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바야흐로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앞둔 시점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나는 일 년에 두 번 명절이 올 때마다 명절증후군을 극심하게 앓고 있다. 명절증후군이라 함은 가부장제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 온갖 궂은일과 노동에 시달리는 며느리 또는 여자들이 겪는 일종의 신드롬과 같은 말로 여겨지지만,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온다. 사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한 집안의 며느리라는 이유로, 또는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증후군을 겪어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릴 땐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오는 것이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최소 3일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고, 길게는 5일까지 쉬는 날이 이어지면 몇 주 전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서 사촌들과 신나게 놀 생각과 집을 떠나 할아버지댁이나 외갓집에서 장롱 속 케케묵은 먼지를 털어낸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잠들기 전까지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수다 떨 생각, 그리고 맛있는 명절 음식을 많이 먹을 생각에 명절기간에는 종일 기분 좋은 날들이 이어지곤 했다.
순수함도 동심도 모두 잊은 스무 살 즈음부터 점점 명절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친척들의 눈에 나는 더 이상 귀여운 조카가 아닌 궁금한 것이 많은 질문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은 어디로 가니?’가 그 시작이었고, ‘전공은 뭐로 했니?’, ‘남자친구는 사귀니?’가 이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나의 대학생활이 얼마나 풋풋하고 즐거운지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옛날에는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귀했고, 당신의 대학시절과 요즘의 대학생활이 얼마나 다른지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졸업을 할 때쯤 ‘취업은 어떻게 됐니?’부터였다. 그래도 졸업과 동시에 나름 괜찮은 회사에 취업을 해서(물론 다니고 보니 겉만 번지르르한 최악의 회사였지만) 한동안은 질문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20대 끝자락에 회사를 그만둔 후 바리스타를 시작하고, 서른이 넘어도 딱히 결혼생각이 없어 보이는 내게 날아오는 폭풍 같은 질문들과 또는 질문하고 싶어 하는 눈빛들은 명절증후군을 일으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지 않고 칩거에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고려해 본 방법이었다. 가부장제의 중심에 있는 우리 집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 차례와 제사를 꼭꼭 챙긴다. 그래서 여자들은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남자들은 엉덩이에 본드라도 붙인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자신들도 다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세어본 남자들의 일이란 몇 알 안 되는 밤의 껍질을 벗기는 것, 상에 올릴 지방을 쓰는 것, 병풍을 펼치고 상다리를 펴는 것, 부엌에서 한창 전부치는 냄새가 맡아지면 술상을 내오라고 하는 것, 술 먹고 고스톱 치다가 잠드는 것 정도? 끼니때마다 상을 차리고 치우고, 한숨돌릴라 치면 다음 끼니가 돌아와 버려서 술 먹고 고스톱 치다가 잠들여유 따위는 없는 부엌의 풍경과는 굉장히 상반된다. 엄마들이 그렇게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아는데,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질문세례를 좀 피해보자고 가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빠들과 남동생들은 뜨뜻한 아랫목에서 뒹굴거리고 엄마들을 비롯한 여자들은 설거지옥과 요리지옥에서 허덕일 테니 나라도 가서 손 하나라도 보태야 한다는 역시 K유교장녀의 어쩔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이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간소화되었고 음식도 사다가 지내는 일이 많아졌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번거롭고 불합리할 뿐이다.
그래서 매년 명절 때마다 친척들의 질문세례에 어떻게 답변하면 적당히 버르장머리 없는 듯한데 묘하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어서 다음부턴 같은 질문을 못하게 될까를 고심한다. 작년에 큰아빠의 큰딸인 사촌동생이 결혼을 했을 때 분명 나에게 ‘너는 남자친구가 없니?’, ‘왜 결혼을 안 하니?’, ‘뭐 느끼는 거 없니?’ 이런 질문이 날아올 것을 예감했고,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큰아빠는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말은 못 하지만 너네 아빠 내가 엄청 부러울 거다. 너도 얼른 아빠를 기쁘게 해야지?’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주 버르장머리 없는 답변이 떠올랐다.
