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사람들 (8)

락다운과 Father's day (3)

by Linda


카페에서 크로플을 시켜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크로플을 구울때 버터와 설탕의 녹진함이 함께 녹아든 달달하고 매력적인 냄새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렇게 갓 구운 크로플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한 입만을 외치게 된다. 하물며 크로플 한 두 개를 구워낼 때도 그런 냄새가 나는데 수백 개의 크로플이 쉬지 않고 구워진다면 어떠하겠는가. 그 냄새는 지나가던 귀신도 한 번쯤은 돌아볼만큼 유혹적이다.


퉁! 퉁! 퉁! 퉁!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은 어두웠다. 정말 냄새를 맡고 귀신이라도 찾아온걸까. 무아지경으로 빵을 굽고 포장하던 우리의 등 뒤로 갑자기 누군가 유리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악! 씨 깜짝이야."


"저 뭐고?"


음악을 크게 틀고 일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백인 청년들이 우리를 유리창 너머로 보고 있었다. 한 여자애는 술에 많이 취한 듯 얼굴을 유리창에 잔뜩 들이댄 체 거의 노려보듯 우리를 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욕이 다 나왔다. 우리는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덜컹덜컹



무리에 있던 남자 한 명이 문을 열려는 듯 문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아서 음악을 끄니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hey, hey~ #$%#$#^ "



유리문에 막혀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영어실력 탓이 아니라 유리문 탓이다. 진짜로. 어쨌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애들이 밖에서 뭐라 뭐라 하길래 결국 문을 살짝 열어줬다. 그러자 한 아이가 거의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빵 사고 싶어!!!!!!"


엥?


"아니 지나가는데 이 냄새가 저 멀리 골목부터 나는 거야. 우리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잖아."


"빵 살래 얼마야? 얼마야?"



뭐지 인종차별인가? 미친놈들인가? 하고 걱정했었는데 막상 문을 열어보니 그냥 빵을 먹고 싶었던 지나가던 어린 취객들이었다.


"플리즈. 제발."


땀을 뻘뻘 흘리며 냄새의 한가운데에서 일하던 우리는 몰랐지만 그날 밤거리 온통 크로플 냄새로 진동했다고 한다. 그 냄새를 맡고 저 멀리서 술을 마시고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It's on the house, 공짜로 줄게. 맛있게 먹어"



우린 애들이 귀엽기도 하고 웃겨서 그냥 빵을 준다고 했다. 어차피 여분으로 재료를 더 준비했기 때문에 몇 개쯤 주는 건 괜찮았다. 술도 마셨겠다 촐촐한 위장에 갓 구운 빵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땡큐우우우우우우"



유리창에 얼굴을 비비던 여자애의 취기 어린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한바탕 작은 소동이 지나갔다. 잠시 열어본 문을 통해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왔다. 금요일부터 이틀 연속으로 밤새 빵을 굽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는데 찬바람을 쐬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고 고맙다고 하니 뿌듯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크로플 박스>



그렇게 잠깐의 소동을 뒤로하고 다시 밤새 빵을 굽고 포장했다. 밤 9시부터 시작했는데 아침 7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 우리의 크로플 박스에는 카야, 비스코프, 누텔라, 피넛버터 총 4가지와 미니 클래식 크로플 3개, 그리고 직접 구운 브라우니와 페레로로쉐, 초코주사기, 과자가 같이 들어갔다. 굽는 것도 일이지만 포장하는 것도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안 했어?"


우리는 밤새 화장실도 안 가고 일했는데 아침에 카페에 찾아온 에미이와 샘이 대뜸 저 말을 먼저 건넸다.

빈정이 상했다.



"아 미안 미안,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그런데 기분 나빠도 어쩌겠는가. 하하. 그렇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포장된 것들을 먼저 사장부부에게 건네줬다. 가야 할 동네가 너무 많아서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배달하기로 했다. 우리는 차가 없었기에 가게 차를 빌려 탔다.



"휴, 커피 한 잔 마실까?"

"그래."



카페에서 일하면 얻는 가장 큰 장점은 커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밤새 일을 하고 배달까지 하려니 너무 피곤했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으니 해내야만 했다.


그때 우리 둘 다 정신적인 어떤 한계를 넘는 경험을 했다. 한 번 극한의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계점이 더 올라간다고 하던데 이때 수백 개의 빵을 굽고 배달까지 하고 나니 그 후로 견딜 수 있는 피곤함의 역치가 올라간 듯했다.


사실 배달을 어떻게 해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멀미를 커피로 눌러내며 ACT 구석구석을 다 지나다녔다.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네에도 가보고 산골짜기에 몇 가구가 살지도 않는 마을에도 들러서 물건을 건넸다.




배달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시점, 생각보다 뒤로 밀려버린 배달 시간에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다급하게 주소에 적힌 곳의 초인종을 눌렀다.


"What? Who?"


한 참뒤 열린 문틈 사이로 지팡이를 짚는 할아버지가 경계 섞인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J가 운전을 하고 차를 대면 내가 물건을 들고 가서 건네는 역할을 했는데 그동안에는 내가 초인종을 누르면 다들 기쁜 얼굴로 땡큐를 외치며 받아가는 분들만 계셨었다. 적대적으로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당혹스러웠다.



"엄... 웰컴투 크로플?"


"What? 크로플이 뭐셔. 뭐라는 겨."


갑자기 우리 가게이름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문을 다 열지 않은 채로 뒤에 따라 나온 할머니를 보고 구시렁거렸다. 나는 당황해서 주소랑 수령인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여기 아닌가요?"


"맞는데... 기다려봐라."


할아버지가 갑자기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표정이 완전히 풀린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크로플 박스를 받아갔다.



"아이고 우리 딸이 이런 걸 보냈네. 우리 딸이 저기 빅토리아에 어디에 사는데 어쩌고 저쩌고 샬라리 얄라"


갑자기 수다쟁이가 된 할아버지가 자식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달을 잘못 온 줄 알고 진땀을 빼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할아버지의 자랑을 더 들어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배달도 밀려있어서 그만 가야 했다.



"땡큐. 바이. 엔조이~"



짧은 어휘로 잘 즐겨달라고 말하고 다시 후다닥 차로 돌아갔다.



"뭐 하는데? 아... 빨리 안 오나?"


J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피곤하고 배달도 밀려있다 보니 예민의 끝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 내가 생각보다 늦게 오니 화가 난 듯했다. 아니 차 안도 아니고 하물며 밖에서 뭐 혼자 쉬기라도 했을까. 결국 싸우다가 냉랭해진 분위기로 남은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길고 바쁘게 함께 일해본건 처음이었기에 사실 이것 말도고 서로에게 쌓인 것들이 많았다. 더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싸울 기력도 없었다.


"드르르르렁"



그날 저녁 우리는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깊은 잠에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쓰러지듯 든 잠 속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동업을 한다는 건 어쩌면 그 관계를 대가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의 우린 알지 못했다.






이전 07화두 번째 문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