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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Aug 17. 2020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일까?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그리고 떠나간 그녀


브런치에서 다른 분의 글을 읽다가 문득 과거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이제는 아무 감정조차 없는 그냥 아는 사람인 그녀.







그날 밤도 나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나의 팀원들 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모두 퇴근을 하였고 회사에는 나와 사장님 두 명만 남아있었다. 사장님과 나는 그룹에서 내려온 보고서를 각자 작성하고 있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 자리로 와서 그룹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동안 회사를 위해서 몸 바쳐 일을 하며 업계 일위를 탈환한 후 팀이 잘 굴러가게 실컷 키워 놓았더니 새로 임명된 그룹 CFO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과거 업적은 어땠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국계인 그녀가 관심을 가진 건 오직 ‘돈’이었다. 새로 온 CEO와 CFO는 자신들의 입지를 빠른 시일 내에 굳히기 위한 공을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재경 담당자의 경우 당연히 비용 감소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린다는 왜 다른 사람들이랑 대우가 달라?


그녀는 한국 지사의 비용을 조사한 후 나의 보너스를 가지고 태클을 걸며 사장님과 재경부 부장을 압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한국 지사가 시작할 때부터 일을 했던 초기 멤버라 누구보다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그룹과 설전을 하면서 계속해서 나를 방어를 해 왔었던 것이었다. 결국 양측이 팽팽히 맞서자 그 문제는 아시아 CEO에게로 넘어갔고 나를 오랫동안 봐 왔던 미국인인 그는 결국 실적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린다는 건드리지 마!


사장님이 그 얘기를 꺼낸 날 나는 그동안 쌓여왔던 배신감에 흥분을 하며 욕을 하였다. 그런다고 내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는 건 더더욱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몇 살 어린데 그런 저런 일들로 힘들어서 흰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난 사장님을 보는 것도 괜히 짠했다. 사장님이 먼저 퇴근을 하고 혼자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동안 주사 맞고 머리카락 빠져 가면서 온 몸을 바쳐 일을 했더니 지금 와서 뭐라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가 않았다. 클리넥스를 앞에 두고 그렇게 혼자서 펑펑 울었다. 회사에 혼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렇게 눈물을 충분히 흘리고 나니 외로움이 몰려왔다. 누군가와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떨고 싶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 너무 늦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시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하던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 보았다.


“지금 어디야?”
“지금 동대문에서 옷 사려고 구경중이야. 왜 무슨 일인데?”
“아, 아니야. 그냥 뭐하나 해서. 알겠어. 옷 잘 사고.”


그러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쇼핑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만하게 보이는 최대한 가까운 데 사는 몇 명에게 카톡을 보내었는데 역시 가능한 이는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것처럼 내가 정작 필요할 때에 사람들은 어딘가에 꽁꽁 숨어버린 것 같았다.


평소에 아주 활달하고 명랑한 나는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때마침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얘기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연락을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 힘듦을 전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힘들 때에 꼭 얘기해야 한다며 도와주려고 노력을 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일이 해결이 되고 나면 친구를 만나서 ‘이런 일이 있었어.’ 하면서 웃으며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밤늦은 시간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나 좀 위로해줄래?’라고 말하는 건 나에게 몹시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몇 명에게 어디냐며 슬쩍 떠 보는 식으로 연락을 하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자 결국 포기를 하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 전에 통화를 했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조금 있다가 대학로 어딘가에 갈 데가 있는데 그때까지는 시간이 돼. 너 지금 대학로로 나오면 볼 수 있어. 올래?”
“아, 정말? 알겠어 그럼 지금 나갈게.”


하던 일을 후다닥 정리하고 그녀와 만나기로 한 이자카야로 향했다. 내가 먼저 도착을 했고 이자카야 바에 앉자마자 사케 한 병과 어묵탕 그리고 각종 꼬치를 시켰다. 저녁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도착을 하였고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 사장님께 들은 일이 나에게는 몹시 큰 충격이었는지 그녀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는 “많이 힘든가 보네. 회사 일이 다 그렇지.”라고 아주 담담하게 말하며 위로를 해 주었고 나는 씩 웃으며 금세 눈물을 닦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평소와는 달리 인생의 심오한 얘기를 하며 잔을 부딪치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린다야, 나 이제 가봐야겠어. 아까 말한 곳에 가야 해. 나 먼저 간다!” 그녀가 약속이 있다는 것도 떠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을 했었다. 하지만 표시는 내지 않았다. “어, 알겠어. 잘 가!”


