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빠는 코로나시절에 유튜브를 개설했다. 수강생들이 학원에 오지 못해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유튜브에 핸드폰으로 찍은 수업 영상을 업로드해둘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빠의 낡은 핸드폰으로는 용량의 한계가 있어 원활한 촬영이 어려웠고, 마침 환갑기념으로 삼남매가 드린 용돈이 있어 그걸로 반짝거리는 새 핸드폰을 장만하셨다. 물론 코로나가 끝난 지금은 아빠의 유튜브엔 2년 전 영상이 마지막이지만, 새 핸드폰을 장만했을 때 아빠는 사진 화질이 너무 좋다며, 천변에서 미나리를 뜯는 엄마와 나를 연신 찍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아직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 핸드폰을 장만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엄마는 평소 주로 카톡이나 간단한 인터넷쇼핑만 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새 핸드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운동을 한다며 호숫가로 나간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엄마는 본인이 애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냐며 요즘 핸드폰이 종종 꺼지거나 작동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별일 아니라고 말했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 삼남매는 이번엔 엄마의 새 핸드폰을 장만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빠의 핸드폰만큼 좋은 사양은 아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의 외관을 가진 핸드폰을 사서 본가로 갔던 날, 남동생과 나는 엄마가 새 핸드폰을 불편해하지 않도록 기존에 쓰던 핸드폰과 아주 동일하게 세팅을 하느라 진땀을 뺐었다.
엄마는 종종 가족톡방에 사진을 보내온다.
호숫가를 산책하며 만난 오리가족을 찍어 올리고는 우리 다섯 식구 같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봄에는 나무나 풀밭에서 만난 새싹을, 여름에는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토마토, 가지, 포도, 상추 같은 것들을 찍어 보내준다. 엄마의 프사는 주로 오랜만에 꽃을 피운 화분의 사진이고, 내가 그건 무슨 꽃이냐고 물으면 이름과 함께 어디서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도 신이 나서 설명해 준다.
그런 엄마가 핸드폰을 바꾸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역시 사진이었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지만, 예전의 사진들은 흐릿하거나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엄마의 꽃사진 프사에 꽃이 아닌 뒷배경으로 초점이 잡힌 사진이 올라올 때면 혼자 큭큭 웃으며 ‘우리 엄마 사진 진짜 못 찍네’ 생각했었다. 초점도 안 잡힌 사진을 ‘에라 모르겠다’하며 프사로 할 만큼 우리 엄만 참 쿨하구나,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뀐 핸드폰으로 찍어 보내주는 엄마의 사진은 달랐다. 예전의 사진에 초점이 안 맞았던 것은 예쁜 것을 가까이서 크게 찍고 싶은 엄마에게 낡은 핸드폰 카메라의 렌즈가 그만큼의 접사를 담을 만한 능력이 없는 까닭이었다.
주로 자연의 모습이나 자연에서 얻은 수확물이 대부분인 엄마의 사진첩 사이사이에는 우리에게 보내줄 목적으로 찍은 자신의 셀카와 우리 삼남매의 얼굴들도 담겨있다. 핸드폰이 바뀌고 화질이 좋아지다 보니 더욱 꼼꼼히 담긴 엄마의 셀카를 나는 꼬박꼬박 내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 병원을 다니면서 염색을 그만두는 바람에 엄마는 자신의 하얘진 머릴보며 완전 호호할머니가 되었다고 슬퍼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가 아니면 소개받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던 아빠가 한눈에 마음에 들어 했을 그 미모는 여전히 엄마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만 보니 엄마의 사진은 은근 내 취향이다. 일상 속 소소한 자연의 모습을 담아두는 것부터 자연스러운 각도와 색감까지 마음에 든다. 사실은 엄마의 사진보다는 엄마의 시선이 나와 잘 맞는 것 일수도 있겠다. 엄마의 눈에 예쁘게 보이는 것들이 내 눈에도 예뻐 보이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이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것, 길을 걷다 보이는 멋진 풍경에 발길을 멈추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한 엄마와 나. 엄마가 집어든 반찬을 나도 집어 들고 ‘음~ 맛있어!’ 할 때면 엄마는 역시 내가 자신의 식성도 닮았다며 어딘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 옆에 있던 아빠가 무슨 소리냐며 얘는 나를 닮아서 성격도 까탈스럽지 않고(사실 까탈스러울지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도 많은 거라며 서로 나에 대한 지분의 우위를 주장하곤 한다. 둘이 좋아서 낳았으니 둘 다 닮았겠지... 뭘 그런 걸 두고 언쟁을 한담.
지금 엄마의 프사는 마당에서 나온 빨간 구기자열매다.
짙은 초록잎 사이사이로 작고 빨간 열매가 줄줄 달려있는 사진의 색감이 풍성한 가을을 떠올리기도 하고, 초록과 빨강의 대비가 조만간 다가올 성탄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진정으로 프사로 삼고 싶은 ‘열매’는 따로 있다는 것을. 그건 바로 내가 낳은 엄마의 ‘손주’ 사진이다. 엄마 친구들의 프사는 이미 꽃사진 단계를 넘어 손주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있다며 너무 부러운 나머지 한 번은 삼남매의 어릴 때 사진이라도 올려볼까 고민했다고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도 엄마의 시선으로 담기는 아기의 사진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지만, 빠른 시일 내로는 그 소망을 이뤄드리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지금은 엄마가 담는 자연과 열매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물론 엄마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