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

by 린다

뭐가 됐든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내게 밸런스게임은 참 힘든 영역이다. 누군가 ‘맛이 보장된 맛집을 2시간 기다려서 먹을 것이냐, 아니면 그 옆의 무난해 보이는 식당에 기다림 없이 들어가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큰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만약 질문이 맛집이나 식당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유명 로스터리 카페나 커피에 관한 질문이었다면 또 대답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내게 ‘음식’이나 ‘맛집’은 어떠한 결정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분야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보던 요리경연프로그램에도 딱히 흥미가 없어서 따로 챙겨보지 않은 덕에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유명한 밈이나 유행어를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사람이 북적이는 맛집을, 그것도 웨이팅까지 해가면서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이렇게 미식에 대한 기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내게도 종종 웨이팅을 해서 맛집을 찾아갈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대부분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함께 가는 지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굳이 기다리면서까지 맛집을 찾아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웨이팅이란 내 사전에 없다’라는 식의 고집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웨이팅을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먹었을 때, 기다린 만큼의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가끔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자주 느껴본 적 없던 희열을 마주할 때도 종종 있다. 그런 행운을 맞았을 때의 느낌이란 한 달 내내 저염식만 먹다가 31일째에 갓 끓인 라면을 후루룩 한입 먹은 듯한 그런 느낌, 내 몸 구석구석 존재도 몰랐던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는 느낌 같다고나 할까.


겨울이 물러가기를 주저하던 어느 날,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이었다. 민이 쉬는 날이었고, 냉장고는 텅텅 비어 먹을 것이 없었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민이 대전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집을 안다면서 가겠느냐고 물었다. 검색해 보니 리뷰에 웨이팅이 있다는 말이 적잖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먹어보라는 당부를 남긴 글들이 많았다. 매장은 넓지 않아 보였고, 음식이 나오는 속도도 꽤 느린 듯했지만, 딱히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민의 의견에 동의하고 우동집을 찾아갔는데, 멀리서부터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몇 보였다. 우리 앞으로 대기한 팀은 10팀 남짓, 기다릴 것인지 바로 옆에 있는 무난해 보이는 김치찌개집에서 뜨끈한 김치찌개로 대신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 집의 우동맛을 칭찬하는 민의 형용사들의 나열에 웃음이 나서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엔 바람이 차갑고 제법 날카로워서 햇볕을 따라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햇볕을 따라 걸으며 민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을만했다.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떡집에서 쫄깃한 시루떡도 한팩 사서 주머니에 넣고, 동네의 유명한 빵집에 들러서 실컷 빵구경도 하고, 우연히 발견한 복권방에서는 민의 생일과 나의 생일, 그리고 부모님의 생신 날짜를 조합한 알 수 없는 숫자로 복권도 하나 구매하다 보니 입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시간이 제법 빠르게 흘렀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우동집에 입장하자 따뜻한 기운이 훅 끼쳤다. 짭조름한 쯔유냄새와 고소한 튀김냄새도 시장기를 돋웠다. 뜨끈한 국물을 좋아하는 나는 가케우동, 쯔유를 부어 비벼 먹는 우동을 좋아하는 민은 붓카케우동을 주문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린 만큼 배가 고팠던 우리는 카츠도 하나 주문했다. 예상했던 데로 음식이 나오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만, 자신 있게 ‘모든 재료 국내산’이라고 쓰여있는 원산지 표시를 보면서, 탱글한 우동면을 입에 넣고 눈이 반짝이는 다른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설령 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오늘은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을 땐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그 모습에 또 마음을 뺏겼고, 카츠에 함께 나오는 조그만 밥은 일반밥이 아니라 간장달걀밥이었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가케우동은 그 모습처럼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맛인데도 자꾸만 손이 가는 맛임에 틀림없었고, 자가제면으로 만드는 우동면은 탱글함이 남달랐다. 붓가케우동을 주문한 민은 국물이 없는 우동면에 쯔유를 부어 야무지게 비볐는데, 열심히 비벼놓고는 바로 먹지 않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면에 쯔유가 충분히 흡수되면 더 맛있다면서 음식 앞에서 고된 기다림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우동을 참 좋아하는 민이라서 ‘역시 먹을 줄 아는 놈이군’ 하며, 면에 쯔유가 흡수되는 동안 가케우동을 같이 먹었다. 앞서 말한 듯이 미식이나 맛집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로서는 붓가케우동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민과 함께 다른 우동집 몇몇을 다니면서 민이 주문한 붓가케우동을 몇 번 먹어본 적은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함을 느껴본 적 또한 없었던 것이다. 잠시 쯔유가 흡수되길 기다린 민이 작은 접시에 붓가케우동을 조금 덜어 내게 주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큰 기대감이 없었는데, 후루룩 한입 먹어본 순간, 음식을 기다리면서 다른 손님들의 눈에서 봤던 그 반짝임이 분명 나의 눈에도 생겨났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 아주 맛있고 특별한 것을 먹었을 때 내 눈이 번쩍이는 것을 때때로 기다리고 기대하는 민이 ‘역시! 드디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에 잘 흡수된 쯔유의 맛과 함께 나온 레몬을 쭉 짜 넣어 생겨난 은은한 레몬향이 탱탱한 우동면 사이사이를 잘 휘감고 있는, 차분하면서 특별하고도 정성스러운 맛이었다. 보들보들한 카츠와 간장달걀밥까지 우리는 모든 접시의 음식물을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분명히 ‘먹었다’라는 말보다 ‘먹어치웠다’라는 말이 잘 어울렸던 식사였다.