그렇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 하니 떠나 버렸다. 나는 충격을 먹었다. 내가 처음으로 힘들다고 말을 했는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갈 수가 있지? 나 같으면 같이 갈래?라고 빈말이라도 했을 텐데. 물론 나는 이 기분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지도 않겠지만. 내가 지금 선약으로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너 혼자 괜찮겠어? 너 오늘 회사에서 안 좋은 일도 있었는데 내가 가려니 괜히 미안하네.라고 말을 하고 가는 게 상식(적에도 나에게는)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내 생각이 잘 못 된 걸까?


마음이 더 우울해졌다. 늦은 밤에 혼자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녀가 떠나고 잠시 후 반 이상 남은 사케와 안주를 두고 그곳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한 모임에서 알게 된 그녀는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는 나에게 종종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급기야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찾아와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까지 찾아온 그녀에게 식사를 사는 건 늘 나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언제나 그녀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었다. 내 생일이 되면 바쁜 나를 위해 그녀는 생일 선물을 가지고 회사 근처로 왔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당연히 밥을 사고 커피를 사 주었다. 그녀는 회사뿐만 아니라 집에도 종종 놀러를 왔었다. 우리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사랑방 같은 곳이라 친구들이 편하게 왔다 갔고 나는 와인과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늘 채워 놓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는 나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나를 대놓고 까기 시작했다. “린다는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잖아.” “린다는 지가 연예인인 줄 알아.” “너 남자 친구 생겼다고 하니 한동안 연락 안 할게. 남자 있으면 당연히 연락을 안 할 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을 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니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녀가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그래?” 그러면서 그냥 웃었다.


하지만 그 도가 점점 지나치자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심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분을 떠나서 나는 그런 그녀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그렇게 싫으면 안 만나면 될 텐데 왜 늘 먼저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고 만나자고 하고는 만나면 이상한 말을 하는지 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아니라 내 조건을 좋아했던 것일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녀의 생일이었는데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나는 그 날이 그녀의 생일인지도 몰랐었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서 그녀의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몹시 미안했던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너 지금 명동 롯데 백화점으로 올 수 있어?”


생일인데 약속이 없었던 그녀는 올 수 있다고 했다. 그곳에 도착한 그녀에게 나는 백화점 일층에 있는 한 주얼리 숍으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어울릴만한 심플하지만 예쁜 18금 귀걸이를 선물해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너무 좋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술집에 가서 안주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녀는 그 날 몹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차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술을 마시는데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평일 저녁에 술을 마시거나 모임을 하는 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힘들었다.


내 몸이 힘든 와중에도 나는 그녀를 위해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녀는 내가 가장 힘든 때에 나를 홀로 두고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늘 호탕하게 웃던 내가 눈물까지 보이며 안 하던 짓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녀가 그동안 나에게 보여준 모습이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기대는 딱히 없었지만 그 정도 일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날 나는 그녀를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친구도 아닌 그녀에게 더 이상 나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영문을 몰랐던 그녀는 내가 연락도 잘 안 받고 곁을 내어 주지 않자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관계를 정리하기 전부터 A라는 친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A는 그녀보다 내가 더 잘 알던 사람이었다. 예쁘고 유쾌하며 모임에 가면 늘 이목을 끄는 A는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아주 재미있게 잘하였다. 처음에는 A가 악감정으로 뒷담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녀는 그냥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A가 아주 유쾌하게 뒷담화를 하다 보니 다 들 함께 웃으며 A의 뒷담화에 호응을 했더랬다.(물론 나도 포함해서)


그러던 어느 날 A가 다른 친구에게 내 욕을 한 게 내 귀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녀를 딱히 미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A는 뒷담화 하는 게 습관이었고 자신의 습관을 반복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A를 만나서 웃고 얘기를 했다. 그런 그녀 둘을 다 알고 있던 나는 둘이 은근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쩜 내 예감이 똑 맞아 들어가 버렸다. 그녀들은 이후 절친이 되었다. 지금은 모른다. 내가 그녀 둘 모두에게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가진 에너지는 숨길 수가 없고 그 에너지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에너지를 찾아 끼리끼리 모이는 걸 보면 너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돌아 돌아 알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다 연결이 되어 있고 또 어떻게 알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친한 걸 보면 에너지의 힘이라는 건 실로 대단한 듯하다. 그래서 지금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보면 내 모습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쿠바에 와서 살면서 종종 이 머나먼 곳에 온 게 어쩌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잘 보이기도 하고 그 마음들도 더 잘 와 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나에게만 적용이 되는 게 아닐 테다. 인간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라 그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지나간 그녀를 통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 감정이 없는 존재가 되었고 어쩌면 그런 이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혹시라도 나의 실수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비록 사라졌을지라도.(갑자기 왜 이러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주고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 그리움은 은근히 스며드는 별이 되어 그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반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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