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지 Lindsey May 13. 2022

숙녀 아가씨, 차가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

나의 순간, 그의 순간, 우리의 순간


  바쁜 점심시간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장을 보러 달려갔습니다. 재고관리에 빈틈이 있었습니다.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재료에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장을 보고 차에 짐을 싣는데 시커먼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이구, 숙녀 아가씨. 안 어울리게 차가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


  인상부터 확 찌푸려지더라고요. 이 분주한 와중에 "프로 오지라퍼"의 등장이라니. 달가울 리가 없었습니다. 못 들은척하고 얼른 차에 탔습니다. 대뜸 제 사이드 미러에 뭔가를 쓱쓱 뿌리더니 걸레로 닦기 시작하더라고요.


 '엥, 이건 무슨 상황?'


  주인 동의도 없이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버럭 화를 내려다 잠시 멈칫했습니다. 창문을 두드리며 "잠시만, 아주 잠시만" 본인의 설명을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동차 세척액을 판매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돈 내라고 안 할 거예요. 한 번만 닦는 거 봐보세요."


  날카롭게 액셀을 밟으려던 발에 살짝 힘이 풀렸습니다. 창 밖에 매달리듯 내 차를 붙잡고 있는 아저씨와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습니다. 아스팔트 주차장 땡볕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펴내며 웃어 보이는 누런 이에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뻔뻔하리말큼 철판을 깔았구나 싶었던 첫인상 뒤에 무안함과 간절함, 절박함 같은 것이 뒤섞여 전해졌습니다. 뾰족한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창문을 내리고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짜 그새 깨끗해졌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지금 너무 바쁜 상황이라 빨리 가봐해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죄송한 상황인지, 감사한 상황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을 뒤로하고 다시 천천히 액셀을 밟았습니다. 슬쩍 본 사이드 미러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저씨의 한숨이 맺혔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각자가 삶의 순간순간을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그도. 다른 누군가도. 때로 의도치 않은 마찰음을 내게 될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치열하고 뜨겁고 애틋한 삶의 협화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찰나의 생각을 뒤로 한채 다시 일터로 향했습니다.


  나의 순간, 그의 순간, 우리의 순간을 정리 하 듯 차곡차곡 냉장고를 채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