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꽤 가난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아끼는 모습,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식재료를 사러 시장에 갈 때면 조금이라도 값을 깎아보려고 수줍게 ‘조금만 깎아주세요’라고 말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엄마는 숫기 없고 새침한 성격이었는데, 그 성격에 매번 깎아달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엄마도 나이가 들고 적당히 넉살도 생겨서 시장에 가면 ‘사과 알이 이렇게 작은데 왜 이렇게 비싸냐’라던가, ‘감자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아직 세상의 풍파를 충분히 겪지 못한 채 가난한 부모가 되어버린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아달라는 말을 하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걸 내가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렴풋이 짐작해보곤 한다. 그렇게 여유롭지 못한 부부에게서 태어난 첫딸은 소중하면서도 언제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는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도 몰랐을 것이라 아빠는 곧장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엄마는 즐겨마시던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줄였다. 그렇게 아낀 돈은 내 분유값으로 바뀌었지만,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 날 내가 잠든 동안 잠시 커피 한잔이 간절했던 엄마가 찬장에서 커피와 프리마를 꺼내던 중 잠에서 깨어난 내가 왕왕 울기 시작하자 엄마는 얼른 분유를 타려다가 프리마에 눈이 갔다고 했다. 비슷한 우유성분인데 한번 먹여볼까 싶어 프리마를 조금만 타서 내게 물렸는데, 그걸 먹는 어린 나의 눈이 번쩍이며 거부감 없이 쭉쭉 빨아들이길래 엄마는 급 죄책감이 들어 냉큼 그것을 빼앗았다고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맛본 어른의 맛이었을까? 아마도 달짝지근하면서도 슬쩍 고소했을 그 맛이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도 고소하고 달큰한 흰 우유를 즐겨마시게 된 작은 계기쯤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는 평소에도 채소나 과일 같은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좋아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더더욱 햄이나 소시지 반찬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참치캔조차도 식탁 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몸에 좋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비싸다는 이유에서였다(물론 비싸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을 테지만). 그러던 어느 날, 주말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한낮이었다. 엄마는 집에 없는 날이었다. 엄마가 외갓집에 갔었던가, 아니면 다른 약속이 있었을까? 왜인지 그날은 아빠가 우리들의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그동안은 내내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건 엄마였기에 부엌에 있는 아빠가 조금은 낯설어서 한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아빠는 부엌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을까?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동안 먹던 김치찌개랑은 묘하게 다른 냄새인데, 하며 일명 난닝구만 입고 땀을 흘리며 밥을 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윽고 아빠가 우리를 불렀고, 우다다 식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빠가 뚜껑을 열어 보여준 냄비 안에 있던 음식은 바로 참치김치찌개였다. 엄마는 웬만해선 맘껏 먹도록 허락해주지 않던 참치가 통으로 들어가 있는 엄청난 음식이었다.
“아빠가 만든 참치찌개야! 먹어봐.”
그렇게 말하던 아빠의 얼굴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고, 기대감을 가득 안고 한입 먹어본 내 눈에선 아마 별이 반짝였을 것이다. 맛있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없이 밥을 먹어치웠다. 음식은 엄마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빠도 이런 멋진 요리를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라니! 그게 이렇게나 맛있다니!!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렇게 아빠가 내게 처음으로 해줬던 음식은 참치김치찌개였고,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에 처음으로 먹었던 참치김치찌개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빠가 만든 뭔가를 먹었던 사실이 있었겠지만, 단지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하는 최초의 ‘아빠의 손맛’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종종 참치김치찌개를 먹을 때면 난닝구를 입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던 젊은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젠가 운전을 하고 있는 아빠에게 ‘나한테 처음으로 해준 음식을 기억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아빠는 모른다고 했고, 나는 이 이야기를 아빠에게 해주었다. 아빠는 그랬느냐며 괜히 쑥스럽다고 말했고, 그런 아빠의 양쪽볼은 보기 좋게 붉어져있었다. 