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데 별스럽게 행복한 일상 (2)
유기농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천연 발효해요
차를 다도와 함께 즐기실 수 있어요
자그만한 칠판에 적힌 손글씨마저 유기농 느낌이 났다. 밀가루 반죽을 펼쳐놓은 듯한 베이지색 어닝이 햇살을 맞고 노란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몽글몽글 코를 간지럽혔다. 파스텔 톤 초록색 외벽에는 박스 모양 간판이 신호등처럼 달려있었다. ‘잠시 멈춰 가셔요’ 하고 빼꼼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흰 바탕에 검정 글씨, 심지어 얇은 고딕체로 BREAD & TEA라고 적혀있었는데 전교 1등의 답안지 같은 정직한 느낌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게다가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 사이에서 ‘빵과 차’의 조합이라니. 신선해라!
그렇게 마주하게 된 이곳의 진짜 이름. BBANG ZEN. 빵젠. ‘빵’(BBang)+명상(zen), 차’의 결합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밥 먹젠?’ ‘놀러가젠?’처럼 ‘Shall we-?(권유)’ 혹은 ‘밥 먹젠!’ ‘놀러가젠!’ 처럼 ‘I’ll~(의지)‘를 의미하는 제주어 어미를 담고 있어서 친숙하기까지 했다. 귀여운 빵 그림 로고는 덤!
글로 쓰니 주절주절 길어졌지만, 이곳을 발견하고 갖가지 오감이 깨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2-3초 남짓이었을 것이다. 홀린 듯 들어가 보았다. 물론 내 품에 폭 안겨있던 라은이도 함께 발을 디뎠다. 올리브 치아바타, 통밀 깜빠뉴, 당근 휘낭시에, 앙버터……. 두 팔 벌린 정도 너비의 우드 진열장에 2층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빵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불필요하게 종류가 많거나 비주얼이 화려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한눈에 보아도 담백하고 건강한 느낌, 욕심을 걷어내고 정성에 집중해서 빚어내고 구워낸 것이 느껴졌다. 젊은 여자 사장님이 혼자서 운영하는 카페에 딱 맞는 정도의 규모와 메뉴들이었다.
‘내가 배가 많이 고팠나?’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얼른 집어서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라은이도 그랬나 보다. 진열장에 찰싹 달라붙어서 “빵~~ 빵~~”한다. “혹시, 계란 안 들어간 빵 있나요? 아이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다소 까탈스러울 수 있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예쁘게 빵-긋 웃으며 “계란은 전부 안 들어갔어요.” 답해주셨다. “와, 정말요?” 진심으로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일 육아를 하다가 카페가 고플 때면 아이와 동네 카페에 들르곤 했는데, 부쩍 ‘떡 뻥(아이들용 유기농 쌀과자)’ 말고 엄마 먹는 것만 달라고 하기 시작해서 곤란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디저트는 계란에 설탕까지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라은이 입에 물리려면 불안했고, 안 주려니 또 찡찡 전쟁이라 곤란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고민 끝에 당근 휘낭시에와 밤 크림치즈 깜빠뉴, 청차를 주문했다. 주문하는 게 이렇게 설렐 일인가. 동그란 라탄 바구니에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은 찻잔, 디저트 접시가 옹기종기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또르르르 차를 붓고 한 모금하는 순간 “하아~ 좋다.” 감탄이 진심으로 새어 나왔다. 라은이도 두 눈이 반짝했다. 도록도록 눈을 바쁘게 굴린다. 테이블에 겨우 닿는 조그마한 손을 쭉쭉 뻗으며 자기도 먹어보겠다고 온 몸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휘낭시에를 조금 떼어서 먹여주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식가 홍라은 씨. 혀를 데굴데굴 해보더니 둠칫둠칫 춤을 춘다. 꿀꺽 삼키고는 또 손을 뻗는다. 이번에는 입에 넣자마자 또 손을 쭈욱.
그때 사장님이 조그마한 찻잔을 또 들고 오신다. 앙증맞은 비주얼에 보자마자 “악, 너무 귀엽잖아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거 아기 줘도 되는 차예요. 카페인 안 들어있고, 아주 연하게 내렸어요.” 역시 선물에 약한 라은이. 친절에는 더 약한 라은이. 손가락으로 “최고!”하며 (엄지 척을 하지 못해서 늘 두 번째 손가락을 치켜세우지만) 감사를 표현한다. 앵두 같은 입술을 더 동그랗게 내밀며 차를 맛본다. 우와. 이것도 입에 맞았나 보다. (엄마 요리는 열에 아홉은 퇴짜다.. 허허) 찻잔을 내밀며 리필을 요청한다. “넌 떡뻥. 난 케이크” 해가며 한쪽은 섭섭하고 한쪽은 미안해할 것 없이 테이블에 놓인 차와 빵을 함께 맛보며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모녀에게는 커다란 감동이었다. 행복이었다.
그렇게 ‘빵젠’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고 당연히 남편에게도 ‘빵젠’을 전도(?)했다. 마침 라은이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 두 시간 정도 대기시간이 생겼고 위치도 바로 옆이라 매일 오전 ‘빵젠’에 들르는 것은 우리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여보, 빵젠 가젠?’ ‘응, 가젠!’ 하는 대화가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된 것이다. 매일 아침 부드러운 빵 한 조각에 따뜻한 차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 더 바랄 게 없다. 이게 바로 행복이다! 찐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