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고트만 박사가 말하는 감정코칭형(emotion coaching) 부모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감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부모를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공간 중 하나가 마트다. 마트에서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 때, 부모는 순식간에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어떤 부모는 “울지 마, 집에 가자”라며 사탕이나 다른 것으로 아이의 울음을 달래고, 또 어떤 부모는 “또 시작이네”라며 짜증을 낸다. 그러나 또 다른 부모는 “그 장난감이 갖고 싶었구나. 안 돼서 속상했지”라고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같은 상황이지만 부모의 태도에 따라 아이가 배우는 메시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마트나 공공장소에서의 당황스러운 일화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우는 아이를 빨리 달래기 위해 작은 뽀로로 비타민을 꺼냈다가 해결이 안 되어 결국 큰 막대사탕으로 유혹해 울음을 그치게 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부부 관계와 부모-자녀 관계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존 고트만(John Gottman) 박사는 이런 차이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축소전환형(parent who dismisses emotion)이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울 때 “그 정도 일로 울 거 아니야”라며 감정을 가볍게 여기고 흘려보낸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이가 늘 웃고 행복해하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 유형의 부모는 다정할 수 있지만, 그 의도와 달리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하찮고 표현할 가치가 없다고 배우기 쉽다.
둘째는 억압형(parent who disapproves emotion)이다. 아이가 짜증을 내면 “왜 이렇게 버릇없어?”라며 혼내며 감정을 문제 행동으로만 본다. 이 경우 아이는 감정을 드러내면 혼난다는 두려움을 배우고, 결국 감정을 억누르거나 왜곡해 버린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의 내면과 단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억압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점차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습관을 배우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을 솔직히 나누기 어려워진다.
셋째는 허용적 부모(permissive)이다. 이 유형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행동에 대한 한계나 지도를 거의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질 때 “화가 났구나” 혹은 "화날만하네"라고 말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우는 아이에게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엄마였어도 너무 슬퍼서 울었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고 거기서 멈춘다면 아이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적절한 방식은 배우지 못한다. 즉, 감정을 존중해 주는 듯하지만 결국 아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셈이다. 이 경우 아이는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법은 배우지만, 그것을 건강하게 다루고 조절하는 힘은 키우지 못한다.
마지막이 바로 고트만이 강조하는 감정 코칭형(emotion coaching parent)이다. 이 유형의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성장의 기회로 본다. 아이가 속상해 울면 감정을 인정하고 이름 붙여주며, 동시에 행동에는 분명한 경계를 세운다. “속상했구나. 하지만 물건을 던지면 다칠 수 있으니 그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으면서도,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배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태도가 바로 ‘emotion tune-in’, 즉 아이의 정서에 귀 기울이는 자세다. 부모가 아이의 작은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감정의 이름을 붙여주며, 그 과정 속에서 관계가 단단히 이어진다.
감정코칭은 단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울 때 부모도 순간적인 짜증, 당혹감, 피로를 느끼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면, 아이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공감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아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부모 자신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준비되는 것이 감정코칭의 시작이다.
고트만은 감정코칭을 받은 아이들이 더 안정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관계를 잘 맺는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닐까? 한 가지 안심이 되는 것은 고트만 박사는 부모가 늘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아이의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단지 30% 정도만 제대로 감정코칭을 해도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때로는 지치거나 실수하더라도, 아이는 중요한 순간에 공감과 이해를 경험하면 그것을 내면 깊이 새기고 회복력을 키운다.
결국 감정코칭은 육아 기술을 넘어 삶의 태도다. 아이의 감정을 문제로 보지 않고, 그 감정 뒤에 숨은 마음을 읽으려는 태도다. “또 울어?”라고 반응하는 대신,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다”라고 다가서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단지 30%만이라도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인다면,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배우고, 그 경험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그리고 부모가 너무 바쁘거나 여유가 전혀 없는 순간, 혹은 아이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격앙되어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할 때는 감정코칭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도 명심해야 하겠다. 부모도 준비가 되고 아이도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 감정을 함께 다루어야 해야 진정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마음에 단 30%만 제대로 귀 기울여도, 그 순간이 아이에게 평생의 안정과 회복력을 선물한다.” — 존 고트만(John Got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