붉어진 아빠의 얼굴은 물론 적당한 부끄러움과 머쓱함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좋아하는 기색이 더 큰 듯 보였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해주는 아빠에게 나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젊은 시절을 자주 말해주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그때의 아빠가 얼마나 든든하고 멋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하루 종일 에너자이저처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밤을 꼴딱 새우며 일을 하거나 술을 마셔도 다음날 꽤나 멀쩡히 출근을 하던 20대도 지나 나는 이제 아침에 커피가 없으면 제대로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30대 후반이 되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커피를 직업으로 삼은 덕에 커피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가까이에서 공수해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아침에 급히 원두를 갈아 머신에 끼우고 졸졸 추출되는 커피의 향을 맡으면 그제야 진정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추출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완성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는 순간의 황홀함은 출근의 고됨도, 남은 하루에 대한 걱정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이제 커피가 없는 아침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이런 나 역시 커피는 입에도 잘 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시럽과 크림이 잔뜩 올라간 달달한 커피만 간신히 마시거나 대부분은 레모네이드와 같은 커피가 들어있지 않은 음료만을 마시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 눈에 새카만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친구 동그라미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묻는 내게 마시다 보니 오히려 이게 더 깔끔하고 괜찮다고 말하던 동그라미는 호로록호로록 그 검은 물을 잘도 마시곤 했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상당히 매력적이라 한창 지갑사정이 안 좋은 날이면 ‘나도 아메리카노를 마셔볼까’ 하는 고민을 거듭하곤 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처음 주문했던 날이 기억난다. 밍밍한 데다 쓰고, 달달한 크림이나 우유도 없이 까맣기만 한 비주얼은 역시나 적응되지 않았고, 나는 스틱설탕을 3 봉지나 뜯어 넣어 커피가 걸쭉해질 지경이 되어서야 간신히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동그라미는 한참을 웃었고, 나는 마치 소주를 넘기듯 크- 캬-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평소에는 커피를 마시고 나면 사탕하나라도 물어야 개운해지곤 했던 입안이 이상하리만큼 깔끔했다. 하루가 지나니까 그 맛없던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났고,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는 동그라미에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가자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한동안은 스틱설탕을 세 봉지나 부셔 넣고, 역시나 소주를 마시는 듯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동그라미는 ‘혹시 괴로운 일이 있어서 소주가 마시고 싶은데,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거야?’라고 묻기도 했지만... 지금은 설탕은커녕 가끔은 샷추가를 해서 마시기도 하고, 그러다 커피가 직업이 된 탓에 다양한 원두와 추출방법을 탐닉하기도 하지만 종종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셨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풋풋하고 어리숙했던 어린 날의 내 모습도.
초심, 첫사랑, 첫인상, 초면.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들은 대게 설렘을 포함함과 동시에 은근한 두려움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다. 낯선 음식을 처음 맛볼 때의 떨림도 그렇고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오던 누군가를 처음 볼 때도 그렇다. 기분이 좋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저릿한 느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무언가가 견딜 수 없이 지겹고 지루해질 때면 종종 그것의 처음을 떠올려본다. 나는 나름대로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나의 삶에 대해 때때로 부모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때면 가난에 힘겨워 어린 딸에게 분유대신 프리마를 먹여보고는 바로 뺏어든 젊은 엄마의 마음을 떠올려 보거나 오랜만에 서본 부엌에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줄까 고민하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젊은 아빠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자식이 주는 행복함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라는 감정을 내 부모는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 기쁨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직 혼자 살아가는 딸의 삶에 영영 그런 기쁨이 찾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또 자신의 커피 한잔을 위해 카페직원의 하루를 충분히 망칠만한 말들을 서슴지 않는 손님들이나, 매출을 위해서라면 직원의 희생정도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장들로 인해 한때 내가 사랑했던 커피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게 느껴질 때면 처음 아메리카노에 설탕을 넣지 않게 된 순간과 훌륭한 커피를 처음 만났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 방법들이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야 되지 않겠지만 잠시나마 마음속의 파도를 진정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니 말이다.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처음 내 마음에 무언가가 깊게 들어온 순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그 마음들은 분명히 내 안 어딘가에 생생히 살아있다. 언제고 내가 다시 꺼내 들여다봐주기를 바라면서. 내게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첫 순간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들 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이 말이다. 아직도 내게 새로움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언젠가 다가올 새로움 들을 차곡차곡 내 안에 저장해 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무언가 견딜 수 없이 지겹고 지루해질 때 하나씩 꺼내서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