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지 Lindsey May 13. 2022

캔들워머

명품은 1도 없지만 행복을 부르는 소품은 있지 (1)

  은은한 아로마 향. 그 위에 얹어진 잔잔한 피아노 선율. 두 눈을 감고 몸을 맡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스러운 손길이 묵은 피로를 싸-악 풀어준다. 가끔 이런 공간과 시간이 사무치도록 간절해질 때가 있다. 밤중 육아와 모유 수유. 뒤돌아서면 어지러워져 있는 집. 하루 이틀 쌓여온 피로가 해소되지 못하고 묵직하게 어깨를 누른다. 몇 분만 스트레칭하면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 무게가 유난히 버거워서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마음껏 수동적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로받고 싶을 때.     


  괜히 아로마 마사지샵을 검색해보고 스크롤을 내려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에이, 기본 1시간은 걸릴 텐데 그동안 아기는 어쩌고.’ ‘어휴, 이 돈이면 아기 꼬까옷 한 벌은 사주겠는걸.’ 물론, 서비스를 생각했을 때 합리적인 비용이지만 외벌이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어디에 돈을 투자할 것인가에 좀 더 신중해진 것은 사실이다.      


  무언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게 되는 찰나의 순간, 우울한 감정의 습격을 당하기 쉽다. 특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 때. 그 출구 없는 굴레가 숨통을 꽉 조여 온다. 절망의 웅덩이로 더 빠져들기 전에 손을 뻗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주기로 했다. 캔들워머. 할로겐램프에 불을 켜면 그 온기에 초가 녹으면서 은은한 향을 내는 기특한 물건이다. 캔들 워머랑 캔들을 합쳐도 마사지 1회 비용이 채 되지 않으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예약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신이 나서 언박싱을 했다. 화이트 컬러가 주는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다. 워머를 꼭 껴안고 욕실로 향했다. 수건함과 거울 사이에 일자 선반 하나가 있었는데 운명처럼 워머가 딱 들어맞았다. ‘여기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첫 점등식을 거행했다. 밝기 조절 스위치를 돌리니 스으윽 하고 욕실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칙칙한 잿빛에 가까웠던 화장실이 환골탈태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정직한 조명 탓에 샤워하려고 옷을 벗을 때면 괜히 움츠러들게 되던 공간이 나만의 아지트처럼 포근해졌다. 차갑고 딱딱했던 타일 벽이 복숭아 속살처럼 뽀송해 보인다.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욕실 안을 채운다. 미니멀한 수건 덕에 텅 빈 수건함은 스피커가 되었다. 순간의 느낌에 따라 핸드폰으로 음악을 플레이하고 수건함에 넣는 순간 그 공간은 더 이상 그냥 화장실이 아니다. 프라이빗한 아로마 힐링 샵이자, 둠칫둠칫 클럽이자, 차분한 북카페이자, 5성급 호텔이 된다. 음악의 비트가 심장 박동과 하나가 되고 은은한 피아노 선율이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흐른다. 짜릿한 순간이다.     


 쏴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드럽게 안마해주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따라 묵은 피로가 씻겨나간다. 아, 편안하다. 찌뿌둥했던 일과를 리셋하듯 위로해주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스위치 하나만 돌려도 행복 전원이 on 된다니. 오늘도 나의 순간을 밝히는 너에게 감히 '모먼트워머'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도치 않은 미니멀리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