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생활 습관이란, 싫은 걸 참아내는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닐까.
5학년이 된 첫째.
부쩍 “하기 싫지만 이걸 먼저 하겠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하염없이 ‘하기 싫어’를 반복하며
자신이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이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굳이’ ‘왜’ ‘나만’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짜증을 내다가
나에게 아주 뒤지게 혼나고
결국 나쁜 기분으로 그 이릉 다시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을 텐데
5학년이 된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어른스럽다.
어느 날 나에게 와서 그런다.
“엄마, 나는 영어 문제집도 풀고, 한국어 문제집도 풀잖아. 이게 하기 싫은데 그래서 나는 영어 책도 잘 읽고 한국어 책도 잘 읽어”
또 어느 날은
“엄마, 나 이제 extra reading class 안가. 다 여름방학 내내 영어 공부해서 그런 것 같아”
(그렇다, 우리 아이네 학교에는 ESL 즉,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에게 영어를 추가로 가르쳐주는 반보다는 난독증이 많고 읽기 능력이 중요한 미국 답게 학년 수준의 읽기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이들에게 따로 클래스가 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다 그 수업을 들으러 갔었고, 아들은 2학년이 되자마자 그 클래스에서 졸업을 했고, 딸은 5학년이 되자마자 시험을 보고 통과해서 이제 그 수업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 수업에 가면 일반 수업시간 중에 불려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에서 다른 친구들이 다 하는 재미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시샘과 욕심이 많은 우리 딸의 경우에는 이게 너무 억울하고 질투 나고 해서 속상했단다. 그런 게 그걸 이제 가지 않아도 된다니!)
우리 아이들은 매일 일기를 쓰는데,
나이만큼의 문장 개수와(딸은 곧 11 문장을 써야 한다고 슬퍼한다) 하루는 영어로 다음 날은 한글로 적는다.
아무래도 영어와 한국어 둘 다 놓치기 싫은 엄마의 욕심이자,
혹시 리터니가 되었을 때를 대비한 훈련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아이들에게는 부담이자, 자신의 자유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로 느껴진다는 것.
그래도 어쩌니, 너네 엄마가 나인걸.
내가 이미 그 길을 지나와봤고, 한글을 읽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 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니라는 걸 엄마는 아는 걸.
5학년 딸에 비해 동일 월령으로 비교했을 때 3학년 아들은 이걸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한다.
조금 전에도 “엄마 ‘적절한’이 무슨 뜻이야?”라고 묻고 갔다.
아무래도 한국어로 가득 차 있던 그의 머릿속에 영어가 문을 두드리고 insert키를 누른 후 덮어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옆에서 계속 덮어쓰기를 지워가며 아이를 독촉하고.
초등학교까지는 아이의 평생 ‘생활습관’을 잡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했을 때 이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고
내가 원치 않은 결과가 나왔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을
그리고 어렵지만 끝까지 해내는 끈기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그런 의미에서 내 앞에 있는 이 두 아이들의 근육은 오늘도 열심히 운동 중이다.
나 또한 아이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단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