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비자 말고 가디언즈 오브 하우스가 되고 싶어. 가오하
우리 가족 삶의 가장 큰 변화, 미국 발령이 결정되고 나서
주변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할 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아이고, 네가 고생이겠다, 미국 주재원의 배우자는 식모라던데” 와
“어머 미국 너무 좋겠다! 언제 놀러 가면 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주재원, 특히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한 사람을 미리 본 사람의 경우 전자,
그렇지 않은 경우 후자.
나는 왠지 저 '식모'라는 말이 너무 거북했다.
정말 나의 역할이 밥하고, 청소하고 집에 앉아있는 것에 국한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희망해서 선택한 길이지만 아무래도 워킹맘이 갑자기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온전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커리어라고 할 만큼 회사에 목매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월급에는 집착하는 스타일이기에)
하지만 미국 집에 들어온 순간 알았다.
아 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내 소관이구나.
당장 남편 점심 도시락부터 해결해줘야 했다.
내가 입국하기 전 남편이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모두가 도시락을 싸들고 왔고
혼자 먹을 거 하나 없이 (그땐 나가서 밥 사 먹는 20불 25불조차 아까워하던 시절) 쫄쫄 굶다가
친절하신 누군가가 탕비실에서 컵밥을 꺼내주셔서 그걸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너무 서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사무실 내에 전원이 한국사람이라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낯선 환경, 낯선 사무실, 자리, 언어 모든 게 다 자리잡지 못해 둥둥 떠있는 상태에서는
그런 사소한 일마저 무한정 서러울 수밖에 없으니.
마지 모든 걸 그냥 넘기다가도 어느 날 수많은 손 거스름 중 하나가 탁 주머니에 걸려서 피가 나고 아픈 것처럼.
특히 익숙함 속에서 우두머리이기를 원하는 그의 성향 상 이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힘든 하루였을지 상상이 갔다.
그래서 그와 그리고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점심 도시락 항상 싸주기로.
그때 한 약속을 일 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지켜내고 있다.
(이쯤에서 박수 한번 쳐주자. 장하다 나 자신)
그리고 저녁에 얼굴이 매번 잿빛 똥빛이 되어 지쳐서 퇴근하는 그에게
따뜻한 저녁 식사를 대접해줘야만 했다.
그냥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의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의 퇴근은 늦었고(미국 시간에 맞춰 일하고 한국 사무실이 출근하면 다시 업무를 시작하는 1.6일 치 일을 하루에 해야 한다)
아이들과 남편의 식사는 2회로 나뉘어서 차려져야 했다.
일단 이렇게 남편의 식모는 확정.
그다음은?
아이들 도시락.
이게 또 심각한데..
한국은 급식이라는 아주 위대한 제도가 있어서
아이가 집에서 접하지 못한 음식들도 급식을 통해서 먹어보고 호불호를 스스로가 겪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캘리포니아 특히 우리 학교 급식은.. 냉동 피자를 데워서 식혀서 준다.(안전상의 이유로 절대 뜨거운 음식을 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 도시락도 매번 내 차지다.
(일 년 반동안 단 한 번도 학교에서 주는 카페테리아 핫런치를 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엄마 도시락이 제일 맛있어! 하며 웃으며 다 먹고 오는 아이들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그냥 대충 핫런치 먹고 뛰어놀지 싶은 아쉬움인 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무튼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중간중간 간식까지
내가 해주는 음식만이 이 아이들의 영양소를 채워줄 수 있기에 매 끼니마다 단탄지와 식이섬유 등을 엄청 고민한다.
한국 영양사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이렇게 아이들 식모도 확정.
남은 건 우리 집과 아이들 학교까지의 거리 2마일 남짓.
매일 그 거리를 등하교해줘야 한다.
기사도 확정.
또 이 외에 사교육이 아주 많은 미국 특성상 그 모든 곳도 직접 데려가고 데려와야 한다.
(ㅁㅍ태권도 노란 봉고 104동 앞에 내려주시던 관장님 새삼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를 '식모'라는 두 글자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그럴 바에는
Hey-ey-hey
Mr.Blue Sky를 흥얼거리며
나 스스로를 가디언즈 오브 하우스라고 이름 짓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