인과 먹었더니 정말 조합이 기가 막혔다. 그곳 매니저의 어머니가 손수 담으신 백김치였는데 그 자체로도 맛 났지만 레드와인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해 주었더니 자신이 파김치를 먹으며 와인을 생각했다는 게 아주 뿌듯한지 장난으로 약간 우쭐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 김치는 막걸리랑 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시원한 김치를 먹을 때면 레드와인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 몽로주점에서의 추억이 한몫을 단단히 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