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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마음]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빚어낸 나

브론펜브레너의 생태체계이론 (Ecological Theory)

by 꿈꾸는자

“나는 왜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됐을까?”

“나는 왜 이런 모습일까?”
“우리 아이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심리학에는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여러 이론이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의 성격이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일련의 발달 단계(psychosexual stages)를 거치며 형성된다고 보았다.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을 통해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평생 대인관계와 정서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론들은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지만, 보통 특정 시기나 특정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미국 심리학자 유리 브론펜브레너(Urie Bronfenbrenner)가 만든 생태체계이론(Ecological Theory)은 사람을 ‘한 시점’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여러 겹의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결과’로 본다. 그래서 한 사람의 형성을 폭넓게 이야기할 때 자주 활용된다. 브론펜브레너는 사람의 발달을 마치 양파 껍질처럼 여러 층의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가장 안쪽에는 미시체계(Microsystem)가 있다. 가족, 친구, 학교, 직장처럼 일상에서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맺는 환경이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시험을 망쳤을 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라고 응원해 준 말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반대로 매일 잔소리와 비난이 반복되는 집안 분위기는 자신감을 갉아먹고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미시체계 내 경험들은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그다음 층은 중간체계(Mesosystem)로, 여러 미시체계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학교 선생님과 자주 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아이가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조금 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어 아이의 학교생활도 더 안정될 수 있다. 집에서는 공부만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학교에서는 자유로운 사고와 놀이를 중시한다면 아이는 서로 다른 기대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혼 가정에서 한 부모와는 친밀하지만 다른 부모와 갈등이 많으면 두 미시체계 간 단절이 생겨 아이가 정서적 일관성을 잃기 쉽다. 이런 경우 아이가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심리적 부담도 크다.


조금 더 바깥에는 외체계(Exosystem)가 있다. 외체계는 개인이 직접 속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 부모의 직장 내 긴장감이나 스트레스가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잦은 이사를 하게 되는 경우 아이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기도 한다. 또 미디어도 외체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SNS에서 완벽한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보면 현실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지만, 긍정적인 롤모델을 접하면 꿈과 목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 위에는 거시체계(Macrosystem)가 있다. 사회 전체의 문화, 가치관, 법, 경제 상황 같은 큰 틀의 환경이다. 예를 들어, 한국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서구 문화권에서 살아가게 되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문화적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공동체와 가족 중심의 문화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자란 개인이 개인의 독립성과 자기 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에 놓여졌을때의 문화적 가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경제적 배경도 영향을 미친다. IMF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경제적 안정과 ‘안정된 직장’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MZ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과 자아실현을 더 중시한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는 사람의 선택과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시간체계(Chronosystem)가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과 사회 모두 변화한다. 부모의 이혼, 해외 이주, 전학, 형제의 출생 같은 개인적 사건은 물론, 사회적 변화도 사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보낸 청소년과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 밖에도 코로나(COVID-19 pandemic)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나 기술 발전, 경제 위기 등이 사회 구성원의 삶과 발달에 변화를 일으킨다.


브론펜브레너는 처음에 생태체계이론에서 주로 환경 요인에 집중했지만, 나중에는 생물학적·유전적 요인(Biological and Genetic Factors)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질, 유전적 성향, 신체 발달 상태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생태체계이론에도 한계는 있다. 너무 포괄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측하고 측정하기 어렵고, 환경의 영향만 강조하다 보면 개인의 선택과 주체성, 즉 스스로 환경을 바꾸는 능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이론이 주로 서구 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다른 문화권의 독특한 발달 맥락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생태체계이론은 “사람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가까운 관계, 여러 환경 사이의 연결, 직접 경험하지는 않지만 영향을 미치는 사회, 시간의 흐름, 그리고 타고난 기질까지 모두 얽히고설켜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자신을 돌아볼 때, 성격이나 기질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을 둘러싼 ‘겹겹의 세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왜 그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지 조금 더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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