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과 시간 체력 마음 감정을 쏟아.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다.
아이를 낳기 전의 삶은 온전하지 않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완전해진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하기 전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정치적이다.
관심을 받는 걸 알고,
넘어지고 혼자 있으면 울지 않으면서, 쳐다보면 운다.
내가 그의 웃음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자꾸 웃어준다.
옛다 이 웃음 너 줄게 하는 느낌으로.
아직 내가 스스로 하나의 인격체이자 어른이 되기 전 엄마가 먼저 되어야 했다.
그 또한 너의 선택이잖아.라고 하겠지만
그렇다. 나의 선택이었다.
지금의 나이로 치자면 25살에 임신을 했고 26살이 되던 날.(그렇다 내 생일에)
나는 그날 엄마가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 보이는 얼굴을 지닌 나인데, 아이를 낳고 산부인과 병동을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너는 여기 왜 있니?”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간호사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어느 순간 대학 친구들과 거리 두기가 자연스레 됐다.
그러던 중 아직도 잊히지 않는 크게 상처받은 일이 있었는데,
12월 초에 둘째를 낳고 12월 말 대학 동기 모임이 있다길래 나는 참석하지 못하니 페이스타임을 하고 있었다.
참석한 동기들과 하나둘씩 인사를 하는데, 한 언니(재수생이었다)가
“너 왜 이렇게 살쪘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애 낳은 지 2주 됐는데…
그 말이 8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렇게 또래들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네 식구가 더 똘똘 뭉쳐서 놀았다.
남편과 나의 육아관의 최우선은,
예의 바르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으로 키우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혼내기도 많이 혼내고 생활 습관과 규칙 등을 지키도록 아주 강하게 잡아야 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나에게 살쪘다고 한 사람도 아이를 낳고,
그 사이 내 아이들은 벌써 만 11년, 그리고 9년을 살아가고 있다.
“어머~ 다 키웠네 부럽다”라는 말이 고깝게 들린다.
그대가 스스로에게 투자하며 시간 보내며 그럴 동안 나는 내 피 땀 눈물과 모든 걸 갈아 넣었다고.
내가 그럴 때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하고 싶었지만,
어미라는 존재는 참고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그게 돌고 돌아 내 자식에게 와서 꽂힐까 두려운 존재이지 않은가.
조용히 관계를 끊어내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남편과 내가 “개인 시간”이라는 것 하나 없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런 삶을 지나온 결과가 우리 아이들이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가히 내가 지닌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반짝이는 명작이라고 칭할 수 있다.
올해는 유난히 우리 집에 손님이 많았는데,
오는 손님마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 아이들이 왜 이리 예의 발라요?
- 아이들이 왜 이리 똑 부러져요?
- 아이들이 왜 이렇게 야무져요?
나와 남편이 쏟아부은 시간이, 눈물이, 감정이 헛되지 않게
내 명품, 내 마스터피스들에게 켜켜이 쌓여 그들을 단단하고 멋지게 만들었나 보다.
그 어떤 칭찬보다 기분 좋은, 아이들은 명품입니다.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