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어디까지 해봤니?
원래 손으로 하는 걸 제법 좋아한다.
손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느낌이 마치 내가 창조주라도 되는 것 같은 우월감을 준달까.
그리고 배우지 않아도 곧잘 한다.
몇 년 전 시누가 안 쓰는 재봉틀이 있대서 그걸 받아다가
아이들 옷이며, 남편 옷이며 만들었다.
패턴? 그런 게 어딨 나.
그냥 대강 보고, 특히 빨래 개다가 음. 티셔츠는 이렇게 생겼네 하면 만드는 거다.
내 수면잠옷을 애들 옷으로 리폼해 주기도 하고
뷔스티에 원피스나 운동복 셋업 등 제법 많이 만들었었다.
밤을 새워서 재봉틀을 돌리고 다음날 동태눈깔이 되어 출근해도 행복했다.
(물론 남편은 그게 뭐 하는 체력낭비냐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들어준 티셔츠가 제법 맘에 든다고 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손으로 하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금손까진 아니어도
동손이나 은손 반 정도는 되었다.
그런 내가 미국에 왔다.
김치를 가져다주던 동네 언니들도, 엄마도.
심지어 김장 때가 되면 돈만 입금하면 김장 키트를 보내주던 어린이집도 없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없어? 그럼 만들어야지.
그렇게 난생처음 김장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다.
결과는? 대. 성. 공.
그렇게 10kg 분량이라고 하는 큰 배추 4 포기를 담았었고
동네 언니들이랑 나누다 보니 집에 남은 건 6kg 남짓이었던 것 같다.
가장 번거롭고 어렵다는 김장을 성공하고 나니
이제 한 포기가 남아서 얼마 전에 다시 이번엔 15kg를 하자! 하고 했다.
이제 애들도 내가 김장 양념 준비를 하고
배추를 절이고 비닐 테이블보를 바닥에 깔아 두면
알아서 장갑 끼고 앞치마 입고 딱 앉아서 버무리기 시작한다.
(아! 배추 절이기 팁이 있다.
절여서 물기 빼는 과정이 너무 험난한데, 그럴 때 식세기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식세기에서 배추 절인 내가 나지만 그건 두어 번 빈 상태로 돌리면 없어진다.)
그렇게 김장을 하고 나면 용기가 생긴다.
우리 집엔 작두가 있다.
대패 삼겹살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나의 또 다른 도전이랄까?
저음 food slicer라고 적힌 이 작두를 산다고 했을 때 남편이 그걸 왜 사냐고 엄청 투덜거리다가
막상 25달러라고 하니 그러든가 말든가 했었다.
코스트코에 얇게 썰린 냉동 소고기는 있다.
샤부샤부로 해 먹기 딱인
근데 나는 삼겹살 파인걸?
얇은 고기가 바쁜 저녁시간에 후다닥 구워주고, 양념해서 버무리고, 샤부샤부하고, 볶아주기 좋기에
돼지고기는 어떻게 해 먹지 고민하다가
코스트코에서 파는 커다란 (정말 커다랗다) 삼겹살을 사서
조금씩 잘라서 얼려서 자르면?
여기까지 생각이 가자 아마존에서 작두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 작두는? 정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 집 냉동실엔 대패 삼겹살이 마르지 않지.
혼자 어디 갔지 해봤냐고?
부엌에서는 정말 웬만한 건 다 한 것 같다.
부엌에서만?
아니지.
하이틴 미드에서 보면 나오는 예쁜 여고생들이 비키니 입고 하는 세차.
비록 예쁜 여고생도 아니고 비키니도 아니지만
집 앞에서 셀프 세차도 한다.
물론 세차하기 전 집 주변 하수도를 잘 봐야 한다.
보면 이곳에 litter 하지 말아라, ㅇㅇㅇ강으로 직접 흘러간다.라는 경고 문구가 있는 곳이 있다.
다행히 우리 집 앞은 그렇지 않아서
나는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서 세차를 한다.
근데 문제는 앞마당 물은 석회 필터가 없어서 물만 뿌리면 안 된다.
물을 뿌리고 스퀴시로 완벽하게 닦아야 하얀 얼룩이 생기지 않는다.
지난달부터는 아이들에게 엄마차, 아빠차 세차를 부탁하고 차 한 대 당 5불씩 팁을 주고 있다.
그들의 소소한 용돈벌이다.
기계공이 되기도 해야 한다.
미국 집은 대부분 오래된 집이 많기에
(우리 집도 1967년에 지어졌던가.. 그 뒤로 카펫을 걷어낸 것 이외엔 리모델링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싱크대 배관은 물론
싱크대에 장착되어 있는 음식물 처리기도 매번 멈춘다
그러면 고나을 뜯고, 기계 퓨즈 확인하고 전선 확인하고
또 한국에서 데려온 로봇청소기도 가끔 멈춰주신다.
아무래도 물에 석회가 있어서
물청소관이 석회 찌꺼기로 막히기 때문
그러면 그것도 직접 뚫는다.
차고 문이 갑자기 걸려서 열리지 않을 때,
아이드루자전거가 조립되지 않은 채 배송이 왔을 때,
앞마당 스프링클러가 갑자기 말썽일 때.
이래서 백수가 과로사하는 것 같다.
돈으로 해결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내 성에 차지 않고,
또 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던 한국의 바쁜 워킹맘 생활과는 다르게
물론 여기에서도 내 일분일초는 바쁘지만
그 바쁜 사유가 이런 해결사의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직접 어디까지 해봤냐고?
이 정도면 pretty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