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사람이 없이 홀로서기해야 했던 나날들
홀로서기.
아빠는 잔정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엄마는 정을 주는 법을 모른다.
이런 부모님 아래서 자란 나는, 서운했던 적도 많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중학생의 나는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있길 바랐다.
소위 말하는 인기 많은 popular 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중학생 때 친했던 친구(그 시절에는 다 그런 무리가 있지 않나) 무리와
다 다른 학교로 배정되고 나서
“내 생에 친구는 그들로 충분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마치 ‘홍대병’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아무튼 그랬던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이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또래 ’ 친구‘들과 소통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혼자 돼지갈비 집에 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야무지게 후식 냉면까지 챙겨 먹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나는 미국에 혼자 나와있다는 게 겁나지 않았다.
워낙 혼자 잘하니까.
혼자 친구를 만들어 나갈 때도 있고
운동도 혼자 하고
밥도 혼자 먹고
씨스타 노래 ‘나 혼자’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씩씩하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러다 몇 달 전 같은 미국 땅이지만 저 멀리, 동쪽 끝 보스턴에 사촌 동생이 랜딩 했다.
멋지게 포닥 자격으로 온 동생이다.
살면서 놀리기 가장 편하고 흔히 말하는 내 ‘밥’ 같은 앤 데
이런 애가 무려 그 ‘하버드‘에서 모셔가는 인재였다니?!
아무튼 그 동생이 미국에 오고 나서
역시나 온갖 은행 서류에 집 렌트 서류에
심지어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마다 그렇게 비상연락망을 적으라고 했단다.
당연하지.
다행히 우리는 가족이 와서 남편과 내가 서로를 서로의 비상연락망에 적으면 됐지만,
이 동생은 막역한 친구를 적기도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누나, 나 비상연락망에 누나 적어도 돼?”
Why not?!
정말 why not이다.
누군가의 비상연락망이 된다는 건 어찌 보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적는 게 아닐까.
그 작은 밑줄에 10자리 숫자를 받아 적으며 한 번이라도 더 나를 생각했겠지.
외롭지 않겠지.
낯설지만 잘 이겨낼 수 있겠지.
내 휴대폰 번호가, 그 숫자 열 자리가 동생에게 의지가 되듯
나 또한 여기서 더 열심히 살아내야겠다.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내 ‘밥’이 드디어 내일모레 우리를 만나러 온다!
벌써부터 어디를 데려가지,
나의 바쁜 하루하루 일분일초를 어디부터 보여주지.
어떻게 놀리고 어떻게 갈궈줄지.
장꾸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서 와, 홀로서기는 처음이지?
여기가 바로 너의 비상연락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