언제나 천천히 느리게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손으로 하는 수작업을 좋아하는 내가 왜 유독 먹는 것에 있어서는 쉽게 귀찮아하고 효율을 따져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식탐’이라 여기며, ‘탐욕’과 같은 단어와 비슷한 이미지로 여겨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다 그런 것들 아니었나? 브런치에 짧은 글을 한편 업로드하는데도 그것이 어려워 한참이 걸리고, 몇 달 동안 한 글자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글을 읽는 것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사실 읽는 사람도 많이 없는 데다가).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몇 달만 에라도 글 한편을 완성해 내곤 글의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완성했다는 그 자체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무엇을 그릴지부터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그림을 SNS에 업로드해도 별 반응이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한 달에 그림 하나씩은 꼭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조금 힘들더라도 그 과정 자체를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쓴 아주 부족한 글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좋은 감정을 가져간다면,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딱 한 명이라도 예쁘다고 생각해서 저장해 준다면 나는 왠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음식이라는 것도 좋은 재료를 고르고, 제대로 된 조리시간을 들여야 하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식기를 찾는 일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아주 느린 작업이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는 것은 만드는 것에 비해 허망할 만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그 우동집의 주인장이라면, 붓가케우동을 한입 먹고 눈에서 별이 반짝인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 톨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 물론 그 우동집은 내 글이나 그림 같지 않고 나처럼 눈이 반짝인 사람이 아주아주 많은 맛집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통해 음식 앞에 앉은 내게도 단지 기다림이 지루함으로만 남지 않았고, 새로운 취향이나 뜻밖의 행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이처럼 무언가를 오래 기다린다는 것이, 무언가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이 단지 비효율적이고 시간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가치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뭐든 빠르게 생기고 빠르게 없어지는 요즘의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 빠르게 나오는 음식을 빠르게 먹고, 빠르게 없어질 유행을 빠르게 좇으려다 보니 내가 점점 무엇을 가치 있게 여겨왔는지 잊을 때가 많아진 것 같다. 빠른 음식에도, 빠른 유행에도 그에 걸맞은 맛과 멋이 있지만, 천천히 느리게 나오는 것에도 역시 들인 시간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는 맛집 웨이팅을 하면서 한번 더 되새겨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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