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지 Lindsey May 13. 2022

의도치 않은 미니멀리즘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네!

  자, 게임을 시작해보자. 18평 집. 침실 1, 주방 겸 거실 1, 베란다, 화장실. 이 앙증맞은(?)공간에 엄마, 아빠, 라은이, 도담이 살림살이들을 야무지게 구겨 넣어볼 시간이다.       


옷 정리     

  당연히  방은 따로 없었다. 가로 120cm 남짓한 행거 하나,  칸짜리 서랍이 전부였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랬다. 일단 과감히 처분해보자. 옷을  박스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마침 30kg이나 감량한 남편은 기존 옷들을 입을 수가 없게 되어서 미련 없이 버릴  있었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떤 옷을 버릴까?’ 생각하니 도저히 진전이 되질 않고 자꾸 미련만 생겼다. 질문을 바꿨다. ‘어떤 옷을 남길까?’ 이번  당장 입을  상의 4, 하의 2개만 고른다는 생각으로 옷을 남겼다. 그리고 계절에 맞지 않는 나머지 옷들은 상자에 담아 베란다에 빼놓았던 이불장에 담아두었다.      


 운동복, 양말, 속옷, 잠옷 등 자잘한 옷가지들과 늘어나기 쉬운 니트류, 말아서 보관하기 좋은 바지는 서랍장 안에, 나머지 상의는 남편 것과 내 것 모두 행거에 가지런히 걸어 놓았다. 나름 톤 별로 걸어놓으니 보기가 좋다. 가지 수가 얼마 없으니 행거에 여백까지 있다. 공간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막상 옷을 줄이고 보니 생각보다 결핍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너 벌 옷 안에서도 자주 손이 가는 옷이 생기는 게 참 재밌었다. 옷 고르기가 쉬워졌다. 수많은 옷 조합 선택지에서 고민하느라 몇 번씩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에너지도 훅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 개운한 상태가 얼마나 가느냐다. 정리와는 담을 쌓은 남편은 각 잡고 빨래 개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옷을 걸어놓는다기보다 툭 걸쳐 놓는 게 다반사였다. 반면 나는 흐트러져있는 옷장을 보면 숨부터 턱 막히는 사람이었다. 각자가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걸! 남편의 생활방식을 존중해 줄 아이템을 하나 구비했다.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종이상자 수납함이었다. 색은 화이트와 그레이의 조화라 깔끔했고 공간도 넉넉해서 옷이 꽤 많이 들어갔다. 정리하기는 귀찮고 마누라 눈치 보일 때 거기에 툭 던져놓고 뚜껑을 닫으면 된다. 그게 뭐야 싶겠지만, 우리가 찾은 간단한 타협점이었다. 나는 어지러워진 게 보이지 않고 남편은 매번 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다이소에서 5천 원에 구한 아이템 치고 이 정도면 꽤 유용하다. 뭐, 이렇게 맞춰가는 게 아닐까!     


책 정리     

  나도, 남편도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서점을 들른다. 겹치는 취향마저 없어 자연스레 ‘각자의 책’이 쌓여갔다. 문제는 책장이 없다. 하나 사볼까 하고 집을 둘러보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책장을 두고 거기에 책까지 꽂아두면 집이 너무 꽉 차겠는 걸.’ 그러다 발견한 틈새 공간! 테이블과 벽 사이였다. 테이블 하단부가 다리가 아니라 판으로 되어있어서 책장 벽 역할을 해주니 자동으로 테이블 하단부와 벽 사이에 책을 세워서 고정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책장만큼 많은 양의 책을 담을 수도 없게 삐뚤빼뚤하지만 쌓아둔 느낌이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옷들과는 달리 책들은 모두 네모난 모양이라 오히려 너무 각 잡고 정리해두면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건 너무 자기 합리화인가? 하하) 테이블에 앉아서 조금만 몸을 굽히면 손이 딱 닿는 곳이라 한 번이라도 더 꺼내어 보게 되는 장점도 있다. 라은이도 이곳에 쌓인 책을 만지작거리고 뽑고 스르륵 걷어보는 걸 좋아라 하니 괜히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어쨌든, 한 뼘 남짓한 이 틈새 공간에 자유롭게 쌓일 인사이트와 감성, 기획과 상상력들을 기대해본다. Cheers!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네!     

  묵직한 사상이나 신념에 근거한 건 아니었다. 지극히 생계형 미니멀리즘이랄까. 협소한 공간에 살림들을 구겨 넣다 보니 자연스레 줄이고 또 줄이게 된다. 심지어 소파를 둘 공간이 없어서 아기용 접이식 놀이매트를 벽에 대어서 좌식 소파로 쓰고 있다. 욕실 수건함도 텅텅 비었다. 많아봐야 늘 쓰던 것만 돌려 쓰게 되는 수건인데 굳이 많을 필요가 없다. 수건이 다 떨어져 가면 부지런히 빨래를 하게 되고 미루는 습관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식기류도 얼마 없다. 어차피 키가 작아서 찬장 높은 곳은 손도 닿지 않는걸. 까치발로 유리그릇을 꺼내느라 심장 졸일 필요 없이 찬장 두 번째까지만 식기를 채웠다.      


  희한하게도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이 들고 없을수록 소유에 대한 집착이 사그라들었다. 예쁜 옷을 사면 그 순간은 좋지만, 그 옷에 어울리는 가방, 신발, 액세서리를 갖고 싶어 져서 쇼핑 릴레이가 이어졌다. 커다란 공간을 소유하면 넉넉하고 좋겠지만 또 그 공간을 채울 액자와 식물들, 가구들을 사느라 바빠진다. 물론,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라 개개인의 선택이겠지만, 현재 나로서는 겸손한(?) 주머니 사정과 육아와 집안일로 매일 소모되는 한정적인 에너지, 여러 가지 여건들이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과 참 잘 맞는 것 같다.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뭐 필요한 거 없어?”라는 질문에 정말로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부족한 게 없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이 참에 정돈된 삶을 오랫동안 지켜나가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스토로폴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