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든 한국이든 뉴스만 보면 우울하고 화나는 기사밖에 없는 요즈음(사실 늘 그러하지만)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결성된 삼인조 그룹, 싹쓰리는 요즘 가장 핫 한 장 안의 화제 중 하나이고 인기가요 순위 채널에서 벌써 1위를 하면서 그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만약에 벌써 유행이 지난 거라면 인기 최고일 때를 가정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한국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해외, 게다가 인터넷 접속도 힘들고 데이터 요금이 아주 비싼 쿠바에 살고 있다 보니 유튜브를 통해서 이런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아마도?) '놀면 뭐하니?'에서 '린다 G'를 봤냐며 여러 차례 물어보자 어느 날부터 린다 G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린다 G는 바로 이효리였다.
그룹 활동을 하던 핑클 때부터 시대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었고 그 자체가 최고의 상품이었던 이효리는 설명조차 필요 없는 비교불가의 연예인이다. 그런데 싹쓰리에서 그녀의 이름이 린다라고 했다. 게다가 린다 G.
수많은 이름 중에서 그녀는 대체 왜 이름을 린다로 정했고 G는 과연 무엇의 약자일까?라는 의문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아주 잘 사는 연예인의 일인 데다가 비싼 데이터 요금 탓에 따로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LTE 데이터가 좀 생기는 바람에(내 폰은 3G이고 남편 폰은 LTE이다) 이번에 큰 맘을 먹고 린다 G에 대해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싹쓰리부터 확인해 보았다. 유재석, 비(정지훈) 그리고 이효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세 명의 톱스타로 이루어진 혼성 삼인조 그룹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많은 국민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국민 MC 유재석은 유두래곤으로, 일일 일 깡으로 유명하며(나는 아직도 이게 뭔지를 모르지만) 월드가수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인 김태희의 남편인 비(정지훈)가 비룡, 그리고 변신의 귀재이자 타고난 연예인인 이효리가 린다 G로 활동을 하는 그룹이었다.
서로 티격태격하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 아주 재미가 있었는데 셋이 함께 있을 때 가만히 보면 유두래곤과 비룡은 이효리를 빛내주기 위한 (멋진) 병풍 같은 존재로 인지될 정도로 린다 G의 존재감은 굉장했다. 물론 유두래곤과 비룡 두 분이 조화롭게 잘 받쳐주어 린다 G가 더 부각이 된 것도 있겠지만 그녀는 존재감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레 던지는 촌철살인, 몸 짓 하나하나에서 묻어 나오는 타고난 끼, 숨김없이 과감한 솔직함과 각종 사이다 발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내고 박수를 치게 하며 그녀의 매력에 그야말로 풍덩 빠지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알게 된 린다 G의 기원.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효리가 “내가 나타나면 모두 지리잖아. 그래, 지린다, 린다 G 어때?”라고 말을 하며 린다 G로 된 것이었다. 지린다고 린다 G. 작가의 대본이었는지 이효리의 애드리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했다! 지린다고 린다 G 라니! 그렇게 린다 G가 탄생을 했고 외국 이름인 만큼 린다 G는 미국 LA에서 미용실 200개를 운영하는 성공한 한인 여성의 컨셉으로 변신하였다.
사진출처_ 놀면뭐하니?
결혼 후 모든 걸 접고 제주도로 내려가 요가를 하며 동물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았던 소길댁에서 완전 180도의 다른 캐릭터로 탈바꿈을 한 것이었다. 돈 욕심을 버린 소길댁은 광고를 찍지 않겠다고 했는데(특정 광고인지는 모르겠다) 린다 G는 돈이라면 다 하는 캐릭터라 광고에 욕심도 내었다. 게다가 린다 G는 LA에서 온 교포인 만큼 자신의 소개를 영어로 하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실제 교포인 것처럼 간간히 영어를 하는데 나는 그런 대담하고 화끈한 캐릭터의 린다 G가 너무 재미있었다.
린다 G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니 그럼 이번에는 쿠바댁 린다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한번 알아보자.
미국과 멕시코에서 초이(CHOI)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지 3년째가 되던 2007년이었다. 대구에서 프리랜서로 예전에 하던 일을 하던 어느 날, ‘나도 이제 돈을 좀 벌어봐야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큰 오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니 저번에 본 부동산하는 내 친구 있제? 그 친구가 니 부동산 하면 아주 잘하겠다고 하더라.” 그 말한마디에 나는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서울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 조사를 한 후 서울 부동산은 강남, 용산 그리고 성수동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크겠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게 되었다.
