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전에 쓴 위의 글 마지막에 아빠 팔순 때 내가 직접 상을 차려보겠다고 소망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시에는 이 시간도 멀게만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와 함께 흘러간 시간은 어느 듯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었고 그 날이 되자 나는 남편과 함께 미리 준비를 해 둔 생신 축하 동영상을 아빠의 카톡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본가로 국제전화를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벌써 출발을 하셨나?’ 하고는 아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자 엄마가 받으셨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마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H가(둘째 오빠) 우리 데리고 부산에 갈라고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대구 거의 다 와서 친구가 전화를 했단다. 그 친구 딸이 얼마 전에 S 그룹에 취직을 해서 그 회사에 지원하려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OO 이 됐데. 그런데 H가 지난 수요일에 친구 딸이 취직했다고 만나서 저녁을 먹었단다. 그래서 H는 대구에 도착해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밖에서 얼굴만 잠깐 보고는 줄 거 주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래서 우리도 부산에 안 갈라고.”
엄마가 다급하게 말씀을 하셔서 나는 엄마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리고 친구 딸의 친구가 OO 했다는 얘기를 정확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께, “아니 친구 딸이 S 그룹에 취직을 했는데 왜 둘째 오빠가 친구 전화를 받고 서울로 가는데?”라고 말을 하며 이해가 안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엄마는 다시 한번 설명을 해 주셨는데 내용은 동일했다.
그런데 나는 두 번째에도 엄마가 왜 자꾸 친구 딸이 취직을 했는데 둘째 오빠가 서울로 돌아갔다는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세 번째에 똑같은 말씀을 또 하실 때 OO에 해당하는 단어를 정확히 들을 수가 있었다.
‘확진’이었다.
둘째 오빠 친구 딸의 친구가 코로나에 확진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둘째 오빠가 수요일에 만나서 저녁을 함께 한 친구와 그의 딸이 확진자의 접촉자에 속하면서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본인이 최근에 접촉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며 그 사실을 알렸고 그중에 한 명이 나의 둘째 오빠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부산에 안 갈란다.”라는 엄마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얘기를 했다.
“엄마, 부산에 안 가면 안 되는데! 내가 아빠 팔순 떡케이크 다 준비해 놨단 말이야. 그리고 아빠 깜짝 놀라게 해 드릴라고 그 안에 돈도 많이 넣어놨는데…아, 어떡하노.”
“빨리 취소해라!”
“그거 예약해서 진행하는 거라 취소도 안 되고 돈도 벌써 다 줬다. 우짜노…”
내가 케이크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엄마는 부산에 있는 큰오빠와 빨리 통화를 해야겠다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원래 아빠의 팔순에 맞추어 한국에 가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코로나와 함께 사라져 버린 후(건강 염려증이 심하신 아빠가 백신이 나오기 전에는 안 오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어떻게 축하를 해 드리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지인의 SNS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뭔가를 당겼는데 케이크에서 돈이 줄줄줄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나도 아빠께 저걸 해 드려야겠어!’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인터넷에서 해당 케이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을 했다.
가족 단톡 방에서 일 때문에 부산에 있는 큰 오빠가 부산 시내의 한 호텔을 일박 이일간 예약한 예약증을 보게 되었고 아빠의 팔순 잔치를 가족들끼리 부산에서 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산에 있는 ‘반전 떡케이크’를 알아보았고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을 찾게 되었다. SNS에 남겨져 있는 연락처로 나의 사정과 내가 원하는 것을 정리해서 보내었더니 8월에는 자녀의 방학이라 일을 안 한다는 답변이 왔다. 그 답변을 받자 기운이 빠지며 마음이 급해져서 바로 대체할 만한 다른 곳을 찾아보았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나는 또 다른 곳을 찾을 수가 있었다. SNS 포스팅을 통해서 케이크가 아주 고급지고 예쁘며 꽤나 인기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락처로 내가 원하는 것을 담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그랬더니 내가 원하는 숫자 케이크에서 돈이 나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케이크에서는 가능하다며 답변이 왔고 주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주문지를 꼼꼼히 읽어보고 SNS에서 내가 원하는 케이크의 디자인을 찾아본 후 주문지를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바로 답변하기 힘든 몇 가지 질문에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도 하였다.