“부러울게 뭐 있어요? 누가 보면 재벌집에 시집이라도 간 줄 알겠어요. 그리고 결혼한 게 무슨 기쁨이에요? 결혼하고 끝까지 잘 살아야 기쁨이고 행복이지.”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한 후 겉으로는 피식 웃었을 뿐. 아무래도 K유교장녀에게 저런 언사는 너무 버거웠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사촌동생의 결혼생활이 정말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순간의 분노로 사촌동생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내 분노의 근원은 가부장제와 필요 없는 오지랖과 낡은 가치관 이런 것들인데, 괜히 엉뚱한 곳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되면 안 되지. 만약 명절이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그리고 미혼과 기혼에도 관계없이 다 같이 모여 앉아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나눠하고, 돌아가면서 쉬고, 차례상에 모시는 조상님들이 살아계실 적의 이야기를 하면서 두런두런 오순도순 시간을 보내는 날이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증후군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님께 인사를 드려야 후손들이 다 덕을 보고 잘 사는 거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그 후손들에 여자인 나도 포함이 되는 건지 내내 묻고 싶었다. 어차피 조상님들도 유교를 배운 가부장제의 중심을 사셨던 분들인데, 덕을 준다 해도 남자들에게 주지 않을까? 그러니 저는 이만 파업해도 될까요?
세대가 얼마나 흐르면 더 이상 명절에 모여 언성을 높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가사노동에 힘들지 않고 모두가 손꼽아 만날 날을 기다리는 바람직한 모습이 될까?
명절증후군은 가족 안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어서 일터에서도 어김없이 명절이 다가오면 죽을 맛이다. 나는 분명히 바리스타인데, 왜 명절시즌마다 선물세트 패키지 디자인을 고민해야 하는 건지, 왜 당연히 때가 되면 내게 ‘디자인은 나왔니?’ 묻는 건지, 심지어 선물세트 생산부터 포장까지 다 내게 떠넘기는지, 정신없이 포장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와서 ‘도와줄게’ 하더니 채 한 세트도 포장을 완료하지 못하고 또 슬그머니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할 일이 아닌데 ‘도와준다’고 표현하며 마치 선심 쓰듯 하는 행동들도 내게 명절증후군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차고 넘친다.
오래 일했다고 내게 직급을 주더니 일을 떠넘기고 내가 자신들과 같은 마인드를 갖기를 바라면서 정작 근무조조건은 모든 직원들이 ‘공평’ 해야 한다며 단 하루도 더 많이 쉬지 못한다. 내가 엊그제 들어온 신입직원과 공평한 근무조건을 갖자고 오래 일한 것이 아닐 텐데 필요할 때만 꼭 그렇게 공평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급여도 별 차이 없이 공평하게 주나 보다.
디자이너를 따로 구할 여력이 없어서, 외주를 맡길 비용이 부족해서, 포장인력을 충원하자니 적자라서 있는 직원들을 부려 충당한다는 생각은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럴 수 있다고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장사가 다 이득을 보자고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본래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단지 내게 그런 재능이 조금 있으니 해볼 수 없겠느냐고 하는 거라면 전문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는 비용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대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포장을 하느라 야근을 하면 근무 외 수당이라도 챙겨주는 게 맞지 않나? 그래 뭐 그것도 힘들다면 진심 어린 격려라도, 마음껏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기대하는 것은 그저 사치일까. 어떻게든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써먹고 싶은 심보가 눈에 보이는데 그게 명절시즌이 되면 좀 더 선명해진다. 언젠가 다른 직원이 농담조로 ‘이 정도면 실장님에게 디자인비라도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자 내 고용주 중 한 명은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그 애는 우리 가게 디자이너고 디자인비는 월급에 다 포함되는데 디자인비를 왜 따로 챙겨주느냐’라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디자이너가 된 걸까? 나는 분명히 바리스타로 입사한 거 같은데. 그럼 바리스타 업무는 내 업무가 아니니 안 해도 되는 걸까?
그때부터 모든 업무에 힘을 빼고 사이드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같다. 사이드프로젝트들 중 하나라도 빛이 보이면 보란 듯이 퇴사하리라 하고. 하지만 여전히 빛이 보이지 않아 캄캄한 터널을 새까매진 속을 가진 채로 걸어가며 꾸역꾸역 출근 중이지만, 긴 시간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그중 어느 한 곳에라도 희미한 빛줄기가 비쳐 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이번 명절에도 그 빛 한줄기가 아주 간절했고.
언젠가 명절이 제대로 된 의미와 뜻을 찾게 되면 좋겠다. 해마다 돌아오는 지옥 같은 시간이 아니라 어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가족끼리는 덕담을 빙자한 속 긁기 대신 다정히 안부를 확인하고 때로는 고민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직장에서는 과도한 업무나 의무감으로 주고받는 선물박스 대신 긴 휴일을 무사하고 건강히 보내고 다시 만나 또 함께 열심히 일해보자는 진심이 담긴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날로.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취준생도, 미혼도, 기혼도, 1인가구도, 아이가 없는 부부도, 아픈 사람도, 돈을 조금 버는 사람도, 노인도, 서비스직도, 사무직도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행복한 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