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나의 앞니
내 앞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우리 집 둘째가 10살이니
이 아이보다 더 어렸던 아홉 살의 나.
아파트 앞에서 퇴근하는 아빠와 함께 장난치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빠에게 기댄 나를
아빠가 장난친다고 쓱 피하면서 그대로 엘리베이터 앞 대리석 바닥에 앞니를 그대로 ‘박고’ 말았다
그렇게 내 앞니 두 개는 박살이 나버렸다.
치과의사셨던 엄마와 아빠는 당황을 금치 못하셨고
왜냐하면 영구치가 막 다 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
그날 엄마는 아빠에게 정말 크게 화를 내셨다
장난을 칠 게 있고 치지 않을 게 있지.
그렇게 내 앞니는 내가 9살이었던 그 순간부터 말썽을 부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빠가 주치의라 치과에 돈을 퍼다 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
처음으로 이가 말썽을 부린 건 둘째를 낳고 일 년 반? 정도 있다가
싱가포르에 중요한 고객 투자 미팅을 준비하던 때였다
이를 치료한 지 20년이 조금 넘어갈 시점
투자 미팅이라 내가 평소 다루던 아이템이 아니었고
영업담당자도, 팀장도, 기획팀 그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아서
정말 미팅 설계부터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
자료 작성을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했고,
당연히 두 아이들도 돌봐야 했다.
그렇게 한 달 반 가량을 무리한 결과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뭔가 몸이 이상했다
앞니가 흔들흔들한 느낌
치통이 너무 심해서 잠도 못 자서
호텔에서 나와서 가까운 약국과 편의점을 돌며 타이레놀과 온갖 진통제를 구입했다
시차고 뭐고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이야기했고
당장은 어찌할 수 없기에 진통제로 연명하며 미팅은 어찌어찌해냈다
(코로나 이전이지만 다행히 마스크가 있었다)
마스크가 왜 필요하냐고 하겠지만,
그때 당시 내 상태는 인천 공항 출입국 자동화 기계에서 내 여권 사진과 내 얼굴을 동일인이 아니라고 자꾸 오류를 낼 정도로
사람에게 새 부리가 있다가 이럴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부어있었다.
하지만 3박 4일 출장 후 출장 보고를 해야겠고
출장 보고를 오전에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나서 그대로 휴가를 쓰고 대전으로 갔다
서걱서걱 잇몸을 째서 그 안을 보니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그간 힘들었던 내 하루하루를 아빠가 안 것 같아서
위로받는 느낌과 걱정이 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그 안에는 내 이 뿌리와 박아 넣은 크라운 사이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서
‘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염증 덩어리가 제법 크게 있었다
그걸 긁어내고 집에 왔는데
여전히 부어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 치료하러 내려갔지만 애들 당연히 데려갔다. 애 둘을 어찌하겠는가.)
그 뒤로 앞니는 약간 나의 시한폭탄이었고
내가 피로해서 면역력이 떨어지거나하면 바로 반응하는 내 몸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문제는 미국으로 온 뒤였다.
모든 걸 홀로 해나가야 하는 이 나라에서 나는 기본 숨 쉬는 것조차 부하가 걸려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올 5월 말까지 밤잠 설쳐가며 시험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 부하는 더 심해졌다.
올 5월 중순 엄마 아빠가 오시던 그날도 앞니가 붓고 아프고 흔들렸다
다행히 엄마가 오시는 길에 항생제를 들고 오셔서 그 항생제로 일주일을 버티자 괜찮아졌지만,
문제는 한번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 그곳은 쉽게 염증이 재발하며
이 염증들이 내 치아 뿌리를 녹인다는 것.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것조차 도움인 지 아닌 지 모르겠다.
미국에 온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까지 두 번이나 크고 작은 염증 반응을 있었고
그때마다 약으로 연명하고 있다.
여전히 내 이는 아빠의 평생 숙제이자,
내 몸을 걱정하는 엄마의 바로미터이자,
내가 내 몸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다.
평생 우리 셋만 정확하게 아는 바로미터.
내 앞니가 남은 올해는 이제 말썽 부리지 않길 바라며.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 컨디션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남은 올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