먼저 강남에 있는 부동산에 가 보았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서 바로 포기를 했더랬다. 내 가치관과 너무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수동에 있는 한 부동산을 찾아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텃세를 부리며 자꾸 청소를 시키던 아줌마 실장님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매일 할아버지들이 오셔서 커피를 타 드리며 시중을 드는 복덕방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게 나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일을 한 지 한 달 만에 부동산 사장님께 '사장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나와는 안 맞으니 그만 하겠다'라고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그때 사장님은 그 동네에서 부동산을 두 개 운영하시며 다른 사업도 하시던 동갑내기 남자분이셨다. (19살에 맨주먹으로 서울에 와서 100억대 자산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장님은 그만두겠다는 내 말을 듣더니 그럼 아줌마 실장님이 안 계시는 아파트 입점 부동산에서 일을 하라며 하시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전세 계약 수수료는 모두 다 나에게 주시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다.(원래 나는 월급제였다.) 그리고는 덧붙이셨다. “실장님, 여기 지금 OOO 프로젝트가 올라가고 있고 벌써 진행되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이게 끝나면 엄청나게 변할 거예요. 아파트 몇 채 가지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때까지만 같이 일해요 우리. 제가 실장님 돈 많이 벌게 해 드릴게요.” 그런데 나는 그런 사장님의 배려 깊은 제안에 눈도 깜짝 안 하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사장님, 저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사장님은 그 후 6개월 정도 꾸준히 일 관련해서 연락을 주시다가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그 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대. 박. 이 났다.
미쳤지, 나는 왜 그때 내 가슴의 소리만 들었던가? 내 인생에서 큰 부자가 될 두 번째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첫 번째 기회는 아래의 글 [부록-그곳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남자 친구 어머니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와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를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정말이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는데 정말이라고 대답을 했다.) 지금까지 모든 걸 스스로 경험을 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올라왔었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길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몇 년 후에 천천히 펼쳐질 나의 미래로 나를 안내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귀인과 천국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 달만에 나는 성수동에서 이태원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전과는 다른 또 다른 커리어를 쌓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름부터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국인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일을 할 예정이었는데 나의 한국 이름은 모두 받침이 있는 데다가 발음하기가 어려운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한번 해 보시라. 처음으로 외국에 갔는데 나를 도와주겠다며 나타난 사람 이름이 폴, 해리, 마리아 이러면 쉬워서 금방 외울 텐데 발음이 어려운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면 몇 번을 들어도 기억하는 게 쉽지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이름은 비즈니스를 위한 거라 기억하기 쉽고 의미 있는 외국어로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한마디로 입에 쫙쫙 붙는 이름을 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쉽고 예쁘고 의미가 괜찮은 이름들 수십 개를 종이에 쭈욱 적어 보았다. 그리고는 아닌 것부터 하나씩 지우며 며칠 동안 고민을 한 결과 ‘린다’라는 이름이 나에게로 오게 되었다.
린다(Linda)는 스페인어로 예쁜, 귀여운, 상냥한, 사랑스러운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인데 여성의 이름으로 사용될 때에는 고유명사가 되기도 한다.(남성의 경우 마지막을 O 로 바꿔서 Lindo로 사용)일단 글자 수도 두 자로 심플하고 의미도 괜찮고(아주 멋지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쉽게 기억을 해서 처음 만나는 고객들이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2007년부터 린다라는 이름으로 일을 해 왔고 가족과 고향 친구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때부터 나를 린다로 부르게 되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 택배 기사님이 사무실에 들어오셔서 “최 모 씨가 누구예요?”라고 하면 새로 온 팀원은 그게 내 이름인 줄 모르고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 없는데요?”라고 하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함께 빵빵 터지며 웃곤 했다. 늘 린다로 불렸기 때문에 가끔 한국 이름이 들리면 그 이름이 오히려 나에게도 몹시 낯설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 후 쿠바에 와서 살면서 “쿠바댁이에요”라고 말을 하다가 자연스레 ‘쿠바댁 린다’로 굳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럼 이제 린다 G인 이효리와 쿠바댁 린다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다른 점부터 보자. 그녀는 온 천하가 다 아는 연예인이고 나는 아주 평범한 일반인이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끼가 많다고 해도 그녀에 비하면 아기가 걸음마하는 수준일 테다. 게다가 그녀는 아주 부자인데 3년째 백수인 나는 그냥저냥 맘 편하게 살 만한 정도이다.(내년부턴 일을 해야겠지?) 아, 그녀보다 많은 게 하나 있긴 하다. 5살이 많은 나이.
그럼 우리에게 공통점은 있을까? 응, 있다. 그녀에 비하면 많이 약하겠지만 나도 한 때 캐릭터 강한 센 언니로 불리었고 현재 집안의 가장이며 남편이 아주 착하다. 게다가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1577’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주 솔직하다.(한 때 이수근이 광고한 대리운전)
이효리가 토크쇼에서 한 말 중에 “저는 결혼하면 남편이 아니라 제가 바람피울까 봐 겁이 나요. 지금도 그래요.” 이 말은 나도 결혼 전에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