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데 별스럽게 행복한 일상 (4)
코감기에 심하게 걸리면 무슨 음식을 먹어도 종이 씹는 느낌이 듭니다. 손에 장갑만 껴도 둔해진 감각 탓에 글씨가 투박 해지죠. 인간의 오감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하나만 제 기능을 못해도 바로 깨닫게 됩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있을 때 실컷 누려보고자 저는 매일 오감을 활짝 열고 삶의 구석구석을 만끽합니다. 물론, 삶을 마냥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철없는 ‘미화부장’이 된 느낌을 지울 순 없긴 하지만 말이죠. 하하.
인생 34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별 게 다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매일이 여행 같아서 그런지, 딱히 '여행 앓이'를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꽤나 찐하게 그리운 여행이 하나 있어요.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시드니 여행이에요. 달랑 호텔방과 비행기표만 예약해두고 떠난 여행.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마실 나가듯 손잡고 거리를 거닐던 시간. 대학생 때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보냈던 남편의 가이드를 따라 이곳저곳 누비며 남편의 추억 이야기를 듣는 건 어느 여행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남편이 일했던 호텔 앞에 서서 ‘하우스키퍼’ 했던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났죠. 정리에는 젬병인 사람이 각 잡고 이불과 수건 정리하는 일을 했다니!
선착장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버스 타 듯 배를 탔습니다. 몇 분만 나가면 한적하고 평화로운 섬이 나왔어요. 토토로가 살 것 같은 덩치 큰 나무들. 오두막집 레스토랑 데크에 앉아 먹은 피시 앤 칩스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여행 둘째 날에는 영화관에 놀러 갔다가 어떤 신사분이 ‘Finding Dory(도리를 찾아서)’ 시사회 티켓이 있는데 자신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얼떨결에 웰컴 샴페인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모던 패밀리’에서 보던 배우 타이 버렐 님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캬! 그야말로 오감이 ‘호강’한 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여느 때처럼 밥 남편은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렀고. 마주 보고 앉아서 샐러드를 먹다가 갑자기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나중에 휴가 길게 받아서 호주 여행 가자!”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어져 버렸어요. 남편이 리모컨을 따닥따닥 조작하더니 ‘걸어서 세계 속으로-시드니 편’을 틀어주었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거리가 나오자 너무 신이 나서 발까지 동동 굴렀습니다. 갑자기 샐러드에서 피시 앤 칩스 맛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 거실 창 하얀 쉬폰 커튼을 열면 반짝이는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보일 것만 같습니다.
요즘도 종종 우리 부부는 앉아서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뉴욕 편’을 보며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인도 편’을 보며 커리와 탄두리 치킨을 먹습니다. 꿀맛입니다! 기분 좋게 별점 5점을 날립니다 ★★★★★ 우리의 오감과 상상력만 있다면 당일치기도 아닌, 한 시간 치기(?) 근사한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라니!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오늘은 또 무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볼까, 참으로 행복한 고민에 잠겨봅니다. 오감이 설레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