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축하해 주는 우리의 생일.
1988년 10월 27일.
나는 세상에 나왔다.
그러다 내가 딱 26살이 되던 해
2014년 10월 27일.
나의 딸이 세상에 나왔다.
나를 닮아 성격도 급했는지 3주나 일찍 나를 만나러 세상에 나온 그 작던 아이.
내 눈엔 그저 대머리 + 대갈장군(머리가 정말 정말 컸다… 다행인 건 200일 남짓까지 큰 머리 크기가 만 11살이 된 지금까지 자라지 않아서 이젠 머리가 작다)이었는데,
우리 엄마도 시누도 남편도 그렇게 예쁘다고 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못생겼었거든.
못생긴 작은 아이가 그래도 엄마, 엄마 하면서 나를 찾을 때 묘한 느낌이 있긴 했다.
아플 땐 밤새 잠 못 자면서 간호하고
아파서 자지러질 땐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다 했던 적도 있었다.
(다행인 건 태생이 아주아주 건강한 아이라서 잘 아프지 않았고, 대신 이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땐 정말 정말 심각한 경우였다)
나는 모성이 엄청나게 큰 고슴도치 엄마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많은 엄마들 무리에서는 나름 힙한 엄마였다.
아이브 멤버는 물론, 아이브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고 하면 점심시간에 줄 서서 굿즈를 사 오고,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아이템이나, 간식 같은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아이가 어릴 땐 내 생일을 내 아이가 “훔쳐갔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 생일에 대접받고 싶은데, 결국 매번 아이의 생일이니
미역국도 내가 끓이고, 음식도 내가 하고, 파티도 내가 준비해서 아이를 위해 축하해줘야 했기에.
올해로 아이가 딱 만 11살이 되었다.
엄마, 내 생일을 토요일에 하고, 엄마 생일을 일요일에 하자.
(사실 진짜 생일은 월요일이었다, 남편이 고객 미팅이 있어 월요일에 축하하지 못하니 미리 한 것)
그렇게 현명하게 생일을 나눴고, 생일 선물을 사러 간 날
아이들은 무슨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며 같이 간 아웃렛에서 내 이니셜이 달린 목걸이를 사 왔다.
딸이 자기 용돈으로 사준 목걸이는 나의 문신템이 될 예정이다.
앞으로 말도 더 잘 듣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더 ‘괜찮은’ 딸이 되겠다는 아이의 편지를 보고,
‘괜찮은 딸’이라니, 너보다 더 좋은 딸은 없다고 말해줬다.
5학년이 되면서 부쩍 자란 이 아이가 이제는 나의 동반자같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아이 같았다면, 무언가를 해내는 끈기와 노력, 결과에 수긍해 나가는 그런 모습들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도록 만든 것 같다.
마치 블러 처리되어있던 사람이 또렷해지면서 내 눈앞에 실존하는 인물로 바뀌듯
그렇게 이 아이는 내 삶에 더 선명해졌다.
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은 사실 엄청 소박했다.
털이 안에 송골송골하게 퐁퐁하게 달린 분홍 슬리퍼가 갖고 싶댔다.
지난 주말에 둘이 몰에 가서 8불을 주고 귀여운 슬리퍼를 샀고
아이는 그 뒤로 그 신발만 신는다.
신을 때마다 부드러워서 너무 행복하단다.
이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된 거다.
벌써 이렇게 컸네. 싶었다.
미국은 생일 카드뿐만 아니라 온갖 축하카드들이 정말 많다.
약국이나 마트에 가면 카드 구역이 따로 있고,
그 안에 Baby girl/boy, grandma/pa, birthday, retirement, graduation, celebration 등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그중 birthday - daughter 구역에 한 카드가 눈에 띄었다.
양희은 님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 가사 같은 내용이 잔뜩 적혀있는 카드였다.
-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 거절하는 법에 익숙해져 봐
- 너무 힘들면 초콜릿 하나가 의외로 해결책이 될 때가 있어
- 언제나 부르면 엄마가 달려갈게
- 멋진 여성으로 너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
- ‘여자라서’ 못하는 건 없어 그러니 마음껏 날아오르렴
- 너 스스로를 더 사랑해 줘
한 번도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저 카드를 집어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우리 딸이 정말 이만큼 컸구나.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줄 때가 됐구나.
점점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걸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를 비교적 이른 나이에 낳은 나를 다들 부러워하지만,
더 부러워하라지.
이렇게 멋진 동반자가 벌써 있다는 건 충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올해는 여러모로 아이에게도 나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아이의 호르몬 주사 중 한 가지를 마치면서
’ 아이의 심리적, 신체적 변화에 대해 준비해야지 ‘란 마음은 어렴풋이 있었으나,
이제는 내가 이 아이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어른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변화를 맞이한 나의 37번째, 그리고 아이의 11번째 생일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며 보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아이에게 말했다.
- 엄마는, 영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나 느낌이 있었어 항상. 그런데 이제 그런 마음도 너랑 다 나눌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의 세계에 동등한 크기로 입장한 걸 축하해.
We will celebrate this day together till I’m 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