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아이.

그래서 뭐? 경험을 나눌 수 있잖아.

by LindAra

남편은 소위 말하는 ‘목동 키즈’다.

학원이나 과외 없이 묵묵히 학교 공부를 통해 명문대에 간 사람.


반면 나는 필요하면 과외와 학원을 원 없이 다니던 사람이다.

과외와 학원뿐 아니라 각종 운동도 배웠다.

스키, 스케이트, 축구, 수영,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영어(수능, 토플), 논술, 고전문학 등등

돈 주고 배울 수 있는 걸 다 배운 느낌이랄까.

또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녔다. 무려 해외로.

그때는 그게 달갑지 않았는데,

왜냐면 대전에서 구 서울역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거기서 김포(당시에는 김포 국제공항이었다)로 가서 아침 비행기를 탔다.

매번 그렇게 아침 비행기라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가야 했다.

이 새벽은 정말 네시, 다섯 시의 이야기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알았다.

이게 흔치 않은 기회였다는 걸.

방학마다 해외여행 다녀와서 친구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면서 우월감도 느꼈다.

그러면서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뭉크의 절규를 직접 접하고

독일에서 동독과 서독의 경계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말 그대로 ‘체험학습’이었다.

게다가 미국에 다녀온 뒤로 우리 부모님은 여행 국가를 정하는 것도,

여행 테마와 여행 루트, 숙소를 예약하는 것까지(국제전화로 예약했다) 모두 나와 오빠에게 위임하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간단하고도 어려운 자본 투자 말고 나머지 일을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우리에게 맡긴 엄마 아빠의 무모함에 놀랄 뿐이다.


이렇게 나는 삶의 경험치를 채워나갔다.

남편이 항상 말하는 돈으로 산 경험.

그 경험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냐고 정량적인 수치를 요구하던 그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특히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빛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스키를 직접 가르쳐준다.

물론 남편도 가르쳤다.

가르쳐주는 수준이 강사급이다.

아이를 잡고 내가 거꾸로 내려오는 게 가능하니까.

아이의 친구들까지 가능하다.


큰 아이와 스케이트 링크에 간다.

중학생 때 동급생 남자애들이랑 경주를 해도 이기던 나다.

휘청거리는 아이 손을 잡고 스케이트 한번 도는 건 일도 아니다.

당연 아이의 친구들까지 가능하다.


웬만한 운동과 웬만한 지식에 있어서 엄마가 월등하니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당장 나아지기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당근과 채찍을 주기가 편하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 시험까지 봤으니,

자격증 시험 통과 전에는 잘 쳐다보지 않던 매주 오는 아이들 가정통신문도

이제는 눈여겨본다.

일주일 학습 계획을 보면서

‘아~이래서 이런 걸 지금 하는구나’

‘그럼 이제 다음 단계는 집에서 조금 도와줘야겠다’ 등 참견이 가능하다.


사교육으로, 돈으로 산 경험이면 어때.

경험의 크기를 키워야 그 그릇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게 나물인 지, 독버섯인 지 다 만져보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의 눈을 키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애들의 그릇은 매일매일 잘 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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