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결혼식장에 가면 주례사님들이 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라고 하셨는데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한 남자와 평생을 살 수가 있지? 만약에 내가 25살에 결혼을 해서 80살에 죽는다고 하면 55년을 한 남자와 사는 거네. 이게 말이 돼?’
게다가 요새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확 늘어나 버렸다. 겸손한 가정하에서 35살에 결혼해서 100살에 죽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한 남자와 무려 65년을 살아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그것도 남자에 싫증을 잘 내는 내가?(과거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한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 할 바에는 일단 연애를 실컷 하고 결혼은 늦게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된다면 우리 모두 결혼하고 싶은 나이를 정해놓고 그때까지는 연애만 하면 될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든 안 되든 한 번 해보자 싶어서 결혼 목표를 한국 나이 45세로 정했다.내가 생각하기에 100세까지 사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90세까지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고 거기에서 딱 반인 45세에 결혼을 해서 남은 45년은 외롭지 않게 서로 의지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열심히 연애를 했다. 속칭 지겨울 정도로. 결국은 지겨워서 다 접고 공부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니 이효리가 속닥속닥 한 말처럼 그 넘이 그 넘이긴 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아님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일까? 결국나는 결혼 목표인 45세 때 결혼을 하였고 결혼을 하고 나니 다른 남자를 봐도 무던해졌다. 그 넘이 그 넘인 걸 몸소 체험을 해 봤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 대한 환상이라든가 기대 같은 건 딱히 생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경험이 약이다.
돈이 없는 남자와 살면 돈 많은 남자가 그립지는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일단 대답은 노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내가 연애를 했던 대부분의 남자들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부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누려볼 만큼 누렸던 것 같다. 그래서 부자 남자에 대해서도 그다지 미련이 없다.(아직 덜 살아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 예로, 돈을 벌겠다고 서울에 올라오긴 했는데 그동안 여행하느라 돈을 꽤나 많이 써 버린 나는 돈이 없어서 꼬박꼬박 잘 붇고 있던 보험을 깨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해방촌 오거리에서 보성여고를 지나서도 한참 들어간 곳에 있는 전세 천오백만 원짜리 세 평짜리 옥탑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 남자 친구는 모 외국계 회사 대표였는데 그는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신의 기사님을 보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해방촌 오거리에서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시는 에쿠스 리무진을 꽤 많이 타고 다녔다.(민망해서 문은 내가 열겠다고 하면서) 그리고 그때 나는 옥탑방에 사는 걸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서울 하늘 아래 맘 편하게 내 몸을 눕힐 공간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여름엔 쪄 죽고 겨울엔 세탁기가 배수관이 얼었지만)
이번에는 이효리와 나의 남편을 한번 비교해 보자. 커리어 면에서 이효리의 남편은 음악가이고 내 남편은 운동선수라 다르다. 하지만 그 둘은 아주 착하고 와이프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래는 이효리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아기 고양이를 구조하러 갔었어요. 그런데 오빠에게 고양이를 구조할 때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고양이를 안심시켜야 한다고 말을 했더니 오빠가 고양이를 보면서 계속 눈을 깜빡깜빡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오빠를 보면서 이 남자가 참 순수하고 착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에게도 아주 비슷한 경험이 있다. 비가 몹시 온 후 저녁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져서 쌀쌀한 날이었다. 그날도 남편과 나는 집 근처 공원에 있는 야옹이들에게 밥을 주러 갔었더랬다. 그런데 큰 고양이들 무리 속에 비에 흠뻑 젖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이 그 고양이를 보고는 나에게 얼른 집에 가서 수건을 가져오라고 했고 수건을 가져오자 남편은 고양이를 감싸 안으며 정성껏 닦아주었다.
그 당시 살던 아파트에는 규율이 하나가 있었는데 동물을 키우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한 번도 고양이를 집에 데려간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 그 아기 고양이를 그대로 밖에 두면 그 날 못 넘길 거라며 몰래 집에 데려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나도 몹시 데려가고 싶었지만(너무 예쁜 야옹이였다) 이웃사람들에게 들키면 어떻게 되지?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생명이 먼저이니 욕을 먹더라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를 하고는 수건에 감싸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흙탕물인 아기 고양이를 잘 닦고는 드라이기로 몸을 말려 주었다. 그리고는 우유를 데워서 먹이고 햄을 잘게 썰어서 주니 아기 고양이가 힘이 나는지 아주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그 날 나는 잠을 설치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고 새벽 6시쯤 되어 남편은 아기 고양이를 다시 공원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 그 아가는 어른 고양이들 사이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했다.
비에 홀딱 젖어 떨고 있다가 말려주니 이렇게 이쁘게 변했다
오후에 갔더니 하트모양으로 서로의 몸을 녹이는 야옹이들 맨 끝에 이 아기고양이가 붙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 후로도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고양이들을 도와주었다. 나도 마음이 여리고 측은지심이 강한 편인데 남편은 나보다 그 마음이 더 큰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 동물 그리고 곤충들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인류애가 가득한 참 고운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효리가 말한 남편 이야기 중에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게 또 하나가 있었다. 결혼 전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매우 커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내내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가운데로 오면 늘 그곳에 이상순이 있어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 이 오빠는 내가 뭔 짓을 해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효리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진 않겠지만(나의 추측) 나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이라 한 번씩 왔다 갔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남편도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주었다. 내가 가끔 사고(?)를 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조단이는 나에게 목소리를 높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간혹 발생을 하면 조단이는 절대 바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며 내 두 손을 잡고 조곤조곤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기 부모님이 나를 믿고 자기를 이 먼 곳까지 보내 주셨는데 혹시라도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자기 부모님을 어떻게 뵐 수가 있겠어? 그러니 자기야, 조금만 조심하면 좋을 거 같아. 알겠지?" 하면서 나를 꼬옥 안아준다. 아... 나보다 훠얼씬 어린 남편에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얼굴이 화끈하고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는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렇듯 린다 G인 이효리와 쿠바댁 린다인 나는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여러모로 은근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예인에 대한 환상도, 연예인을 아주 좋아해 본 것도 학창 시절 이 외엔 없지만 싹쓰리의 린다 G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해 준 이효리에게 참으로 고맙다.
공인이자 슈퍼스타인 이효리가 지금처럼 본인의 가치관을 준수하며 남편과 동물들과 함께 화목하게 잘 살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비공인에 일반인은 나도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상관없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쿠바에서 조금씩 베풀고 도와주면서 건강한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건강해지고 뉴스에도 좋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살짝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