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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 Nov 13. 2024

커피의 위로

나는 자연이 주는 시시 때때를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어슴푸레하고 차가운 습기를 머금은 이른 아침도 좋고, 따뜻한 햇살이 비쳐드는 한낮도, 자연의 빛이 꺼지고 인간이 만든 조명으로 주변을 비추는 밤의 모습도 좋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좋아하는 마음 이면에는 힘들거나 괴로운 마음도 존재하는데, 아침에 만나는 ‘짜증’도 그중 하나다. ‘짜증’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사실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면 ‘피곤’에 가까울 것이다. 

한때는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리듬을 만들어보려고도 했지만, 일찍 잠들어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내게는 너무 괴로웠고, 밤의 아름다움 또한 포기할 수 없어 즐기다 보니 일찍 잠드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언제나 내게 아침은 상쾌하고 활기찬 기분을 주기 이전에 피곤하고 찌뿌둥하게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린 공기를 품은 아름다운 아침을 짜증으로만 보낼 수는 없지 않나.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커피’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꼭 필요한 응원의 한마디 같다. 힘겹게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씻고 부랴부랴 출근을 할 때는 눈도 무겁고, 어깨도 묵직하지만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그제야 손끝, 발끝까지 피가 원활하게 돌기 시작하는 기분이다. 천근만근 무겁던 눈꺼풀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눈빛이 총명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나면 아침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담기고, 덩달아 기분도 한결 좋아진다. 직업으로서의 커피는 즐거움이나 성취감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직업을 떠난 커피 그 자체는 변함없이 내게 쉼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 참으로 웃프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아침풍경을 바라보는 눈을 깨워준다면,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일을 할 수 있는 눈을 깨워준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오후의 업무를 하려고 자세를 잡으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나른함. 따뜻하게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 더더욱 노곤노곤해지는 몸을 내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럴 땐 또다시 커피 앞으로 간다. 불투명한 검은 액체가 주는 향과 맛은 어째서 이렇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걸까. 누군가는 그것을 위로가 아니라 중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해봤을 법한 아이돌 덕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뭐 하나에 꽂혀서 깊게 파고드는 것보단 두루두루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나에게 ‘중독’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리 있었고, 인생에 한 번쯤은 가져보고 싶기도 한 단어였으니까. 


그런데 참 천성이라는 것은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는지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칭 ‘커피에 미친 자’라며 본인을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 직업이 바리스타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들은 커피를 잘게 쪼개고 세세하게 나누며 어떤 부분은 물리적으로, 어떤 부분은 화학적으로, 또 어떤 부분은 수학적으로 접근해서 A커피와 B커피가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맛있는 커피’의 정의에 따라서 어느 쪽이 더 좋은 커피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호기심과 분석이 새롭고 다양한 커피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지켜보는 나 역시 너무 흥미롭다. 다만, 그런 ‘커피에 미친 자’들의 일부가 자신들이 정의 내린 커피만을 고집하면서 커피의 옳고 그름을 가려냄으로써 결국 내가 직업으로서의 커피를 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커피를 연구하는 일이 미치게 좋아서 커피를 너무 마신 나머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나 로스팅해보고 싶은 궁금한 생두들이 너무 많아서 생활비를 생두구매에 모두 탕진했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아.. 나는 어디 가서 커피를 좋아한다거나 커피를 일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정도 지식으로?’, ‘그 정도 열정으로?’라는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가소롭게 여길 것만 같달까. 그 순간 커피는 나에게 너무나 큰 숙제와 부담이다.


그렇지만 난 적어도 커피를 마시는 일은 사랑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커피가 내 일상에 큰 위로를 주고 있다고도.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식기 전에 한 잔을 다 비우는 것이 좋고, 고소하고 달콤한 아이스라테는 얼음을 적게 넣어서 커피가 묽어지기 전에 마시는 걸 좋아한다. 달달한 크림이 듬뿍 올라간 아인슈페너는 집중력이 떨어질 때 마시면 좋고, 오랜만에 만나는 여유로운 휴일엔 집에서 드르륵드르륵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내려마시거나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를 마신다. 오래 걸었거나 유난히 추운 날엔 자판기에서 뽑아마시는 밀크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호록 호록 마시는 것도 참 좋다. 일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친구와 수다를 떨 때,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커피는 항상 곁에 있다.


꼭 미쳐있어야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커피도 마시기 딱 좋은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가 되면 호로록호로록 제대로 커피를 즐길 수 있듯이 적당한 온도로 좋아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좋아해야지.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어 건강상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오래오래 좋아하려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새기는 아침이다. 어김없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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