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을 여는 법 (9)

차를 구하다 (1)

by Linda


"가게 이번 주부터 다시 열어도 된대."


"아 진짜가."


J가 하품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퉁퉁 부은 얼굴이 지난날의 쌓인 피로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도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꺼내며 마켓에서 온 메일을 건넸다. 아침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잠을 잤음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이럴 땐 일단 뭘 먹어줘야 한다.


우리는 마주 앉아 라면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마켓을 열어도 된다고는 하지만 대신 마스크 사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요구됐다. 그러니 한 번에 팔 수 있는 양에 제한이 있을 터였다. 개수를 좀 줄여서 가져가야 할까?


"못 먹어도 고 해야지"


역시 J다웠다. 빵 12개를 버리면서도 그렇게나 속상해했는데 괜히 이번에 더 많은 빵을 버리게 될까 봐 그래서 J 가 속상할까 걱정됐다.


"오빠야 못 믿나"

"에휴"


글쎄. 이렇게나 의견이 확고하니 이번 주에도 빵은 200개를 넘게 가져가기로 결정됐다. 그때 에이미한테도 연락이 왔다.


"린다! 계산해 봤는데 우리 각자 천불씩은 가져갈 거 같아."


좋은 소식의 연속이었다. 영원히 닫게 될 줄 알았던 마켓도 3주 만에 다시 열게 되었고 그 사이에 이벤트를 통해 돈도 벌었다. 에이미의 사업장에서 진행한 이벤트였기에 재료비 등을 뺀 돈을 4 등분해서 급여로 받기로 했는데 네 명이서 나누고도 각자 천불정도의 금액을 가져가게 된 것이었다.


"근데 우린 그 돈 그대로 다시 써야 해."


샘이 슬픈 이모티콘을 덧붙이며 말했다. 나와 J가 싸우면서 배달을 하는 동안 에이미네는 배달 중 사고를 당했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수리비용으로 번 돈을 다 다시 쓰게 됐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재밌었어. 고마워 J, 린다."

"우리도 고마워."


중간에 절교를 할까 생각할 정도로 짜증 나는 일도 있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니 훈훈함만 남았다. 락다운으로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망한 줄 알았는데 결과론 적으로는 3주 푹 잘 쉬고 돈도 벌고 재정비를 잘한 기간이었다. 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뒷맛이 썼다.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제약이 있었고 모든 것이 결국엔 운에 달렸다는 게 불안하고 허탈했다. J도 나도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것을 느꼈으리라.


그 주 일요일 우리는 다시 가게를 열었다.


"어? 누텔라 녹는다."

"오 대박. 이제 이거 팔 수 있겠는데?"


몇 주를 집 안에서 쉬었다고 그새 캔버라에도 봄이 왔다. 짤주머니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누텔라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 얘들아, 겨울은 끝났다. 다시 일하자.


호주에서 디저트를 팔 때 정말 중요한 것이 누텔라다. 누텔라에 집착하는 광팬들이 많았기에 누텔라 없이 장사를 하면 손해가 막심했다. 날씨가 풀린 덕분에 우리의 메뉴에 다시 누텔라를 추가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으로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누텔라 덕분에 크로플은 이제 없어서 못 파는 메뉴가 되었다.


"와 오늘도 완판이네."


첫날 130개를 가져오고 기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제 200개는 우습게 팔리는 숫자가 되었다. 세 개였던 메뉴도 이제 열 개로 늘어났다. 단골과 새로운 고객 모두 우리를 좋아했고 매주 텅 빈 재료와 매출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 날 행사를 끝내고 느낀 씁쓸함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tempImageTc3FR7.heic 열 가지 맛



우리의 눈으로 크로플이라는 아이템이 잘 팔린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지난 몇 년간 도넛 등의 디저트를 판매하고자 개발했던 메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레시피를 크로플에 적용하면 우리는 배스킨라빈스를 뛰어넘는 크로플 31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처음에 수레를 나르며 느꼈던 기쁨은 사라졌다.



"안 되겠다."


장사를 정리하고 마라탕을 먹던 중이었다. J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를 구하자."

"좋아."

"좋다고?"

"어."



앞뒤 맥락 없는 J의 말에 좋다고 대답하니 오히려 J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나는 현실성을 먼저 따지는 사람이었기에 방법 없는 아이디어에 좋다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공간에 고팠다. 일요일의 제한된 공간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에이미와 샘처럼 가게가 있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차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무력감을 느낄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우리의 글을 잘 읽어본 분들이라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차를 가진다는 게 배신처럼 느껴질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중인 두 명의 신체건강한 그러나 빈털터리 청년들의 이야기였는데 너네가 갑자기 차를 산다고? 돈 없다며?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차를 가질 수 있지? 지금은 안돼.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는 2021년 10월, 크로플 장사를 시작한 지 고작 네 달 남짓이 지난 시간이었다. 중간에 락다운으로 인해서 한 달가량 쉰 것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열 번도 안된 장사를 마친 시점이었다. 근데 차를 살 돈을 모은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러나 우리는 차를 구했다. 매자를 빠트린 게 아니다. 우리는 차를 구매하지 않았다. 우린 차를 구했다.


"린다야 타. 가자. 장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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