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1도 없지만 행복을 부르는 소품은 있지(2)
18평. 1.5룸. 세 식구. 정확히는 반려견 도담이까지 네 식구. 미니멀하게 살림도 줄였고 나름 도란도란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공간이 작다 보니 도담이 배변패드 냄새가 금방 집안 전체를 채웠고 창문을 닫아두고 몇 시간만 있으면 공기가 탁해져서 퀴퀴한 기분마저 들었다. 심지어 베란다 배수구에서는 몇 해 묵은 듯한 독한 암모니아 냄새까지 올라왔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악취와 나쁜 공기들이 우리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진 않을까 불안감마저 들었다. 가끔 문 열고 집에 들어왔다가 "우악, 이게 무슨 냄새야!"하고 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불쾌한 냄새의 근원이 '나' 혹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자신감마저 떨어뜨린다.
고질적으로 비염을 달고 살아온 나로서는 먼지가 쌓이거나 공기의 질이 조금만 안 좋아도 콧물이 질질 나고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다. 유난을 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차를 탈 때에도 꼭 창문을 조금 열어둬야 숨통이 트인다. 대청소를 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날은 2-3일은 앓아눕는다. "나 먼지에 알레르기 있나 봐."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찾아보니 진짜로 '실내 먼지 알레르기[house dust allergy]'라는 질환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간절했다. '공기청정구역'에서 살고 싶었다. '공기청정기'를 알아보는 데 일단 비쌌다. 게다가 우리 집 안에 육중한 공기청정기의 몸체를 둘만한 마땅한 공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소꿉놀이하듯 꾸며놓은 이 공간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공기정화식물이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따로 전기선을 연결할 필요도 없고, 말로만 듣던 '플랜테리어'효과 까지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식물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나지만, 이번 기회에 반려 식물에 마음을 붙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NASA가 실험한 공해물질을 모두 정화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식물 중 하나로 대표적인 실내공기정화 식물입니다. 새집 증후군의 주요 원인물질인 포름알데히드는 물론, 아세톤, 알코올, 암모니아, 트리클로로 에틸렌, 자일렌, 벤젠 등 다양한 실내 유해물질들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요 특히 암모니아와 아세톤을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가습 및 실내 습도를 조절하는데도 용이하며, 키우기가 쉬워 인기 있습니다.
- 온라인 마켓 '꽃 피우는 청년' 소개 글 중
'이거지, 이거지!' 스타티 필름이라는 녀석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필름 카메라의 부속품 같았지만 초록초록 넓은 잎과 수수깡 정도 굵기의 단단한 줄기, 웨딩드레스 모양의 새하얀 꽃(꽃처럼 생겼지만 '불염포'라고 한다는 것을 후에 알았았다.)을 피워내는 열대 식물. 게다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라탄 바구니까지 같이 보내준다니! 그것도 단 돈 29,800원에!!! 눈도 코도 마음도 한 껏 청량해지는 우리 집을 상상하며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다.
번개 같이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너무나 성실하고 부지런하신 '꽃 피우는 청년'님께 박수를!)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기다란 상자 비주얼에 나도 모르게 '관'을 떠올리고 말았다.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생명체를 담은 상자인데 말이다. 두근대는 심장의 속도와는 달리 조심조심 아주 느릿한 칼질을 했다. 혹시나 우리 '필름이'를 다치게 할 순 없으니. 언박싱을 하자마자 이번엔 '미라'가 떠올랐다. 몸통 전체가 포장 에어캡으로 칭칭 감겨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생명체' 다운 자태를 되찾아주고 싶은 맘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실수로 흙을 조금 쏟긴 해지만 신줏단지 모시 듯 두 손으로 살살 모아 제자리에 호도독 담아주고 꼭꼭 눌러 담아주었다.
와- 식물을 모르지만 한눈에 봐도 너무나 싱싱해 보여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초록색 잎에서는 반짝반짝 탱글탱글 윤기가 났다. 중력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쳐지지도 않고 힘 있게 의지대로 뻗어있는 게 늠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예쁘게 바구니 옷을 입혀주고 거실 코너에 세워두니 거실 공간이 기분 좋은 싱그러움으로 차올랐다. 감성까지 더해진 듯하다.
공간이 좁아서 공기가 금방 탁해지기도 했었지만, 반대로 금방 청량해지기도 했다. 나의 예민한 코가 웃는 게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공기의 질감이 한결 가볍고 시원해졌다. 기분 탓일까 했는데 아니었다. 확실히 달랐다. 집에 들어설 때 나던 퀴퀴한 냄새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두 코가 시원하게 뻥 뚫렸다.
애틋한 감정도 생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필름이'의 상태를 요리조리 살핀다. 잎이 쳐지지는 않았는지, 흙이 너무 마르지는 않았는지. "굿모닝! 오늘도 건강하게 잘 자라라!" 덕담을 해주고 있으면 라은이도 아장아장 걸어 나와 "무! 무! (나무를 아직은 무라고 부른다)" 하며 손을 흔든다. 우리 집에 온 지 어느새 3개월에 접어들고 있지만 '식알못' 주인을 만난 것 치고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하얀 꽃(불염포)이 하나 쓰윽 피어오르더니 둘, 셋, 어느새 다섯이나 피어올랐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서 왈츠를 추는 듯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공기가 맑아지고 공간이 환해지고 몸도 마음도 한결 푸르러졌다. 첨단 기술이 만들어주는 '공기청정구역'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이 29,800원 공기청정기 '필름이'가 주는 정감이 참 좋다. 오늘도 시원하게, 자신 있게 코로 숨을 들이마셔본다.