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두 발이 아닌 네 바퀴로 걷는 삶

운전을 '잘 못'할 수는 있어도 '못'할 수는 없다.

by LindAra

우리나라의 '내일로', 유럽의 '유로스타' 등 기차 여행이 대중적인 지역이 있는가 하면,

미국은 소위 '로드트립'이라고 불리는 자동차를 끌고 하는 여행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동부에서는 남북으로 기차 타고 여행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는 들었는데,

여기 캘리포니아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기차를 한 번도 안 타본 친구들도 아주 많다)


그래서 결국 미국에서 운전이라는 것은 개인의 생활권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에 아이의 닌자 클래스에서 만난 몇몇의 학부모와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나라는 평생 운전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며, 대중교통과 도보생활권이 정말 잘 되어 있다.

그래서 내 친구 중 많은 비중의 아이들이 운전을 '못'한다고 했더니

마치 다리가 하나 없는 상태로 어떻게 삶을 살 수 있냐는 식의 답변을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중 한 친구가 한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자기 또한 운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운전을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으며,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운전이라는 기술이 장착되지 않은 성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미국 내 꽤나 많은 주에서 한국 면허증을 교환해주기도 한다

아마 외국인의 면허를 교환해 준다는 건

그만큼 외국인의 유입을 환영하며, 그만큼 외국인 유입량이 적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이민자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의 경우에는 한국 면허증을 교환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정착하는 주재원이던 이민자던 정착의 마지막은 현지에서 면허를 따는 행위라고 한다.

그럼 국제 면허증은?이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국제 면허증 애써 발급받아 왔는데 못쓴다고?

아니다, 국제 면허증 인정 해준다 다만, 정식 비자를 가지고 캘리포니아에 거주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10일 이내에 현지 면허를 따야 한다고 한다.

즉, 10일까지만 국제 면허증을 인정해 준다는 것.

아이러니한 것이 절대 10일 이내에 현지에서 면허를 딸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10일 이내에 현지 면허를 따라는 건 지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운전면허의 시작은 필기시험이다.

필기 후 장내 기능은 없고 바로 도로로 나간다.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집에서 필기시험을 볼 수 있으나,

지금은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한다.

대망의 필기시험을 치르기 전 해야 할 일

(이게 뭐라고 이것도 시험이라고 무서웠다. 그러나 무서워 마시길. 한국어로 언어 선정 가능하다.)

1) DMV사이트에 가입

- 현지 폰번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증 문자가 발송되기 때문)

- SSN도 필요하다.

(SSN은 입국 후 일주일 이내로 발급받아야 그 이후의 정착이 수월해진다. 수월해진다고 모든 게 부드럽게 흘러가진 않지만 그래도 중간에 SSN이 없어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경우는 막을 수 있다.)

2) Real ID로 예약

- Real ID란 미국 내 국내선을 사용하거나 신분 확인이 필요할 때 이 면허증이 내 법적 신분증을 대신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면허증이 신분증이 아니면 뭔가 싶지만, 얼마 전부터 국내선 탑승 시 Real ID가 필수가 되었는데 실제로 그 법이 시행된 후 한동안은 비행기 탑승객의 Real ID 소지가 불분명하여 신분 확인 수월하지 않아서 비행기가 연착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뉴스에 나왔다.)

- 서류 업로드 다 하면 메일로 컨펌 레터가 오는데 가기에 바코드가 있으며, 이 바코드를 프린트해 가면 DMV에 직접 가서 접수할 때 더 수월하다.

- 서류 : 거주지 증명(집 계약서 tenant에 제 이름 있는 부분 + 남편 서명(남편이 Tenant 대표로 서명했기에) + 가족관계 증명서(영문)), 은행에서 발행해 준 주소가 기재된 은행 계좌 상세 내역서를 챙겨 갔다.

(카운터에 계신 분은 아리까리해 했지만 더 윗분(?)이 오셔서 컨펌해 줬다.)

3) DMV 방문 및 시험

- 8:00부터 여는 곳이라 7:48 정도에 도착했고, 8:00에 예약 없이 줄 서서 대기해서 바로 들어갔다.

- 서류 검토하고 - 유명한 미국의 머그샷 찍고(이날 이 머그샷 찍어주시는 분의 마지막 근무날이었다. 이분이 퇴직하시는 날인데, 이 할머니가 정말 딱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를 떠오르게 해 주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바르르 떠는 손가락으로 "Smile, sweetie"라고 찍어주셨다) - 면허 시험 보러 갔다.(컴퓨터에서 한글로 시험 가능)

- 한국어 시험 선택하면 시험이 두 가지이며, 법규 관련 40개와 표지판 해석하는 문제 12개가 있다.

