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평불만러

by 린다

종종 ‘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만큼 내 또래가 주도하던 세상은 저만큼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의 생각이 새롭지 않고, 신체적 능력도 뒤떨어지는 것을 체감하며 점차 ‘뒷방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어느 조직을 가든, 어느 모임을 가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찾기 힘들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오늘 하루 내가 내뱉었던 모든 말들을 곱씹어보며 혹시나 누군가에게 꼰대같이 느껴지진 않았을는지 스스로 검열해 보는 피곤한 일상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나의 세대가 주된 세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서슴없이 꼰대스러운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그 말들이 굉장히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는 말들이었다고 느끼지만,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세상도 그걸 인정하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을 할 때 역시 나의 방식과 생각을 신입직원들이 잘 받아들이고, 따라와 주길 바랐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나만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선배의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면서 때와 시에 맞게 고쳐진 노하우의 집약체 같은 것이라고 여겼고, 내게는 이것을 잘 익혀서 후배에게 잘 전해주는 것이 일종의 의무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잘 배우고 익힌 후배들이 훗날 그때그때 일부 고치고 수정해 나가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구리가 올챙이던 시절을 새까맣게 잊고는 처음부터 어엿한 개구리였던 마냥 굴었구나,라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신입직원을 가르치다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일은 허다하다. 신입직원이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면 일단 배우는 데에 집중해 주면 좋겠는데, 종종 어떤 신입직원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대략 세 가지의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것은 기계로 하면 빠르게 끝낼 수 있는데, 왜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지(기계를 안 사주니까..),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하면 돈을 더 주는지(그럴 리가.. 너 시급이잖아), 휴무가 너무 적은 건 아닌지(그러다가 영원히 쉬는 수가 있어..) 등등 신입직원들이 내게 쏟아놓는 궁금증을 가장한 불평불만은 수도 없이 많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장이 아니라 나 역시 직원일 뿐이고, 다만 연차가 있어서 사장님 대신 일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내게 아무리 불평을 늘어놓아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그 불평들을 사장님께 모두 전달할 수도 없는 나는 중간에서 등이 터질 뿐이다. 제발 조용히 하고 일단 일부터 배워서 1인분의 몫을 한시라도 빨리 해줄 수는 없는 건지 멱살을 잡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해주고 싶지만, 당장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현실을 생각하면서 신입직원이 도망가지 않도록 꾹꾹 눌러 참는 중간관리자의 속은 아무도 몰라주는 이 참담한 상황. 가끔은 신입직원이 중간관리자인 나를 건너뛰고 사장님께 바로 불만사항을 말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일은 더 커진다. 필터 역할인 중간관리자가 없어지니 걸러지는 것 없이 모든 말들이 사장님의 귀로 쏘옥 들어가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이란, 덕분에 모든 구성원들이 한동안 살얼음판을 걷듯이 불안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계기로 입조심을 해주는 신입이 있는가 하면, 이 사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 채 티 없이 해맑기만 하거나 하던 데로 계속 사장님의 심장에 화살을 날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신입도 있다.


그런데 신입들이 날린 화살이 종종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 신입직원에게는 차마 할 수 없던 짜증을 부리거나 신입 입단속을 제대로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사장님의 눈에서 어떤 깨달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내게 쏟아놓는 커다란 분노와 짜증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는 기적처럼 신입직원의 요구와 불만을 수용하고 일부 개선해 주는 일 또한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신입이었을 때 그 화살들을 똑같이 날려본 경험이 있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시 중간관리자였던 선배의 질책이었다는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장님의 생각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 그거 절대 안 돼.’라면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꼰대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나 역시 예전에는 뾰족하고, 세상만사 불만이 많고, 어떨 땐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더 많은 게 아닐까 싶은 프로 불평불만러 신입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샌가 불편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신입들이 불편할수록 내가 편해지기도 하니까 그냥 가볍게 잊어버린 것이다. 불평과 불만이 무조건 나쁜 이야기나 듣기 싫은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과 인식의 다양성이라고 여긴다면, 사실은 그 뾰족한 말들이 개인을 바꾸고, 조직을 바꾸고, 사회와 나라를 바꾼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내가 속한 조직이나 단체의 문제점이라던지 하는 부분을 고민해 보거나 논의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슬그머니 발을 뺄 준비를 하거나 흐린 눈을 하고 못 본척하는 것이다. 신입직원일 때는 나 역시 앞뒤 가릴 것 없이 화살을 날리며 맹랑하게 굴었던 적도 있었고, 조금 연차가 쌓인 후에는 사장님께 하고 싶을 말이 있을 때면 몇 날며칠을 머릿속에서 말을 만들곤 했었다. 버릇없어 보이지 않고, 최대한 예의 바르고 조리 있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단어를 고르고 순서를 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꼭 해야 할 말이라고 판단되면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는 언젠가는 꼭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입을 다물고, 차라리 차선을 준비하는 약간은 비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사장님은 더 이상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나를 보며 ‘드디어 완전한 내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반대다. 어떤 조직에서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의견이나 제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고칠 데가 없는 완벽한 조직이 아니라 조직원들이 포기해 버린 조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원래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간섭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애정도 관심도 없는 조직이라면 구태여 듣기 싫어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입사원이 불평불만이 많다면 좀 더 나은 조직의 미래와 근무환경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곤 하며, 그래도 그들에겐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구나, 미루어 짐작해보기도 한다.


바깥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이다. 여름은 줄곧 청춘에 비유된다. 식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짙은 녹음이 무성한 계절. 때로는 비와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지만,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뜨거워지는 계절. 지금의 나를 계절로 가늠해 본다면 어디쯤일까? 여름의 끝자락일지, 이제 막 더위가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일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삶과 그에 대한 나의 태도는 늦여름도 초가을도 아닌, 어쩌면 초겨울을 맞이하는 것처럼 차갑고 냉소적인 것 같다. 나의 뾰족한 생각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기대도 없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의지마저 없는, 한겨울 뜨뜻한 아랫목에서 앉아 무슨 일이 있어도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는 게으른 어른. 다음 세대가 세상을 더 좋게 바꿔주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조용하고 무사한 내 시간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비겁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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