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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통제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폭력

by 꿈꾸는자

오늘 아침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한 인터뷰 내용이 귀에 꽂혔다. 호주의 청소년 상담 기관인 Kids Helpline 관계자가 나와, 요즘 십대들 사이에서 친구 간의 coercive control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Coercive control은 한국어로 찾아보면 '강요적 통제', '강압적 통제', '강압적인 지배'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을 지속적으로 조종하고 억압하는 감정적·심리적 지배에 중점을 두고 있어, ‘감정적 통제’ 혹은 ‘정서적 지배’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친구 관계에서 강압적 통제라니, 처음엔 조금 낯설게 들렸지만 뉴스를 듣고 나서 관심이 생겨 관련 기사도 찾아보게 되었다.


놀라웠던 건, Coercive control이라는 개념이 원래는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던 용어라는 점이다. 물리적 폭력 없이도 지속적인 감정적 통제를 통해 상대방을 억압하는 형태의 폭력을 가리키는 말로,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이 개념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형법에 포함시키기 위한 입법이 실제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국은 이미 coercive control을 범죄로 규정했고, 호주도 일부 주에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성인 중심의 개념이, 이제는 어린 청소년들 사이에서, 친구 관계 속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졌다. 그것도 단지 몇 명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수백 건 이상 상담 사례로 접수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신호인 것 같다.


강요적 통제는 때로 ‘스토킹(stalking)’, ‘따돌림(bullying)’, ‘사생활 침해(invasion of privacy)’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감정적 폭력인데, 상대방을 점점 더 지치고 불안하게 만들면서 관계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행위다.


예를 들면 친구가 Snap Map(스냅챗 위치 공유 기능)을 이용해 상대방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왜 거기 있어?”, “누구랑 있어?”라고 묻는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가 그렇다. 처음에는 관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감시당한다는 느낌에 상대가 점점 숨이 막히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쉽게 말하기 어렵고, 자존감이 크게 흔들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특히 젊은 여성들, 특히 10대 후반 소녀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실제로 Kids Helpline에는 2024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친구 관계에서 강요적 통제를 경험했다는 상담이 1,000건 넘게 접수되었고, 그중 75% 이상이 여성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청소년과의 상담에서 실제로 '강요적 통제(coercive control)', '독성 관계(toxic relationship)', '가스라이팅(gaslighting)' 같은 표현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Kids Helpline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이 점점 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숨기거나 부끄러워했을 감정을 상담 기관에 털어놓는 일이 많아졌다는 건,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강요적 통제 같은 감정적 폭력은 더 이상 개인적인 갈등이나 일시적인 오해로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친하니까 참아야 한다’는 말 대신, 작은 통제가 반복되면 결국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우리 모두 더 예민하게 감지하고 돌아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 Kids Helpline

Kids Helpline은 호주 전역의 5세에서 25세 아동·청소년을 위한 무료·비공개 전화 및 온라인 상담 서비스다. 1991년에 설립되어 매년 수십만 건의 상담 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며, 전화(1800 55 1800), 웹챗, 이메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24시간 전문 상담사와 연결할 수 있다. 정신 건강, 또래 관계, 학교 문제, 가정 문제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특히 친구 관계에서의 감정적 통제, 디지털 감시, 또래 집단 내에서의 소외와 조종 문제에 대한 상담이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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