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날 참여했던 페인트 앤 십(Paint & Sip) 프로그램에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이 있었다. 화려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들어왔던 그녀의 이름은 Pia(가명)였다. 자신의 SNS를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보았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아티스트이자 드래그 퍼포머이며, 위그(가발) 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한 글에는 그녀의 삶과 어린 시절부터 겪은 힘든 시간들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다.
Pia는 서호주 칼굴리(Kalgoorlie)에서 태어나 농장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것에 자연스럽게 끌렸고, 6살 때 어머니가 사준 가발을 쓰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여자 친구들과 노는 것을 즐겼던 Pia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남자아이들과는 다른 여성스러운 행동과 관심사 때문에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를 옮겨도 괴롭힘과 신체적 폭력은 계속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외모와 성향 탓에 ‘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결국 2009년, 그 고통 때문에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한 여자 친구들이 생겨 함께 메이크업을 하거나 슬립오버(친구 집에서 밤을 보내는 것)에 초대되어, 그 친구들 집에서 입어 보고 싶었던 드레스를 입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글에는 "그게 누군지 너네는 알지? 정말 고마워"라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 SNS에서 커밍아웃을 했지만 자신감이 없어 만우절 농담이라며 말을 번복했다. 그때는 아직 강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드래그를 통해 여성성을 더욱더 표현하게 되었고, 본업이자 생계 수단으로도 점점 자리 잡았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다양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며 영역을 넓혀 갔지만, 마음속 깊은 갈등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술, 마리화나, 파티용 약물에 빠졌던 그녀는 결국 다시 자살 시도를 하게 되었다. 2017년부터는 비밀스럽게 여성으로서의 인정과 위로를 갈구하며 위험한 성적 경험에 빠졌고, 성중독까지 발전했다. 이런 중독과 드래그 커뮤니티 내 괴롭힘이 더해져 신체적 문제와 함께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성별 불쾌감)를 악화시켰다. 젠더 디스포리아란 자신이 느끼는 성별 정체성과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겪는 심리적·정서적 불편함으로, 단순한 외모 불만이 아니라 깊은 정체성의 문제다. 방치할 경우 불안, 우울, 사회적 고립, 심지어 자살 생각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계속되는 마음의 고통 속에서 식이장애까지 겪으며 약물 남용도 이어졌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 기간에는 강제로 술과 약물, 성적인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 동안 식습관 문제를 해결하고 요가와 자기관리, 정신 건강 점검에 집중했다. 불안, 공황발작, 경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환(트랜지션)을 시도할 계획을 세웠다.
2021년 초, 드래그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이전의 어두운 캐릭터와 거리를 두기 위해 이름과 스타일을 바꾸었다. 2016년부터 아티스트로 일하며 모아둔 돈을 거의 모두 써서 코 수술(비중격 교정 및 코 성형)을 받았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과 2018년 폭행 사건으로 인해 무너진 코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고, 디스포리아 완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2021년 말에는 호르몬 대체 치료(HRT)를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께, 2022년 1월에는 SNS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동시에 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그 후로 Pia는 자신에게 집중하며 예술 작업과 커뮤니티 활동에 힘쓰고 있다.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해 가고 있다. (모든 순간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Pia의 모습은 자신감 넘쳤고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삶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로서 9년째 활동 중이지만, 혼자 생계를 꾸리며 고가의 수술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모금 활동도 하고 있다. 앞으로 원하는 수술 종류는 후두 융기 축소 수술, 턱 윤곽 보강 수술, 볼과 가슴 부위 지방 이식, 이마 뼈 여성화 수술, 쌍꺼풀 수술, 얼굴 레이저 제모 등이 있다.
Pia의 이야기는 단순히 성별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오랜 시간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살아온 한 개인의 생존과 회복의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함부로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이 글은 성소수자의 삶을 판단하거나 옹호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순수한 관심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