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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이야기] 호주 대학의 EDI팀 첫 출근기

낯선 LGBTQA+ 커뮤니티를 향한 호기심

by 꿈꾸는자

호주에 와서 첫째 아이를 낳기 전, 잠시 대학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러 다시 같은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학 내 Equity, Diversity & Inclusion 팀(줄여서 EDI 팀)에서 학생 파트너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마침 내 관심사와 맞는 일이어서 망설임 없이 지원서와 함께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제안서도 제출했다.


EDI 팀은 대학 내 전 부문에 걸쳐 형평성(Equity), 다양성(Diversity), 포용성(Inclusion)의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을 주도하는 부서다. 단순히 캠페인이나 행사를 개최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직 문화 전반이 더 안전하고, 누구나 존중받으며 차별 없는 환경으로 나아가도록 전략적 리더십과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EDI는 인권과 사회 정의의 핵심 의제로 주목받으며, 교육기관뿐 아니라 기업, 공공기관에서도 필수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분야다. 호주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며, EDI 팀은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모든 구성원이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팀이 집중하는 대상은 원주민(First Nations), 다양한 문화와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CALD: Culturally and Linguistically Diverse), 성소수자(LGBTQA+), 장애(Disability)를 가진 사람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 있는 사람들, 저소득층 배경, 농어촌 지역 출신, 그리고 비전통적인 분야(예: STEM)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여성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EDI 팀은 사실상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업무 영역이 워낙 넓지만, 중요도와 우선순위로 보면 성소수자, 다양한 문화권, 장애를 가진 사람들, 원주민 순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민자로서 언어와 문화가 다양한 커뮤니티(CALD)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로 지원했다.


드디어 첫 출근 날이 다가왔다. 마침 그날 팀 전체가 모이는 행사와 모임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특히 ‘성별 대명사(Pronoun)’를 밝히는 문화가 내게는 완전히 낯선 경험이었다. 익숙한 Ms, Mrs, Mr 같은 호칭이 아닌 ‘she/her’, ‘he/him’, ‘they/them’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she/her'로 불러달라고 하며 나를 소개했다.


"My pronoun is she/her."


EDI 팀의 업무에 성소수자 지원 업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캠퍼스 내 관련 커뮤니티도 활발히 운영되며 각종 행사도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문화라 긴장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모든 게 익숙한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척했다.


점심 식사 후, 근처 페인트 스튜디오로 이동해 팀원들과 함께 ‘Paint and Sip’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자화상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조금 부끄러웠고, 더군다나 처음 만나는 동료들과 함께여서 긴장되었지만, 참으로 차분하고 친절한 강사님이 순서대로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림을 절반쯤 그렸을까,

갑자기 짙은 화장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한 사람이 문을 활짝 열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누구인지, 왜 이렇게 나타났는지, 저건 옷인지, 수영복인지.. 내 머릿속은 갑자기 온갖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알고 보니 그분은 그림 그리는 과정을 돕는 분이었고, 이 행사에는 ‘드래그(Drag)*’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게 떠올랐다. 사실 드래그가 뭔지 몰랐고, ‘가면 알겠지’ 하는 마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대낮의 아트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드래그 쇼라니!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곳에 모인 열댓 명 가운데 나는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너무 보수적인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억지로 웃으며 티안나게 나머지 동료들의 행동을 살피며 함께 손뼉 치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내 마음은 폭풍처럼 휘몰아쳤지만, 놀란 표정을 숨기느라 어쩔 수 없이 미소로 감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은 혼란과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흔히 떠올리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정도만이 전부가 아닐 텐데, ‘LGBTQA+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와 삶을 살아왔을까? 오늘 프로그램 중간에 우리를 인도했던 분은 언제 어떻게 트랜스젠더가 되었고, 어떤 인생 이야기가 있을까?’


상담 공부를 하면서 가장 깊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편견 없이 상대방의 삶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갖는 태도’이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이 분야에 대해 경험해 보거나 교육받아보지 못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다. 앞으로 EDI팀에서 일하며 전혀 알지 못했던 LGBTQA+ 커뮤니티를 열린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이해하고 배워보려고 한다.


* 드래그(Drag):


드래그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성별과 반대되거나 과장된 방식으로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적 표현의 한 형태다. 가장 흔한 예로는 남성이 여성의 옷과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 ‘드래그 퀸(Drag Queen)’이 있지만, 드래그 킹(Drag King, 여성이 남성복을 입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도 있다. 드래그는 단순히 옷차림의 변화뿐 아니라 젠더 고정관념을 비틀고, 사회적 성 역할에 도전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창의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현상이다. 드래그 퍼포먼스는 때로 유머러스하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기도 하며, 성소수자(LGBTQA+)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정체성과 커뮤니티 형성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https://www.britannica.com/topic/drag-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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