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많은 엄마의 마음 다루기.
나는 질투심이 참 많다.
둘째여서 그런 걸까.
모든 게 연년생 오빠와 비교되고
어릴 적부터 남아 선호 사상의 선봉자였던 엄마의 영향일까.
이 모든 건 사실 외부에서 찾는 원인일 뿐,
그냥 나라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질투가 많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친구가 달리기 1등을 하면
기를 쓰고 나도 1등이 하고 싶었고
그럼에도 1등을 못한 상황이면, 그 친구에게
"축하해!"라는 말보다는 곁눈질과 "쳇"이라는 마음이 먼저 나왔던 것 같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밉고
나도 진정으로 친구를 위해주고 축하해 주고 기뻐해주고 마음 써주고 싶은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속상한 적도 많았다.
이런 내 속마음을 마포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왜냐면 나는 '마포 기부천사'로 유명했으니까.
음식을 해도 한솥 해서 우리 가족이 먹는 양보다 나눠주는 양이 훨씬 많고,
동네 애들 모아다가 밥해먹이고,
구디백이 이렇게 보편화되기 전 이런저런 이유로 구디백도 나눠주고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아이뿐 아니라 동네 친구들 10명 선물을 다 사서 배달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이게 질투심 많은 내가 그 질투심을 누르고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나와 똑같은 딸아이를 낳았다.
나눌 줄 모르는 아이.
나눌 줄 모른다. 이것은 fact.
주변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excuse이자 그녀의 행동에 대한 관찰의 결과.
남편은 나눌 줄 모르는 아이가 잘못됐다고, 못된 아이라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말을 하기도 했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애가 있냐며.
근데 그건 다른 거지 잘못된 게 아니다.
어쩌면 나눌 필요를 못 느꼈나 보지...
가르쳐주면 되지.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 정말 속상했다.
아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날도 있었기에.
아이의 사회화를 위해 내가 내린 결론은,
비록 돈이 많들지만.
다행히 그걸 부담할 정도의 돈이 있었기에.
아이가 가지고 싶은 걸 항상 세 개 샀다.
그러면 두 개는 자기 손에 쥐고 한 개는 내가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자기 손에 있는 두 개를 주고 싶은 친구에게 주고난 후에야 내 손에 있던
마지막 한 개를 아이 손에 쥐어줬다.
아주 거창한 몇만 원짜리 장난감이 아니어도 된다.
무인 편의점에서 사는 아폴로 한 봉지라도
꼭 두 세 봉지 사서 나누도록 가르쳤다.
학습의 효과는 확실했다.
이제는 몰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자기 용돈이 $30 임에도 불구하고
꼭 동생이 좋아할 것 같다는 걸 사 오고,
인형 뽑기를 성공해서 두 개를 뽑으면
한 개는 동생 주고 싶다고 집에 와서 챙겨준다.
아직도 출장 다녀오는 아빠 편에
온갖 귀여운 문구 용품을 자기 친구 수대로 골라서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나눠줄 날만을 기다린다.
질투 많은 나는 마음 한편이 항상 너무 힘들지만,
내 아이만은 못된 질투심에 사로잡히기 전에
그 마음에 나눔을 미리 심어주고 싶다.
나눔이라는 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질투를 다 감싸버리길.
그렇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