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꿈이 확고한 친구들이었다. 대학의 어떤 학과를 진학할지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마치 나중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 같았다. 반면 나는 내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단 한 장면도 상상되지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지 싶다.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들은 누가 봐도 보이는 특출 난 면이 있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미대입시를 준비하는 친구, 노래를 잘해서 성악과를 준비하는 친구, 공부를 잘해서 의대를 생각하는 친구, 얼굴이 예쁘고 끼가 많아서 연예계 진출을 준비하는 친구. 그들에 비해 나는 정말 애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적성검사 같은 것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지를 받아본 열다섯 살의 그날부터 나는 내가 애매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검사지의 문항들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런 검사를 했다는 것보다는 그 결과지를 받아본 날 친구들과 서로의 결과지를 나눠보던 하굣길만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나의 결과지의 그래프가 친구들의 것과 묘하게 다른 것을 알아챘다. 여러 가지 분야가 적힌 항목들 중 친구들은 유달리 높은 수치가 기록된 분야가 하나씩은 다 있었다. 그래서 그래프에서 유난히 뾰족하게 솟아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내 결과지의 그래프는 특별하게 뾰족한 부분이 없이 비슷비슷한, 평평함에 더 가까운 그래프였다. 위로될만한 부분이라면 그래프의 수치가 그나마 상위에서 평평했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다른 친구들의 뾰족한 부분이 기록한 최고수치보다는 비교적 낮은 수치에서 평평함을 기록한 모양새의 밍밍한 그래프였다.
친구들에겐 각자 강점인 분야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높이 솟은 그래프의 꼭짓점.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하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그 꼭짓점이 왜 내게는 없는 걸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첫 번째 관문이라 볼 수 있는 문과와 이과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수포자가 되고 있는 시점이라 나는 큰 고민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내 이름을 포함한 몇 명을 이름을 호명하시고는 상담실로 오라고 하셨다. 상담실에서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여기 불려 온 학생들은 적성검사결과 이과적 성향을 가졌는데, 결과와 맞지 않는 문과를 선택했으니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면서 선생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는 수북한 A4종이를 뒤적이며 짧은 상담을 해주셨다. 곧 내 차례가 다가오겠지 생각하며 선생님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끝까지 내 이름은 불러주시지 않고 이제 그만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잠깐만.. 왜 나는 건너뛰는 거지..? 나도 내 미래가 너무나 궁금한 학생이라 누구에게라도 조언을 얻고 싶던 참이었는데 기껏 불러놓고 왜 내겐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걸까. 나는 교실로 돌아가려다 말고 뒤돌아 선생님을 붙잡았다.
“선생님! 저는요? 저도 문과보다 이과가 잘 맞을까요?”
선생님은 마치 이제야 나를 발견했다는 듯, 아니 애초에 자신이 나를 불러낸 것조차 잊은듯한 얼굴을 하며 급하게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 어... 너.. 너도.. 그래그래. 이과 쪽이 조금 더 적성검사와 맞는구나. 부모님과 잘 상의해 봐라.”
그게 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뒤돌아서 교무실로 가버렸다. 앞선 학생들과는 꽤 다른 결의 성의에 나는 너무나 실망했다. 그래, 수치상으로는 이과로 나왔을지 모르지만, 사실 문과를 가나 이과를 가나 크게 상관은 없는 것이구나. 상당히 애매한 수치가 나왔나 보구나.
얼마 전 읽었던 김신지 작가님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꿈속에서 달리기를 할 때처럼 늘 제자리에서 헛돌던 기분이 든 게. 정말 재능 있는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딱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니 딱히 말리진 않겠지만, 한다고 그리 잘될 것 같지도 않은.
- <평일도 인생이니까>, 김신지
70점짜리 재능을 가지고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졌다던 그녀의 글은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둔 것만 같았다. 뭔가 나를 이해해 주는 듯한 따뜻함을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또 부럽기도 했다. 그녀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고, 비록 70점짜리라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고, 결국에는 내가 그녀의 책과 글을 읽고 공감을 했으니 충분히 뾰족하고 뚜렷한 그래프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내가 감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비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가까스로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을 땐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반대하는 듯했다. 예를 들면,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는데 관련학과에 키 제한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경우 같은 것...
사실 내가 가진 재능들은 지극히 객관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70점은 고사하고 50점에 불과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50점짜리 재능들로 하고 싶은 것들이 꽤 많아졌다. 아마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하고 싶은 것’이란 ‘하고 싶은 것 + 1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려 했기 때문에 더 찾기 어려웠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가 모두 합쳐져 나의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을 바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리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오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는 딱 50점짜리 재능만큼 귀여운 수준의 수입을 가져다주는 것들도 생겼다. 그래프의 꼭짓점이 주는 단 한 가지의 재능으로 내 인생을 꾸리는 것보단 특출나진 않지만 자잘한 재능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어쩌면 나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네 수영장에서 제일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되긴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 수영 수업을 빠지지 않고 가는 것, 그래서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을 마치고 만족감 속에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대단한 성취를 좇거나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나와 약속을 하고 조용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 <평일도 인생이니까>, 김신지 -
맞다. 나는 우리 요가원에서 제일 요가를 못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고 대단한 작가는 못되겠지만, 내 복잡한 감정을 글로 남기면서 적어도 내 마음 하나쯤은 정리할 수 있겠지. 매일 아이패드를 열고 그림을 그려도 그림 한 점에 몇백만 원의 가치를 담진 못하겠지만, 만원 남짓한 돈으로 가족사진, 결혼사진을 색다른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선물할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또 내가 좋아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겨보고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 같은 것들을 하면서 나는 나름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매우 잘 해내서 남들처럼 월등한 그래프의 꼭짓점을 찍어보려는 생각은 내려놓고, 그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좋아하는 일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남들보단 여전히 낮은 수치라 할지라도 나의 그래프 안에서 빼꼼 얼굴을 내미는 소소한 꼭짓점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