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시간을 맞춰 꼬박꼬박 우리를 찾아온다.
30년이 넘게 해마다 겪어온 더위와 추위지만, 다시 일 년을 건너 마주하는 계절은 때마다 새롭고 또 놀랍다. 해마다 여름이나 겨울이 찾아오면 ‘몇백 년 만의 더위’라던지 ‘몇십 년 만의 한파’ 같은 말들이 빼놓지 않고 언급되곤 하는데, 이번해에도 여름이 채 오기도 전부터 ‘몇백 년 만의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말과 ‘작년보다 더 덥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집에 에어컨을 두지 않고 5년째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다소 협박과 같은 말들이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풀옵션 혹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옵션이 있는 집에 살았다. 그래서 냉장고나 세탁기는 구매해 본 적이 있어도 에어컨은 한 번도 구매해 본 적 없이 항상 옵션으로 설치된 것을 누려왔다. 덕분에 무더운 여름에 집에만 있어도 나름 쾌적한 집순이의 일상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손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집을 만나게 되자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매 목록에서 하나둘 제외시키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에어컨이었다. 미련 없이 에어컨을 목록에서 제외시키고는 호기롭게 소파를 추가했는데, 아마도 누군가에겐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것이다. 소파는 없이 살더라도 에어컨 없이 어떻게 여름을 지낼 작정이냐고 묻겠지.
내 기준은 이러했다. 소파는 일 년 내내 드러눕거나 앉거나 하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에어컨은 일 년에 여름철에만, 그것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약 한 달 정도만 요긴하게 사용되니 에어컨을 사기보단 소파를 장만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었다. 대신 당근마켓에서 중고 제습기를 하나 구매했다. 해가 짱짱하게 들지 않는 1층이라 겨울철에도 습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더위를 잡기 힘들다면 습도라도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5년째 선풍기와 제습기, 그리고 바깥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의지해 매년 위기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에어컨이 없이 여름을 보내다 보면 종종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집에 에어컨이 있는 집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아닌가.. 우리 집만 없었나..). 에어컨이라 하면 자고로 은행이나 병원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천국의 물건이었다. 어릴 적 무더운 여름날에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나서면, 어느샌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 가득 과일, 감자 등이 들은 비닐봉지를 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수박트럭에서 아저씨가 삼각형뿔모양으로 기가 막히게 잘라낸 수박을 엄마에게 건네면 엄마는 그걸 바로 나에게 주면서 달고 맛있는지 물어봤다. 미지근했지만 또 달짝지근했던 수박의 맛. 지금도 여전히 뙤약볕과 끈끈한 습도를 곧장 떠올리게 하는 여름의 맛이다. 세모모양으로 구멍이난 수박을 들고 앞장서는 엄마를 쫄래쫄래 쫓아가면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은행마다 한 번씩 들어가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곤 했다. 그때 느낀 저세상 시원함이란.. 왜 이 좋은 물건이 우리 집에는 없을까 아쉬워하며 엄마를 쳐다보면 엄마의 쪼끄만 콧등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거울 속 내 얼굴도 벌게져있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매년 여름 내 공간에는 에어컨이란 게 없었는데, 이제와 살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싶어서 과감히(?) 에어컨이 없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고, 그러면서 내 유년시절의 여름을 무엇으로 버텼는지 하나둘 떠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녹여 마트에서 산 아이스크림 틀에 부어 냉동실에 얼려먹던 일이나 물에 적당히 적신 수건을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꺼내 목에 칭칭 감고 있었던 일 같은 것. 빙수를 좋아하는 엄마가 맷돌처럼 손잡이를 돌려 얼음을 갈아내는 허술한 빙삭기를 사 와서는 설레는 얼굴로 빙수를 만들어먹자고 했던 날도 기억났다. 마트에 갈 때마다 통조림팥, 떡, 젤리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집에 돌아오면 삼 남매가 번갈아가며 얼음을 갈았다. 서걱서걱하는 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려 나오면 그게 뭐라고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어김없이 셋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겠지.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있다가 내 몸의 열기로 뜨끈해지면 데구르르 옆으로 굴러서 다시 차가운 곳을 찾아가던 한낮의 여름.
여름방학이 되면 아빠는 항상 휴가계획을 세웠다. 어떤 여름은 계곡으로, 어떤 여름은 바다로 갔고, 우리 가족끼리 일 때도 있었지만 아빠의 친구네 가족과 함께 가기도 했다. 휴가가 끝나면 볕에 살이 타서 새까맣게 변한 채로 집에 돌아오곤 했었고, 언젠가 계곡에서 야영을 하던 날 밤엔 비가 많이 내려서 아빠는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삽을 들고나가 텐트 주변으로 고랑을 파서 빗길을 만든 적도 있었다. 물론 나는 세상모르고 편하게 잤지만.
캄캄한 텐트에서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워 잠든 어느 밤에는 잠에 들락 말락 하던 내 귓가에 엄마가 아빠에게 소곤거리며 했던 말도 기억난다. ‘우리 애들은 다 콧대가 참 예뻐. 잘 낳았어.’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는 가장 먼저 휴가 내내 찍은 필름 몇 통을 소중히 모아서 사진관에 맡겼다. 사진이 현상되어 나오면 다 같이 모여 사진을 넘겨보며 깔깔 웃기도 했는데, 그때 아빠는 필름을 전등에 비춰보며 필름 포장지에 색연필로 숫자를 표시해 넣었다. 같이 간 일행들에게 사진을 나눠주기 위해 인원수에 맞게, 또는 식구별로 한 장씩 더 인화하려려던 것이었다.
지금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건 순전히 아빠의 영향임이 틀림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경치 좋은 곳을 걷고 있으면 아빠는 꼭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휙 돌아보면 아빠의 카메라가 찰칵- 하며 셔터음을 낸다. 몇 걸음 못가 또 서보라고, 포즈를 잡아보라고 하며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빠의 기록습관이 이렇게 지금 나로 하여금 사진을 찍고 글을 쓰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만사 심드렁하고 귀찮아서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을 땐 하염없이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은 또 엄마를 꼭 닮아서 만일 내가 부모가 되었다면 아빠처럼 매년 여름 세 아이를 이끌고 산으로 바다로 운전을 하며 다녀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새삼 아빠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만사 심드렁하고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엄마가 여행지에서 삼 남매를 살뜰하게 케어했던 것도.
삼십 대의 미혼으로 살며 휴가도 따로 없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여름휴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나마 쉬는 날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사진을 찍고, 퇴근하고 나서는 그림을 그려 판매하면서 정신없기 짝이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유년시절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낸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고 해도 지금의 나에게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보내는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여름을 기억하며 버티는 것뿐. 땀이 나면 냅다 욕실로 들어가 찬물을 끼얹고, 냉장고에서 잔뜩 차가워진 맥주를 최강으로 틀어놓은 선풍기 앞에 앉아 마시면서 귀신이 나오는 공포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 그래도 힘들면 가방을 싸서 에어컨이 빵빵한 근처 카페를 가고, 허술한 빙삭기로 빙수를 만들어 먹기보단 관자놀이까지 짜릿해지는 빙수를 돈 주고 사 먹는 것으로 작은 피서의 방법들을 찾고 있다. 너무 덥고 힘들지만 그래도 에어컨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기진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려나. 내게 자식이나 후손은 없지만 그래도 일종의 책임감 비슷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