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문 (7)

락다운과 Father's day (2)

by Linda


"아니 아니, 꼭 천 개가 필요하다는 건 아니고."



우리의 격한 반응에 당황한 에이미가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말을 들어보니 9월에 있는 Father's day에 디저트 배달을 할까 하는데 크로플이 천 개쯤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건 예약을 받아봐야 하기에 천 개는 희망적인 숫자고 그것보다 적을지도 모른다고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의 어버이날과 다르게 호주에서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기념한다. 아직 호주의 삶이 어색한 우리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에이미의 말에 의하면 두 날 모두 호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이고 작년에 이맘때 카페 매출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아버지의 날에는 락다운으로 인해서 손님을 받을 수 없었기에 가게들은 전적으로 배달과 포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아까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함께 선물용 디저트 박스를 만들어서 배달해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천 개가 너무 많으면 예약을 제한해서 받으면 돼."


"아니? 천 개? 된다. 너무 좋아. 가자! 하자! Let's go"


마침 기계도 더 샀고 새롭게 개발한 메뉴도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안 돼도 되게 해야만 했다.


카페 사장인 에이미, 샘 그리고 사장이라고 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웰컴투크로플의 사장인 나와 J, 사장과 직원의 관계였던 우리 네 명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 우리가 모인 채팅방 이름은 Rich guys과 돈을 뱉고 있는 이모티콘이었다. 가게 규모가 크든 작든 돈이라는 같은 목적을 지닌 네 명이 모이니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다들 집 안에 갇혀서 심심했기에 사람과의 교류에 목말라 있기도 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정한 거다?"

"오키"

"굳"

"최고"


언어의 장벽을 넘고자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때로는 파파고의 도움을 받으며 이어진 길고 길었던 의논이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에이미와 샘이 예약을 받고 카페 주방을 제공하고 우리는 물건을 만들고 배달을 하기로 했다. 수익은 반반으로 나누는데 일은 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한 감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없는 주방과 인맥을 제공받을 수 있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벤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홍보를 위해 크로플 박스를 만들어 사진을 찍고 온갖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솔직히 얼마나 팔리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에이미의 인맥 덕분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주문이 몰렸다.


"이거 양이 너무 많은데?"


주문량을 우리의 예상을 초월했다. 용돈이나 좀 벌겠지 싶었던 일이 이렇게나 커질 줄이야. 우리의 아이디어가 밖에서 외식도 못하고 여행도 힘든 시점에 부모님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건든 것이었다.



"일요일 하루로 안될 거 같아."


주문을 받아서 엑셀로 정리하던 에이미가 말했다. 주문을 더 받고 싶은데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우리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할 말은 하나였다.



"그럼 토요일도 하자."


"Yeah!"



우리는 몰려든 주문량을 쳐내기 위해 일요일 하루로 계획했던 이벤트를 토요일 일요일 이틀로 늘렸다. 배달을 시간 내에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매장에서 픽업이 가능한 사람들을 우선으로 추가 주문을 받았다. 주문문의에 일일이 답장을 하기 어려워 나도 주문을 받는 일에 투입되었다. 대신 에이미와 샘도 배달을 돕기로 했다.



"그럼 이게 전부인가?"


드디어 화요일 밤 12시가 되고 우리의 예약이 정리됐다. 스프레드시트를 빼곡히 채운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보였다. 주문을 받는 법을 몰라서 다 수기로 작성했기에 빼곡히 적힌 사람들의 이름, 연락처, 주소지와 주문내역을 보고 있자니 에이미도 정말 많은 고생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은 우리다 다 한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수고 많았어! 고마워."


"이제 너네 차례야. 굿럭"



우리는 주문서를 바탕으로 재료를 준비하고 시간계산에 들어갔다. 계산해 보니 천 개가 훌쩍 넘는 양의 크로플을 구워야 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좀이 다 쑤셨는데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려니 신이 났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양의 빵을 구워내려니 조금 긴장도 되었다.



"준비됐어?"


"예압!"


기합 한 번 넣어주고 금요일 밤 열두 시 우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첫 번째 반죽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고 버터와 설탕이 녹아내리는 냄새가 가게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인스타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갓 구운 빵을 홍보했다.>



"뭐하는 데?"


"이거 인스타 스토리로 좀 올리게"


"굳 아이디어"


나는 갓 구운 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우리의 진행상황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구워지는 사진, 포장하는 동영상, 준비된 것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니 반응이 좋다 못해 뜨거웠다. 그렇게 많은 디엠을 받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오전 6시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생각보다 지체되어 8시가 다 되어야 끝이 났다. 가게 유리창 너머로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토요일에는 매장 수령이 대부분이었기에 배달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 번에 2개밖에 나오지 않는 와플기계로 수백 개의 빵을 구워내려니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일요일 물량은 더 이른 시간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재료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우리의 호주판 국밥인 마라탕으로 원기를 보충했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밤 9시부터 빵을 구워야 했다.



"가자 전쟁 치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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