법규던 표지판이던 틀리면 바로 맞는 답이 뭔지 뜨기 때문에 내가 몇 문제를 틀렸는 지를 스스로 가늠할 수가 있다.

나는 법규 문제가 어려워서 초반에 4개나 틀렸다.(속으로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바들바들 떨었다는 사실)

법규 문제는 내가 40문항 중 몇 개를 풀었는지 안 나와서 그래서 좀 더 떨린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처음 보는 시험이라서 생각 이상으로 더 긴장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미국에서 20개 가까운 시험을 본 결과 이날 쓸데없이 긴장한 나 자신이 가소롭다.)

그리고 헷갈리는 문제 패스할 수 있는데 패스하면 마지막에 그 문제 나올 확률이 높다고 안내해 줬다.


그렇게 필기시험을 패스하면 임시 면허증을 준다.

이 임시 면허증을 차에 항상 가지고 다니며 누가 면허증을 요구할 때 보여주라고 했다.

이제는 실기 시험을 등록할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하루빨리 면허증이 갖고 싶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국 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가지고 싶었으며,

매일 여권 들고 다니기 너무 번거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한국에서의 운전 경력이 18년이나 되는 나였지만,

이곳에 와서는 나의 모든 배경이 하나도 없어진다.

내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던 미국 사회 속에서는 결국

Real ID 하나 없는 존재인 것.


그렇게 실기 시험 예약을 하고 나서는 유튜브에서 그 지역 운전 실기 시험 루트를 끊임없이 검색했다.

심지어 미리 한번 가보기도 했다.

아침 9:40 예약을 하고 9:20 정도에 우선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지정된 Window로 간다.

가면

1. 자동차 등록증

(신차를 구입하신 거라면 앞 유리창에 스티커로 임시 등록증 붙어있는데 그거 잠시 떼서 들고 갔다가

다시 받아서 붙여두면 된다. 이 임시 등록증은 추후에 자동차 번호판이 나오면 번호판을 부착한 후 떼면 된다.)

2. 자동차 보험

3. 동승자(캘리 면허 소지자)

4. 필기시험 합격증

이렇게 네 가지 서류를 요청한다.


그리고 채점 지를 주고,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으면 시험관이 차에 타고 주행을 시작한다.

내가 시험 보러 간 날이 이 지역의 풋볼팀인 49ers가 슈퍼볼에서 진 다음날이라,

내심 49ers가 슈퍼볼에서 이기면 시험관이 기분이 좋아서 다 통과시켜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졌기 때문에 나의 의도한 바는 이미 틀린 상태로 주행을 시작해야 했다.


시험 전 수신호와 와이퍼, 비상등, 브레이크등, 경적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것들을 작동하는 버튼의 위치를 아는지 등을 확인한다.



수신호.jpg



시동걸기 전에 수없이 되뇌었다.

나는 시방 이 도로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오,

나는 할머니다. 할머니 길 걷듯 운전하자.

모르면 무조건 시험관한테 물어보자.


그리고 사실 말 다 알아듣지만,

밑밥을 좀 깔았다.

저 너무 긴장하고 여기

출신이 아니라서 영어 잘 못 알아듣는데

그럴 때 다시 물어봐도 되겠냐고.

15점 감점 즉 85점이 커트라인이라고 하길래

너무 많이 체크되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운전할 땐 그런 거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감점 6점으로 합격했는데

그중 직진 신호에서 주변 트래픽 체크 안 해서 -3점

(아니 직진인데 왜 양옆을 한번 보면 되지, 미어캣처럼 자꾸 더 여러 번 보라는지...)

pull over 후 후진하는데 옆에 차 두대가 지나갔는데 멈추지 않고 그냥 후진해서 트래픽 체크에서 -1점

스탑라인 너무 앞에서 멈춰서 -1점

우회전 돌 때 차선 한번 밟아서 -1점

일부러 더 오버해서 진짜 미어캣처럼 운전했는데

숄더체크 잘한다고 굳 드라이버라고 왜 긴장하냐고 웃으며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정말 Real ID를 받고 나도 캘리포니아에서 발급해 준 공식 신분증이 생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 백수가 과로사하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