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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10. 2020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로맨티스트가 될래요.

오백 원의 선택


대학교 때였다.

그 날 내 주머니에는 단 돈 오백 원이 있었고 난 배가 몹시 고팠었다. 학교 식당 메뉴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자장면이었고 가격은 오백 원이었다.


‘아, 딱 좋네. 이따가 자장면 먹어야지!’


굳은 다짐을 하고는 학교 밖으로 볼 일을 보러 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할머니가 팔고 계시던 장미꽃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도 모르게 꽃 앞으로 다가가서 쪼그리고 앉아서는 ‘아, 이뿌다!’ 하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할머니, 한 송이에 얼마예요?”

“오백 원이야.”


순간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자장면이냐 장미꽃이냐!


이제 막 봉우리를 열고 활짝 피어볼까 하는 자태의 새빨간 장미꽃은 너무 예뻤다. 이따가 만나기로 한 친구 수미가 이 장미꽃을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았다. 내 배를 채우는 것보다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주머니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과감히 꺼내어 할머니께 드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로부터 어여쁜 장미꽃을 받았다. 장미꽃을 손에 들고는 향기를 맡으며 룰루랄라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미를 만났다.


“수미야, 이거. 너무 예뻐서 니 줄려고 샀데이.”

“어머, 야~~ 너무 이쁘네. 내가 장미 좋아하는지 우째 알았는데. 가시나 감동이다 정말!


장미꽃을 보자 수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감동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에 내가 더 기분이 좋아져서 배고픔도 어느새 사라진 듯했다. 그러고는 수미가 말했다.


”니가 이래 예쁜 꽃을 사줬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밥 먹으러 가자!”

“오예, 진짜제? 잘 먹을게!”


장미꽃을 사면서 오늘 점심은 당연히 굶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맛난 자장면을 먹고 있으니 참 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장면을 맛있게 다 먹었고 식당을 나오면서 수미에게 내가 말했다.


“수미야, 사실은 오늘 달랑 오백 원 있었는데 그걸로 니 줄라고 장미꽃을 사 가지고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었데이. 근데 니가 자장면 사 준다캐서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아나? 사실 배가 디게 고팠거든. 하하하”


“맞나? 돈도 없으면서 내 줄라고 꽃도 사고. 니도 참말로. 너무 고맙데이. 근데 담부터는 밥 사무래이!”


그렇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로맨티스트가 되길 선택한 날에 난 비우는 기쁨이 채우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과 하나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하나로 채워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나보다 더 로맨티스트인 남자와 솔방울 하나에도 감동하며 잘 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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