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과 Father's Day (1)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장사를 해보겠다고 메뉴를 개발하고 필요한 물품도 구매하고 심지어 마켓 근처로 집까지 이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얻어낸 우리만의 가게는 비록 일요일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허락된 3 mX3 m 작은 공간일지라도 소중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요일 그 하루를 위해 남은 일주일을 살았다. 평일에는 때론 카페에서, 때론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입장이었지만 일요일에 펼쳐볼 우리만의 가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배움으로 느껴졌다.
작지만 우리의 가게를 열고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내가 가볍게 생각했던 포장 용기 하나하나도 다 돈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불필요해 보였던 청소과정도 왜 요구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직원의 입장이 아닌 사장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 모든 일을 좀 더 의욕적으로 하게 됐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술이나 마시던 의미 없던 밤들이 이제는 이번 주에는 재료를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메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상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살아있었다.
호주에 온 뒤 줄곧 잘 풀리지 않던 일들이 이제야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부푼 꿈 속에서 우리는 가끔 프랜차이즈를 내기도 했으며, J의 우상인 백종원 선생님을 만나 사인을 받기도 하고, 때론 티비에 나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장사도 제법 틀을 갖추었다. 주문을 받는 일에도 실수가 없었고, 빵도 적당한 시점에 미리 구워서 주문이 몰려도 밀리지 않고 제공되는 스킬이 생겼다. 날씨만 풀린다면 메뉴 개수를 3개보다 더 늘려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김칫국을 드링킹 하던 우리의 뜨거운 머릿속에 비해 현실은 너무도 차가웠다.
"이게 뭐야?"
"파파고 돌려봐. 파파고"
느지막이 일어나 라면을 끓이며 볼만한 영상을 찾고 있던 참이었다. 마켓에서 한 통의 장문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락다운 단계가 올라가서 당분간 마켓을 문을 닫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나도 J도 출근 하지 않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쉬는 날을 어떻게 보내볼까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그날 이후 우리는 계속 함께 쉬게 되었다. 락다운 단계가 올라가서 마켓뿐만 아니라 일하고 있던 가게도 문을 닫게 된 것이었다.
"하....."
"이제 어떻게 하지?"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켓장소를 대여해 주는 업체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지금껏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래서 사람이 있든 말든) 문을 열거라고 했었다. 물론 캔버라에 진짜 눈이 왔다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모두가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주의를 믿고 애써 불안감을 지우고 있었는데 정부의 정책 앞에서 개인의 의지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 라면 불겠다. 일단 라면이나 먹자."
"그래."
방금 전까지 신나서 뭘 볼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제 거실에는 라면 먹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절망에 빠져있는 것도 통장에 잔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황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호주에서 우리의 삶은 늘 돌파구를 찾는 일이었다.
"일단 에이미한테 연락해 볼게."
"응. 나도 가게 사장님한테 연락해 볼게."
J가 일하고 있는 카페 사장인 에이미와 내가 일하고 있던 가게 사장님에게 각자 연락을 돌렸다. 앞으로 근무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진짜 아무 일도 못하면 다시 우버 배달이라도 해야 할 터였다. 장사를 위해서 쉐어비도 더 비싼 집으로 이사했는데 큰일이었다.
흔히들 인생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말한다. 어릴 때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문이 닫히면 닫힌 문을 바라보며 울고 불고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외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열린 문이 보였다. 심지어 여러 개의 문이 연달아 열리기 시작했다.
첫째로 열린 문은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된 것이었다. 락다운 단계가 올라가서 일하던 가게가 잠정적으로 문을 닫게 되자 정부에서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을 위해 보조금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서 못 받는 줄 알았는데 이번 보조금은 외국인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일자리를 잃은 게 맞다는 증거로 그동안의 근무 기록이 필요했다.
사실 많은 워홀러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현금을 받는 일을 선택하곤 한다. 나도 처음 일자리를 구할 때 현금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할지언정 절대 캐시 잡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기에 현금을 받는 일에는 손도 대본적이 없었다. 1불 2불이 아까운 처지에 꼬박꼬박 나가는 세금이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법적인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그 결심이 이때 빛을 본 것이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세금을 내면서 일한 기록이 필요했는데, 나도 J도 우린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일했기에 일한 기간과 시간이 인정되어서 보조금 대상자가 되었다!
심지어 우리 둘 다 거의 풀타임에 가깝게 일을 하고 있었기에 가장 높은 금액의 보조금인 750불을 신청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호주 정부는 이 돈을 매주 제공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매주 돈이 들어오자 어색했다.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가? 나중에 또 뭐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우린 외국인이데 돈을 주네? 이런 물음표들이 쏟아졌지만 동시에 호주 정부한테 정말 고마웠다.
코로나 터졌다고 "Time to go home"이라며 외국인 들다 나가라고 할 때는 정말 미웠는데, 이때는 어찌나 고맙던지 호주에서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제일 걱정했던 밥줄이 끊길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자고 다시 마인드세팅을 했다. 둘이서 매주 1500불의 돈이 생기니 셰어비를 내고도 돈이 충분하게 남았다. 돈을 아껴서 장사를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 일자리가 끊겼으니 시간도 충분했다.
메뉴를 더 손보고 포장용지도 더 좋은 것으로 구매하고 테이블 보와 가게 입간판을 비롯해 자잘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을 구매했다. 재료를 더 잘 섞기 위해 베이킹용 믹서기도 구매하고 상업용 와플기계도 하나 더 구매했다. 배송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 미리미리 사두고 싶었는데 자본이 부족해서 미루고 있던 것들이었다. 이 기회에 필요한 것들을 갖출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라 그런지 예상보다 물건들이 빠르게 배송이 되었다. 가뜩이나 좁은 방안이 박스들로 채워졌다. 방한칸을 쉐어하고 있었기에 달리 물건을 둘 곳이 없었다. 이렇게 더 물건들을 갖추고 나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매일 눈앞에 보이니 뭐든 빨리 시도하고 싶었다.
하늘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던가. 집에서 빈둥거리던 우리에게 J가 일했던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너네 크로플 몇 개까지 가능해?"
"몇 개나 필요한데?"
"음... 천 개?"
"뭐??? WHAT???"
두 번째 문이 열렸다. 그것도 너무나도 찬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