그 길로 바로 큰 오빠와 올케에게 각각 연락을 해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의논을 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였고 여러 번의 주문 작성표를 수정한 후 주문서 최종본을 보낼 수가 있었다. 총금액을 입금해야 예약이 확정된다는 말에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주문을 한 그 날 바로 입금을 하였다. 드디어 예약이 확정되었고 그제야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아빠 팔순 열흘 전에 아빠께 드릴 선물을 완벽히 준비를 해 놓았는데 케이크가 배달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갑자기 계획이 변경이 된 것이었다!
준비를 한 시간도 꽤나 되었고 지불한 돈도 적은 금액이 아니었던 지라 엄마의 말씀에 나도 순간 당황을 했었다. 하지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 둘째 오빠가 엄마 아빠와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고 서울로 바로 돌아간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호텔뿐만 아니라 일박 이일 동안의 계획을 완벽히 준비하고 예약을 완료했던 큰 오빠와 야심 차게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준비했던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손해가 있긴 했지만 부모님께서 부산 여행을 취소하신 것도 결론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예약한 호텔은 당일 취소가 안 되는 이유로 큰 오빠네가 그곳에서 숙박을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올케에게 떡 케이크를 받으면나를 꼭 닮은 이쁜 조카가 돈을 줄줄줄 뽑는 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가족 단톡 방에 올려달라고 부탁을 했다.내가 참 많이 믿고 의지하는 올케는 나의 부탁대로 케이크를 받은 후 동영상을 찍어서 가족 단톡 방에 올렸고 그 동영상을 본 엄마는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아빠도 동영상을 보시고 많이 좋아하셨단 말씀도 대변인으로서 전해 주셨다. 나의 똑띠 조카가 연기를 잘한 탓이기도 했다.
케잌에 꽃힌 글씨를 뽑으면 돈이 줄줄 나온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의도치 않게 아빠의 팔순 잔치를 온라인으로 공유를 하며 축하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바이러스 시대를 살아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파티이기도 하다. 참 시대의 흐름에 착실한 우리 가족이다.
아빠 생신 다음 날 나는 다시 엄마께 국제전화를 드렸다. 부산에 못 가신 두 분이 그 날 잘 챙겨드셨는지도 궁금했고 둘째 오빠 소식도 확인을 해 보기 위함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것만으로 둘째 오빠는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역시 엄마는 그날 밤에 둘째 오빠 걱정에 한 잠도 못 주무셨던 것이었다. 친구의 딸이 확진자가 아니라는 게 확인이 되었고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둘째 오빠는 친구에게서 그 소식을 듣고 매우 안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을 안 가신 부모님은 그 날 두 분이서 오붓이 삼계탕을 드시며 말복을 잘 보내셨다고 하셨다.
게다가 엄마는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떡 케이크가 아주 마음에 쏙 드셨는지 친구들과 이모들에게 자랑을 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엄마, 내가 아빠한테 보낸 동영상 봤어? 자랑할 거면 이것도 같이해!”라고 하며 전화를 끊고 난 후 아빠 카톡으로 보내 드렸던 동영상을 엄마 카톡으로도 보내 드렸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엄마와 한참 수다를 떨었고 아빠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요즘 아빠 기억력이 안 좋다고 하셔서 몹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9월 1일부터 다시 공부를 하러 가신다고 하시며 예습 복습을 하면 기억력도 좀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아빠는 한문학자인 친구분께 고전을 배우신 지가 꽤나 되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몇 개월을 쉬셨던 것이었다. 아빠와 통화를 하고는 전화를 끊는 줄 알았는데 엄마를 바꿔주셔서 다시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엄마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큰 마음을 먹고 엄마에게 얘기를 했다.
엄마, 사랑한데이!
나의 기습적인 애정 공습에 엄마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나도 딸 많이 사랑해!”라고 하시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지난번에는 엄마에게 글로 사랑을 표현했는데(카톡으로) 이번에는 한 단계 격상해서 말로 표현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께 애정표현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마구 좋아졌다.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는 순간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엄마 얼굴을 보며 직접 사랑한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예정대로 아빠 팔순을 온 가족이 함께 축하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벗어나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말로 사랑도 전했으니 엄마와 내가 아빠 팔순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큰 오빠가 떡케이크를 잘 얼려 두었다가 다음 주말에 대구에 가지고 간다고 했다. 바로 만든 따끈한 떡케이크는 못 드셨지만 아빠는 내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는지 또 한 번 아시게 되셨을 테고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빠가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내 옆에 계셔주시는 게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아빠, 네 번째 스무 살을 너무 축하드려요. 다섯 번째 스무 살에는 온라인 말고 직접 축하해 드리도록 할게요! 사랑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